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없어 보였지만 약탈의 시작점이 되었던, 강화도조약

1876년 일본과 조선은

조일수호조규를 체결합니다.

조선과 일본의 무역을 위해 체결된

이 조약은 강화도에서 체결되었다 하여,

강화도 조약으로도 불립니다.

체결 당시 문제없이 보였던 이 조약은

사실상 조선에 막대한 피해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조항들이었습니다.

📜 강화도 조약의 중요 조항

✔️ 4조

부산 외에 두 곳(인천, 원산)을 개항하고,

일본인이 왕래 통상함을 허가한다.

✔️ 10조

일본인이 항구에서 죄를 범하면

일본 관원이 심판하게 할 것이다.

부산 항구 외에 두 곳(인천, 원산)을

추가 개항을 요구한 것은

조선 침략에 유리한 위치의 항구였기 때문이며,

치외법권 역시 일본인에게 유리한 조항이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조항을 계획한 일본은

아시아 국가를 식민지로 삼아

제국주의 국가로 일어서기 위함이었고

대륙 침략의 첫 번째가 조선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불평등 조약을

왜 체결하게 된 것이었을까요?

1875년 8월 21일

강화도 초지진에 수상한 선박 한 채가 다가와

조선은 경고 포격을 시행했지만

선박은 맹렬히 투항하며, 초지진을 포격하고

민가를 습격해 약탈하고

불을 질러 조선에 막대한 손해를 끼쳤습니다.

이 선박이 일본 국적의 운요호,

바로 운요호 사건입니다.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일본은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합니다.

죄 없는 일본 배에 손해를 입혔으니,

조선은 마땅한 보상을 해야 한다.

조선은 이를 거부하자

일본은 무력시위를 펼쳤고,

이후 어쩔 수 없는 회담이 진행되었고

일본은 조선의 항구를 열어 달라고 요구하며

통상 조약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시작부터 불평등하게 시작된

강화도 조약은

조선이 일본에 나라를 빼앗길 수밖에 없던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가슴 시린 역사의 시작점인

강화 초지진에는

강화도 조약 이전에 발생한

병인양요, 신미양요의 흔적이 함께 남아있습니다.

아픈 역사와는 대비될 정도로

성곽을 따라 서해의 아름다움을

이어서 관람하실 수 있으며,

수많은 교전으로 인해

초지진은 기초만 남긴 채, 허물어졌지만

초지돈대를 복원하여

조선 말기에 사용된 대포를 함께

전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픈 역사와는 대비되게

성곽을 따라 서해의 풍경과

아름다움을 관람할 수 있답니다.

📍 초지진 관광정보

주소 :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해안동로 58

개방시간 : 09:00~18:00 (연중무휴)

편의시설 : 화장실, 매점, 휴식 공간, 주차 가능


강화유수부의 군사들을

훈련 시키기 위해 창건된 연무당

하지만 이곳에서 1876년에

강화도 조약이 체결 된 곳이랍니다.

강압적이고 일본에 유리한 조건들이었던

강화도 조약에 대한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기적비를 세우고

현재 연무당 옛터로 보존하고 있답니다.

📍 연무당 옛터

주소 :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1099


이 밖에도 강화에서 발생한

전쟁사를 주제로 각종 전쟁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강화전쟁박물관에서도

역사 체험 관광을 하실 수 있답니다.

총 4개의 전시실로 이루어져

시대순으로 관람하실 수 있고

역사뿐 아니라 각종 무기류를 만날 수 있답니다.

📍 강화전쟁박물관 관광정보

주소 : 강화군 강화읍 해안동로1366번길 18

운영시간 : 09:00~18:00 (매주 월요일 휴무)

관람요금 : 어른 900원 / 청소년.군인 600원


# 어서오시겨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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