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전
[강동구 기자단] 일자산 근린공원에 겨울 정취가 가득하다
일자산 근린공원에 겨울 정취가 가득하다.
올겨울은 유난히 춥고 눈도 많이 내렸다.
한바탕 매섭게 몰아치다가 한숨 쉬어가기를 반복한다.
예전 겨울 날씨의 특징이 삼일은 춥고 사일은 따뜻한 삼한사온이었다.
올겨울은 근래에 드물게 춥고 따뜻하기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것 같다.
이틀 전에는 또다시 많은 눈이 내렸다. 내린 눈이 아직 그대로 쌓여 있어 겨울 정취를 한껏 자아낸다.
오랜만에 겨울다운 겨울을 만나서 그런지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그때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기온이 크게 떨어졌고, 정말 매섭게 추웠다.
그런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동네 개구쟁이들은 우하니 몰려다니며 놀았다.
동네 골목에서 눈싸움은 물론 논으로 썰매를 타러 다녔다.
커다란 물웅덩이에서 깨진 두꺼운 얼음을 타고 놀았다.
칼날같이 매서운 추위에 볼과 손등이 갈라 터져도 아픈 줄 모르고 놀았다.
그때의 그 모습이 낡은 영화필름처럼 머릿속에서 돌아간다.
날씨가 추우니 몸과 마음이 움츠러든다.
그러던 차에 눈 쌓인 창밖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어린 시절이 떠올라 겨울 정취를 맛보고 싶었다.
눈이 내렸으니까 바짝 독오른 날씨도 조금은 풀리게 마련이다.
오고 가는 세월과 계절을 마주하다 보니까 이 정도는 기상청 예보가 없어도 눈치로 때려잡을 수 있다.
올겨울은 눈이 자주 내렸지만, 제대로 눈 구경을 하지 못했다.
시간이 되는대로 이곳저곳을 다녔는데도 눈을 담은 경치 사진이 없다.
어디를 가면 흔적을 남기듯이 습관적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런데도 눈 찍은 사진이 없는 걸 보면 건 눈 구경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걸 증명한다.
생각난 김에 겨울 정취와 눈 구경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어디로 가지? 그래 이참에 늘 지나치기만 했던 일자산 근린공원에 가보자!’
일자산에 있는 근린공원은 오늘 같은 날 눈 구경하면서 돌아보기에 딱 좋은 곳이다.
일자산 근린공원은 집에서 차를 타고 가면 대략 15분 정도 걸리지만, 걸어 가면 꽤 걸린다.
차를 가지고 갈까? 걸어갈까? 잠시 고민하다 걷기로 했다.
먼 거리기는 하지만, 기왕 겨울 정취와 눈 구경을 즐길 거라면 오가는 동안에도 제대로 느끼고 싶었다.
혹시나 해서 단단히 무장하고 집을 나섰다. 날씨가 조금 누그러지기는 했지만, 바람이 불어 여전히 차가웠다.
강동아트센터를 거쳐 길동생태공원에서 천호대로를 건너 일자산 근린공원으로 갔다.
걷다 보니까 걷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 쌓인 거리의 모습도 그 나름의 겨울 정취를 보여주었다.
근린공원을 품은 일자산은 강동구와 하남시에 걸쳐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강동구에서 최고 높은 산이자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으로 해발 134m이다.
높이를 보면 산은 산이되 야산이다. 어렸을 때, 놀이터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리며 뛰어놀았던 집 뒤에 배봉산이 110m였다.
그래서인지 일자산은 늘 친근하게 느껴진다.
일자산 근린공원은 둔촌동 보훈병원 맞은편에 있다.
커다란 원형의 잔디광장이 있어 쉽게 눈에 들어온다.
그 옆에는 일자산1체육관과 강동구 도시농업공원이 나란히 붙어있다.
잔디광장은 물론 공원 주변에도 내린 눈이 그대로 쌓여 있어 보기 좋은 경치를 내어주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많아 눈 내린 겨울의 멋스러움을 온전히 보여주었다.
규모가 큰 잔디광장은 초록의 잔디가 펼쳐졌을 때도 볼만하겠지만, 눈 내린 지금의 모습도 그에 못지않다.
잔디광장을 둘러싼 나무들이 오후 햇살을 받아 광장으로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나무의 크기보다 훨씬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단조로운 광장에 느낌을 불어넣었다.
원형의 잔디광장 둘레에는 걷는 길이 있다. 겨울을 이기려는 사람들이 열심히 걷고 있었다.
걷는 길은 이미 눈을 치워놓아 미끄러질 염려가 없어 보였다.
걷는 사람들을 보면 운동 삼아 빨리 걷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만, 오늘은 구경삼아 왔으니까 그럴 필요는 없다.
먹잇감을 한가운데에 몰아놓은 맹수가 천천히 기회를 노리듯이 여유 있게 걸으면서 잔디광장의 겨울 경치와 정취를 즐겼다.
일자산1체육관이 있는 잔디광장 아래쪽에는 널찍한 원형 데크가 있다.
이전에 와보질 못해 그것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데크 가운데에 서 있는 나무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네 갈래의 굵은 줄기가 하늘로 곧게 솟았다. 마침 해가 반대편에 있어 나무가 실루엣으로 보였다.
그 모습이 오랫동안 책갈피 속에 넣어두어 바짝 마른 나뭇잎처럼 보였다.
앙상한 가지는 바짝 마른 나뭇잎에 선명하게 드러난 잎맥처럼 보였다. [사진 : 18, 10]
그 나무는 마치 제가 이 광장에 주인이라도 되는 것같이 당당하게 서 있다.
우뚝 선 당당함이 조금은 건방지게 보일 정도로 아주 매력적이었다.
여름밤이면 이곳에서 야간 공연이라도 있는지 모르겠다.
나무가 서 있는 원형 데크가 무대라면 별다른 무대장치가 없어도 그 나무가 훌륭한 무대배경이 될 것으로 보였다.
여름에 몇 번 가본 지방의 작은 공연장이 있다. 한옥으로 둘러싸인 마당 한쪽에 무대가 있다.
무대장치라고는 무대 뒤쪽에 있는 한옥 돌담과 고개 숙인 소나무 한 그루가 전부다.
해마다 공연 내용이 바뀌는데도 무대장치는 늘 그게 전부였다.
그래도 공연은 늘 멋지게 여름밤을 수놓았다. 원형 데크에 있는 나무를 보니까 그 소나무가 생각났다.
일자산 근린공원에는 쉴 수 있는 벤치가 곳곳에 있다.
그래도 벤치가 정자만 할까. 잔디광장 뒤편에 광장을 굽어보는 정자가 있다.
정자의 이름이 일자정이다. 일자산 근린공원에 어울리는 이름이기는 한데, 너무 쉽게 정답을 보여주는 정자 이름이라 슬쩍 웃음이 나왔다.
정자 옆에 있는 운동기구를 가지고 두세 사람이 열심히 운동하고 있었다.
걷기를 끝내고 다음 코스로 기구 운동을 하는 모양이다.
이제는 나이 먹었다고 몸을 안 움직이고 가만히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다들 규칙적으로 열심히 운동한다. 그건 오래 살고자 하는 게 아니라, 사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다.
그런 점에서 이런 근린공원은 나이 드신 분들한테 참으로 유용한 공간이다.
잔디광장을 둘러보고 일자산으로 올라갔다. 여기까지 와서 일자산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요즘은 가지 않지만, 예전에는 일자산 능선을 따라 나 있는 일자산 숲길을 주말마다 걸었다.
천호대로 변에서 일자산으로 올라가 숲길을 걸어 서하남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이 숲길은 여유 있게 걸을 수 있으면서도 얕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어 운동하기에 좋은 길이다.
한여름에는 나무들이 햇볕을 가려 시원하게 걸을 수 있는 명품 길이다.
일자산 해맞이광장까지 갔다가 내려올 생각이었다.
오르는 길에 유치원 아이들이 앞서가고 있었다. 눈이 내려 아이들도 야외 체험을 나온 모양이었다.
두툼한 파카에 모자와 장갑으로 무장한 아이들이 선생님을 따라갔다. 아이들의 뒷모습만 보아도 얼마나 들떠있는지가 느껴졌다.
작은 가방을 하나씩 메고 재잘대며 걷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그렇게 귀엽고 예쁠 수가 없었다. [사진 : 14, 15, 16]
오랜만에 걷는 숲길이지만, 경치는 눈에 익었다.
한창 다닐 때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아 다행이다 싶었다.
사람들 편해지라고 산에다가 이런저런 인공물을 설치하는 게 때론 못마땅하다.
일자산 숲길은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좋았다. 여느 계절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숲길을 걷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일자산 숲길의 허리를 자르고 올라서 그런지 해맞이광장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예전에는 서하남까지 가야 한다는 생각에 늘 흘깃 보고 지나쳤던 곳이다.
오늘은 생각지도 않게 해맞이광장이 목적지가 되었다.
바삐 지나치다 보니까 읽어보지 못했던 둥그런 비석의 글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고려 말, 충신 둔촌 이집 선생이 후손들에게 이르는 글이었다.
특히 “자손에게 금을 광주리로 준다 해도 경서 한 권 가르치는 것만 못하느니라”하는 구절에서 눈길이 멈추었다.
예전에 녹음테이프를 오래 들으면 테이프가 늘어져 어느 부분에서 넘어가지 않고 걸린 부분만 반복될 때가 있었다.
마치 그런 느낌처럼 그 구절이 머릿속에서 반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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