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시간 전
[계룡 팥거리 마을] 새벽 공기 속 정겨운 마을 탐방
팥거리 마을의 새벽
더워지고 찌는 듯한 낮 기온을 견대기 힘들어 시원한 이른 새벽 시간에 취재를 다녀왔습니다.
이번 취재는 충남 계룡시의 마을을 탐방했는데요.
이름이 재미난 팥거리 마을입니다.
좁은 골목길로 이루어진 마을은 또 다른 매력으로 계룡시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벽화 혹은 모자이크 타일로 벽을 꾸며놓은 모습들로 인해 마을을 입장하면서 벌써 친근하고 환영받는 기분으로 발걸음이 가벼워집니다.
가까이 보이는 초록색 열매는 뭘까 궁금해하며 더 가까이 가보았습니다.
담장에 조롱조롱 매달린 청포도입니다.
청포도의 주저리 주저리 마을의 계절 속에서 쌓인 전설의 시간들을 알알이 담아놓은 모습에 잠시 마음의 힐링 시간을 가져봅니다.
이육사 시인님의 청포도를 읊었던 마음으로 시간을 거슬러 여행해보겠습니다.
청포도
시인 이육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려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청포도」는 1939년 8월 『문장(文章)』지에 발표된 이육사의 시이다.
이 시는 6연 12행의 자유시로 청포도가 익는 칠월의 자연, 청포도에 얽힌 전설, 손님을 기다리는 시인의 마음을 그렸다.
일제강점기 시대와 이육사의 독립운동 경험을 고려하여 해석한다면, 이 시는 민족적 현실을 이겨내고 독립이라는 밝은 미래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1939년 8월, 『문장(文章)』지에 발표된 이육사(李陸史)의 시.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시인님이 바래왔던 자유로운 이 시대를 살아갈 수 있음에 깊은 감사의 마음이 들었고 청포도를 맞이하는 행복한 손님 중 시인님이 오셨다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식탁에 앉은 모습을 잠시나마 그려봅니다. 자! 이제 조금 더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 볼까요.
오랜 시간의 흔적을 지닌 듯 보이는 이곳은 이용원입니다.
창문에 붙어있는 내용을 보니 어르신 목욕 및 이∙미용권 가맹점입니다.
이곳은 특히 왼편에 꽂아 놓은 조그만 태극기가 인상깊은 곳이기도 하답니다.
골목에 놓여진 의자들이 이 이용원의 고객님들 대기실인가 봅니다.
이곳에서 일상을 나누시는 어르신들의 모습까지도 그려지는 풍경입니다.
정겨운 작은 마을은 철길 가까이에 접해있어 기차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고
골목길 반대편 다른 쪽으로는 두개천이 접해 있어 물길이 주는 평화로움이 있는 매력적인 곳이기도 합니다. 마을회관이 보입니다.
마을 회관 옆에는 도라지밭이 있네요.
제철을 맞이해 흰색 보라색 도라지꽃이 활짝 피어있고 이른 새벽부터 시원한 시간을 놓칠세라 부지런히 밭일하시는 어르신들도 멀리 보입니다.
이 마을의 이름은 계룡시의 인기 먹거리인 팥죽이 유명해서 마을도 팥거리 마을입니다.
팥죽하면 호랑이 팥죽 동화가 얼른 떠오르게 되는지라 호랑이도 많았을까? 하는 잠깐의 동화적인 생각들도 떠올려보았습니다.
팥은 우리 민족과 민화 동화에 많이 등장하는 재료인데요. 이번 기회에 잠시 팥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팥죽에 담긴 전통이야기
붉은팥을 삶아 거른 팥물에 쌀을 넣고 끓인 죽이다. 동짓날은 12월 22~23일경으로 1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예전에는 동지를 ‘작은 설날’이라고 하여 이날 팥죽을 쑤어 먹어야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고 하였다. 또 팥의 붉은색이 악귀를 쫓아내고 액운을 막아준다고 하여 팥죽을 대문이나 장독에 뿌리는 한편, 이사했을 때도 이웃에 두루 돌려 먹는 등 다양한 풍습이 있었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이 마을에서는 매년 10월 팥거리의 뜻을 기리기 위해 팥죽을 나눠 먹으며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독립운동가 김지수 선생의 생가지가 숨어 있는 여행지로 주제를 살짝 바꿔 취재해 보겠습니다.
안내문을 보니 김지수 선생은 조선 예학의 대표학자인 사계 김장생 선생의 11대손이라고 적혀있습니다. 김지수 선생은 1920년 국권피탈 후 일제의 회유책에 굴복하지 않고 불굴의 정신으로 일제 침략에 저항하는 활동을 펼쳤고 이후 1991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습니다.
김지수(1845.12.14.-1911.4.17.) 선생은 이곳 계룡시 두마면 두계리 45번지에서 출생하였으며, 사계 김장생 선생의 11대손이다. 호서지역 유학자들과 교유하기 시작하면서 논산지역에서 학계를 조직해 유림들을 결속하고 가문의 위상을 정립하는 활동을 벌여나갔다. 이러한 활동을 기반으로 1900년 중추원 의관에 임명되었으ㅡ나 곧바로 사퇴하고 은둔 자정의 길을 선택했다. 1910년 8월 경술국치 후 일제가 내놓은 회유책인 노인은사금 수령을 거절하였으며, 헌병대의 회유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일제침략에 저항하다가 망국의 한을 품은채 1911년 칼로 자결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충절을 기리어 191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독립운동가 김지수선생 안내문]
마을에 있는 주택 벽화는 우리나라의 지킴이 역할을 하셨던 빛과 같은 선생의 환한 이미지를 나타내주는 듯했습니다. 밝음은 어두운 순간 더 잘 나타나는 법이니까요. 어두웠던 시대에 더 밝았던 애국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마을은 두계리인데 두계의 한자 속에 담겨진 의미를 찾아볼까요.
조선 초 이성계가 신도안에 궁궐을 건설할 때 일꾼들이 먹었던 것이 바로 팥죽과 콩죽이었다고 합니다. 두계리가 팥거리가 된 일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두계리
조선을 창건한 태조 이성계가 도읍으로 정하려고 하였던 신도안의 외곽 지역에 속한다. 원래 녹두밭이 대부분이어서 '밭거리'라 불리다가 '팔거리' 또는 '두촌(豆村)'이 되었고, 나중에는 계곡에 녹두밭이 많다 하여 '두계(豆溪)'라 불리게 되었다고 전한다. 이밖에 신도안에 궁궐을 지을 때 인부들에게 팥죽을 팔던 곳이라 하여 '팥죽거리'라고 불리기도 하였다고 전한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두계리]
마을의 형성 역사
조선시대에는 연산현(連山縣)과 연산군(連山郡)에 속하였다가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양대리(揚垈里)·구로곡(九老谷)·동서암(東西岩) 일부를 병합하여 두계리로 논산군 두마면에 편입되었다. 이후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시로 승격하면서 논산시 두마면에 속하였으며, 2003년 9월 19일 새로 설치된 계룡시에 편입되어 지금에 이른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두계리]
자연마을 볼거리
자연마을로는 구로곡·팥거리 등이 있으며, 두마면사무소와 두마초등학교 등이 있다. 국가유산과 유적으로는 충청남도유형문화유산 제134호로 지정된 은농재(隱農齋)를 비롯하여 조선시대에 세워진 효자김덕정문(孝子金德旌門)와 김광수시혜불망비(金光洙施惠不忘碑) 등이 있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두계리]
돌아오는 길에 팥거리지하차도를 지나는데 팥 벽화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아쉽게 뒤따라오던 차량으로 인해 사진을 남기지는 못했습니다.
이밖에 팥거리 마을에서 가볼만한 여행지로는 두계고택도 있으니 다시 찾아와 이번 취재에는 담지 못했던 새로운 팥거리 마을을 취재해보겠습니다.
충남 계룡시 팥거리 마을
○ 주소: 충청남도 계룡시 두계리 45번지길
○ 볼거리: 김지수 독립운동가사적지, 두계천, 두계고택
※ 취재일: 2025. 7. 6
※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 앤님의 글을 재가공한 포스팅 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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