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전
[부산 중구를 담다 시리즈#5] 우리동네 이야기 다섯번째, 보수동
교육과 문화예술 공간을 간직한 보수동!
여러분은 보수동하면 어떤 모습을 떠올리나요? 아무래도 보수동책방골목이 워낙 유명하기에 '책방골목'부터 떠올리신 분들이 많으실텐데요. 보수동의 이름은 보수천에서 따온 것으로 이곳에는 물이 흐르는 하천이 존재한다는 사실! 알고계셨나요?
보수천 다리를 건너는 검정색다리를 흑교라불러 현재 흑교사거리라는 명칭이 존재하게 되었답니다. 알면알수록 새로운 곳! 보수동에 대해 함께 들어볼까요?
보수천이 흐르는 동네라하여 보수동 |
보수동은 보수천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 동으로, 1914년 부산부 보수정이 되었다. 1947년 한국식 동명 변경 때에 그 이름을 바꾸지않고 그대로 보수동이 되어 지금의 보수동 1·2·3가에 이른다. '감동어기전말등록'에는 옛 초량의 법수천 동암 밖이 곧 왜관 수문의 옆이라 하였고, '순영등록'에는 초량 법수천이라 기록되어 있다. 법수라 함은 불법계에서 중생의 마음속의 때를 씻어주는 물이란 뜻이다.
법수천이라는 이름이 어느 때부터 기원하였는지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다만 옛날 구덕산에 구덕사라는 오래된 절이 있었고, 또 18세기 중엽 왜인들의 약탈에 못 이겨 그 절을 다른 곳으로 옮겨감으로써 폐사되었다는 기록 등을 볼 때 법수천이라는 이름은 이곳 구덕사의 승려들이나 그 불신도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름으로 보인다. 근대 개항 후 법수천의 법을 보로 고쳐 보수천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그 뜻은 법수와 같은 것이다.
물이 귀했던 시절 초창기 배수지 건설 |
초량왜관 안에는 우물이 있어 개항 당시에는 이것을 이용하였다. 그러나 개항 후 일본군함의 빈번한 출입과 거류일본인의 증가로 인하여 급수문제가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었다. 이에 따라 1880년에 처음으로 보수천 상류로부터 대나무흠통으로 물을 끌어들이는 시설을 하였고, 그 후 1886년에는 나무통으로 물을 끌어들이는 시설을 하였다.
이후 물이 모자라게 되자 1894년 보수천 상류에 물을 모으는 둑인 집수언을 만들고 자연여과장치를 시공하였으며, 거류지 가까운 높은 곳에 대청동 배수지를 설치하였다. 이 대청동 배수지는 지금 광일초등학교 정문 아래 대청동 4가 82-11번지 일대에 있었는데 1910년 복병산 배수지가 신축되면서 폐기되었다. 이 상수도 시설은 비록 일본인들의 필요에 의해 설치되기는 하였지만 부산 상수도의 기원이 되었다.
비록 보수천은 사라졌지만 도로명으로 남겨진 의미와 기억 |
2014년 도로명 주소 제도가 시행되면서 보수동에는 새로운 도로명이 생겼다. 보수동은 대청로에서 보수산까지 이어진 동네로 경사길이 많다. 이런 지형 때문에 고가길이란 도로명이 있고, 보수동의 북쪽, 즉 보수산과 가가운 곳에는 보수북길이란 도로명도 생겼다.
보수천의 옛 이름인 법수천이란 이름을 따서 만든 법수길, 지금은 사라졌지만 보수천 명물거리였던 흑교를 따서 흑교로라는 도로명이 있다. 그리고 보수동은 중구와 서구 동대신동 사이에 있는 동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수동과 동대신동을 연결하고 있는 보동길이란 도로명도 있다. 특히 보수동의 책방골목은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공간이다. 이러한 의미를 살려 책방이 늘어선 좁은 골목에는 책방골목길이란 이름이 붙였다. 이와 같이 보수동 도로에는 보수동의 지형과 문화, 이곳의 옛 이름을 기억하려는 의미들이 담겨져 있다.
동쪽은 높고 서쪽은 낮은 보수동 |
보수동은 지형적으로 동쪽은 높고 서쪽은 낮아 경사지와 평지가 혼재되어 있다. 보수동1가 지역의 고지대에는 주거지가, 저지대에는 책방 등 소규모 업소가 밀집된 주상 복합지가 형성되었다.
보수동2·3가 지역은 평지로 일반 상업지역과 주택 상가 복합지역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동아대 부민캠퍼스와 인접하여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과 원룸이 다수 있으며, 도로가 편리하고 임대료가 낮아 인쇄업종이 집중되어 있다.
이미지 및 내용 출처(저작권)
부산광역시 중구청 / 부산 중구지 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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