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만제(서호)는 정조가 수원화성을 축조하면서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조성한 곳입니다. 축만제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는 아담한 정자가 있습니다. 정자의 이름은 '항미정'으로 오늘은 아름다운 항미정의 여름 풍경을 만나보겠습니다.

항미정이 자리한 축만제 전경입니다. 축만제는 오랫동안 '서호'로 불린 저수지로 1799년(정조23)에 정조가 가뭄을 이겨내고 충분한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내탕금 3만 냥을 들여 화성 서쪽에 조성한 수리 시설입니다. '만석의 쌀 생산을 축원한다.'라는 뜻을 담아 '축만제'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축만제는 물의 흐름을 막거나 유량을 조절하기 위해 '수갑'이라는 과학적인 제어 도구를 설치해서 수량을 조절했는데,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제관개배수위원회(ICID)가 지정하는 관개시설물 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시원한 물이 내려가는 수로 앞에 단아한 항미정이 자리합니다.

항미정은 1831년(순조 31년) 당시 화성 유수였던 박기수가 현재의 자리에 건립한 정자입니다. 1908년 순종 황제가 기차를 타고 수원 능행을 하였을 때, 융건릉에 참배한 후 기차를 타고 돌아가다 서호 임시 정거장에 도착하여 축만제 둑길을 지나 항미정에서 잠시 차를 마시며 쉬어가기도 했던 유서 깊은 곳입니다.

항미정은 화강암으로 2단 기단을 쌓은 다음 초석 위에 각주를 세운 목조 건축물입니다. 1950년 한국전쟁 때 일부 훼손되기도 했지만, 정자의 주요 구조부(기둥·보·도리 등)가 창건 당시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어 1986년 수원시 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된 후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21년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승격되었습니다.

축만제를 바라보며 쉬어갈 수 있는 정자 '항미정'의 이름은 송나라 대문호인 소동파가 서호는 '항주의 미목과 같다'라고 아름다움을 표현한 시구에서 인용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일제 강점기 때 수원 출신 학생이었던 박선태, 이득수 등은 1920년 6월에 임순남, 최문순, 이선경 등 여학생과 규합하여 구국민단을 조직하고자 하였는데, 비밀리에 이곳에서 준비 모임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항미정은 화가의 그림 속에서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데요. 일제 강점기 수원을 대표하는 여성 화가이자 여성 운동가 나혜석이 그린 작품<수원 서호>에서 아름다운 그 당시 서호의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이 각도에서 <수원 서호>를 그렸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주변의 풍경이 많이 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항미정은 경기옛길 삼남길 구간으로 조선시대 한양과 지방을 연결하는 교통로를 현대식으로 새롭게 복원한 길입니다. 경기옛길은 경기 지역의 문화유산과 지명 유래 같은 스토리 텔링을 담은 역사 산책길입니다. 스탬프 찍는 곳의 QR코드를 스캔하면 경기옛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음성해설로 들을 수 있습니다.

항미정 툇마루는 축만제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를 들으며 사색에 잠길 수 있어, 여름에는 지역 주민의 피서지가 되기도 합니다.

백성의 풍요를 꿈꾸었던 정조의 마음이 담긴 축만제와 호수 둘레길을 산책하면서 수원의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는 항미정의 여름 풍경입니다.

수원축만제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 436-1

오시는 길 : 화서역 4번 출구에서 817m

항미정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345

2023 수원시 SNS 서포터즈 정찬송님이 작성해 주신 글입니다

정찬송 서포터즈님의 블로그 : https://blog.naver.com/goodj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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