
330일 전
인천가족공원, 머나먼 타국에서 생을 마감한 이들을 위한 외국인 묘지
하늘을 향해 쭉 뻗은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줄지어 늘어선 가로수길,
도시를 벗어나 수목원을 걷는 듯한 이곳은
하늘로 여행을 떠난 이들의 삶의 안식처인
인천가족공원입니다.
인천가족공원
외국인 묘지
먼 곳으로 소풍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이곳엔
오래오래 전 국가 간의 이동이
지금처럼 자유롭지 못했던
조선 시대와 근대시대에
다양한 목적으로 조선을 찾아와
살았던 이들의 삶이 묻혀 있는
외국인 묘지가 있습니다.
인천가족공원 관리사무실 맞은편
주차장을 따라 걷다 보면
추모의 집이 나오는데
가족묘 5구역 옆쪽으로
외국인 묘역이 나옵니다.
무척 넓은 규모의 가족공원에서
길을 찾는 것이 조금 어려워
공원에서 만난 시민에게
외국인 묘역을 물었더니
어느 나라를 찾냐고
질문이 되돌아오더군요.
국가별로 묘지가 나뉘어 있나 싶어 물었더니
중국과 다른 나라가 나뉘어 있다는 말씀에
생각보다 많은 국가의 외국인이
이곳에서 마지막 소풍을 떠났구나 싶었어요.
국가 간의 이동이 자유로운
글로벌 시대에 사는 우리는
전 세계를 자유롭게 여행하고
무역을 하며 삶의 공간을 바꿔가며 생활하죠.
우리의 일상에서 외국인이 스며들어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과 어우러져 사는
지금이 자연스러워진 대한민국이지만
지금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이기까지
외국인이 정착하고 살아온 시간은
얼마나 됐을까 문득 떠올려 보게 됩니다.
외국인 묘역으로 들어서면
중국풍의 거대한 문과 추모공간이 나옵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인 중
가장 많았던 국가가 일본과
중국이란 점을 생각해 봤을 때,
일본인 묘역은 찾을 수 없었는데요.
이곳에 정착하고 삶의 터전을
잡아온 국가는 중국이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인천 개항장에 있는
차이나타운을 형성하고 많은 화교가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가며 비어 있는
묘역의 한 곳 한 곳을 채워 가겠죠.
중국인 묘역 옆으로 오랜 시간을 지내온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묘지석들이 보입니다.
우리의 묘비와는 다른
서양의 어느 무덤을
찾은 듯한 감성의 묘지석은
인천 개항 이후 조선 땅에서
영면에 든 외국인들의 묘입니다.
굳게 닫혀있던 나라의 빗장이 열리고
1883년 인천항이 개항을 하면서
바닷길을 통해 각국의 영사관,
통역, 선교사, 의사, 세관원 등
많은 외국인들이 국내에서 체류하며
조선의 근대화를 함께 했습니다.
각국 조계지 내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며
그들이 살았던 나라의 문화를 교류했죠.
이 땅의 아픈 순간에 힘이 되어주고
세계사의 변화에 발맞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분야에서 도움을 주었던
외국인들이 생을 마무리하고
인천에서 잠들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외국인 묘지 중
가장 처음 조성된 곳은 인천입니다.
1883년 8천 평의 규모로
북성동 1가 1번지에
묘역이 설치되었지만,
실제 매장은 1885년 11월
미국인 조셉 티몬스였습니다.
그 이후 1965년에는
도시계획으로 인해 연수구 청학동 야산
새 묘역으로 이전했어요.
그리고, 2017년 5월 29일
인천가족공원이 위치한
부평구 부평동 산 57-15번지로 이전해
영원한 안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인천은 세계에서
대한민국으로 들어오는 관문이고,
우리가 세계로 뻗어 나아가는
하늘길과 바닷길의 시작이기도 하죠.
국제도시 인천은
더 많은 문화를 교류하고 무역을 통해
세계인들이 새로운 문화와
역사를 만들어 갈 도시입니다.
100년 후,
그 이후의 인천의 국제적인 다양한
업적과 역사를 만들어 갈 많은
외국인들이 살아왔고 살아가는 도시의
시간을 만들어 가는 이야기가 계속되길
먼저 잠든 이들과 함께 해 봅니다.
<인천가족공원>
※ 본 게시글은 제12기 인천시 SNS 서포터즈 최창임 님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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