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회 2023년 올해 통영한산대첩 기간 중에는

태풍 카눈이 지나가는 바람에 총 9일 중에 이틀이 축제 휴무가 되어 버려

일부 행사를 하지 못해서 조금 아쉬웠어요.

그래도 다행인 건 "한산대첩축제"의

최고 백미이자 하이라이트인 "한산대첩 재현"은

정해진 날짜인 2023년 8월 11일(금) 17시 30분부터

통영시 정량동 망일봉 이순신공원 일원과 해상에서 그대로 진행이 되었어요.

항상 축제 때마다 등장하는

올해는 원주에서 오신 블랙이글스의 에어쇼는 하늘에서 에어 줄기를

통영 소방서 소방정의 방수포 방수 시연은 바다에서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 주며

하늘과 바다에서 동시에 눈에 즐거운 에어줄기와 물줄기들을 보여주셨어요.

관광객과 시민들도 아주 많이 오셨던데 그중에서도

이렇게 귀하고 멋진 한산대첩 재현행사를 보기 위해서

여러 내빈들과 멀리 경기도 이천시 의원들도 오셨다고 인사를 하시더군요.

해군 군악대와 풍물패, 전통무예 시연 등 재현행사 식전 공연도 멋졌고

마지막에 쏘아 올린 아름다운 축하 불꽃도 너무 멋졌어요

살랑살랑 불어오는 짭조름한 갯바람이 시원하기도 해서

너무 행복하게 관람을 하고 왔답니다.

해마다 한산대첩 재현이 펼쳐지는

한산도 일대 해상을 내려다보는 망일봉 중턱에는

필사즉생 필생즉사라고 장군의 어록을 새긴

이순신 장군님의 동상이 큰 칼 옆에 차고 늠름한 모습으로

1592년 지금부터 431년 전 왜군들을

학익진을 펼쳐서 소탕한 그 전쟁터를 내려다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큰 소리로

작전지휘를 하시고 계신답니다.

장군님 동상 가까이로 가면 장군님의 호령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합니다.

"한산해전"은 1592년 음력 7월 8일 (양력 8월 14일)

통영시 한산도 일대 해상에서 일본(왜군)과 벌어진 해전으로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중에 출동한 총 9차 출동 중

한산해전은 제3차 출동(1592. 음 7.5~7.13) 중 첫 번째 해전이라고 합니다.

이순신 장군이 선두 지휘 한 조선 수군 연합함대가 아주 크게 승리한 해전으로

크게 승리하였다고 해서 한산대첩이라고 하며

임진왜란 3대 대첩(진주대첩, 행주대첩, 한산대첩)에도 포함되며

세계4대해전(살라미스(그리스),칼레(영국),트라팔카(영국),한산해전(한국)

사에도 들어가는 기록을 남겼다고 합니다.

제3차 출동에 앞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제1차 출동(옥포해전, 합포 해전, 적진포해전)과

2차 출동(사천해전, 당포해전, 당항포해전, 율포 해전)에서

7번의 해전을 모두 승리로 이끌었어요.

그러자 계속 패배한 일본은 규수 히젠 나고야 성 본영에서

전쟁 지휘를 하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의 수군 장수 이순신의 제거와

남해의 제해권 확보 없이는 전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일본 수군 장수 구키 요시 다카, 가토 요시아키, 와키 자카 야스하루에게

연합함대를 구성하여 남해의 제해권 확보 및 전라좌수영을 공략하고

서해 진출을 꾀하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이에 따라 김해에서 일본 수군 장수들이 모여 연합함대를 구성하고 있을 때

세력이 제일 큰 함대를 거느린 와키 자카 야스하루는 전공을 탐내어 단독으로 출전하여

전라좌수영을 공략하기 위해 거제 견내량에 도착하는데

일본 수군이 대규모 수군부대를 편성하여 남해 진출을 꾀한다는 정보를 접한 이순신도

부산방향으로 진출하기 위해

전라 우수사 이억기, 경상 우수사 원균과 함께 출전하여 당포에 도착합니다.

이순신 장군이 그 당시 상황을 기록하여 조정에 올린 장계인

" 견내량파왜병장"(견내량(한산도)앞바다에서 왜군을 크게 쳐부순 장계)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략) 전날 초 7일에 동풍이 크게 불어서 행 선하기 어려웠으나 고성 땅 당포에 이르자

날이 저물어 나무하고 물을 긷노라니 피난하여 산에 올랐던 그 섬의 목자 긴 천손이 신 등의 배를 바라다보고

급히 달려와서 고하기를

" 적선 대, 중, 소선을 합하여 70여 척이 오늘 하오 2시쯤 영등포 앞바다로부터 거제 고성 땅 견내량에 대어있다" 하므로

다시 여러 장수에게 신칙하고 초 8일이른 아침에 적선이 머물러 있는 곳을 향하여

한바다에 이르러 바라본즉 적의 큰 배 1척, 중간배 1척이 선봉 서서 나와

우리 수군을 탐색해 보고는 도로 진 친 데로 들어가므로

뒤쫓아 들어가니 큰 배 36척, 중간배 24척, 작은 배 13척이 진을 벌이고 대어 있는데 ...... 후략


목자 김천손의 고급 정보를 입수한 우리 수군 연합함대는

막하 장수들과 논의하여

견내량은 물목이 좁고 암초가 많아서

판옥선처럼 큰 함선이 기동하기에 불편하고

평소 일본 왜군들은 해전을 하다가 불리하면 배를 육지에 대고

도망가는 일이 자주 있었기에

한산도 넓은 앞바다로 미리 유인하고

우리 수군은 미리 안 보이는 곳에 숨어 있다가

가까이 오는 왜선에게 접근하여 집중 공격을 하는데

우리 수군에게 유리한

"학익진"을 펼쳐 적을 공략하여

아주 크게 승리를 하게 됩니다.

우리 수군들이 왜선에 접근하는 형태가 학이 날개를 펼쳤다가

움츠린 모습 같다고 하여 "학익진"라고 한답니다.


"학익진(鶴翼振) 전술이란?

선두의 함선에 집중 포격을 가하여 일시에 격파하기 위한 전술로

개전 초기 선두에서 공격해 오는 일본 함선을 학의 날개 모양으로

에워싸고 일시에 격파함으로써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술이다.

학의 날개처럼 적선을 에워싼 이유는 선두 함선 2~3척에 대해

집중 포격을 가함으로써 총통의 명중률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출처: 임원빈(일심) 칼럼방(이배사 다음 카페)


학익진을 펼쳐 전쟁을 치른 결과인

피해 상황으로는

조선 수군 19명 사망, 왜군 5천~6천 명 사망

조선 수군 58척(판옥선 55척, 거북선 3척) 모든 전선은 이상무이고

왜군은 73척 중

59척 격침(오다케 35척, 세키 부네 17척

,고바야 7척)으로 피해가 아주 컸다고 합니다.

"한산대첩"은 임진왜란 7년 전쟁 중

의기양양했던 일본의 기세를 꺾어 전쟁의 방향을

조선의 승리로 돌려놓는 분수령이 되는 승첩이었고

왜적들은 이 해전의 패배로 인하여 보급로가 차단되어

평양까지 진출한 고니시유키나카부대를 포함한

모든 왜적은 조선의 수도 한양을 포기하고 남쪽으로 후퇴하게 됩니다.

통영시장님의 말씀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431년 전 그 당시의 한산도 앞바다로 가 보면

일본 왜군들의 처참한 최후로 인해서 피바다가 되었을 테고

여기저기서 살려달라는 왜군들의 비명이 들리고

펄펄 끓는 염천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주 치열했을 것 같습니다.

현시대의 우리들은 이러한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들의 활약으로 이룩한 대첩으로 인해서

통영 이순신공원에서 해마다 한산대첩 재현이라는

축제의 한마당을 보게 되는 행운을 갖게 된 것이지요.

내년에도 하니까 올해 못 보신 분들은 내년 한산대첩축제 기간을 미리 확인하시고

"미래 100년의 도시 약속의 땅 통영시"에 오셔서

꼭 한번 관람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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