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시 소셜미디어 서포터즈 여정순

경남 거제시 계룡로 61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을 여러 번 갔었는데 이번만큼 오래, 자세히 구경해 본 적은 처음인 것 같아요.

아이가 커갈수록 같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 좋네요.

주차공간이 넓은 편인데 평일 늦은 오후에 방문하니 더 널찍한 주차공간!

편하게 주차하고 매표소로 갑니다.

◎매표시간 09:00~17:00

◎관람시간 09:00~18:00

휴관일 : 설·추석 당일, 매주 화요일(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공휴일 다음의 첫 번째 평일)

포로수용소 유적공원/거제관광모노레일.

(화재로 거제관광모노레일은 현재 운영을 중단합니다)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전시시설 관람) 소요시간 40분~1시간

*입장료는 사진을 참고해 주세요.

※반려동물 입장 불가

저희는 거제시민 2명, 초등학생 아이 1명이라 8.000원을 내고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으로 들어갔어요.

-장애인(경증 : 본인 무료, 중증 : 본인+보호자 1인 무료)

-국가 유공자(유공자 : 본인+배우자 무료, 유족증 : 본인 무료)

예매 고객은 바로 입장하세요!

오른쪽 사진에 나와있는 것처럼 문화 관광 해설사가 대기 중이라고 하니 근무시간 확인하셔서 이런 서비스도 이용해 보시기 바래요.

바닥에 왼쪽 화살표 방향으로 가면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방향이고, 오른쪽은 거제관광모노레일 탑승 방향입니다.

우리는 왼쪽으로 가야겠죠? ^^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이라고 적혀 있는 이곳은 6.25 참전 16개의 국기와 UN 기가 게양되어 있는 UN 분수광장입니다.

넓은 공간이지만 관람 방향이 중간중간 잘 표시되어 있어 그대로 따라가면 된답니다.

탱크 전시관으로 가기 전, 관광안내소 왼쪽으로 오면 흥남철수작전 기념비가 나와요.

저도 여러 번 이곳을 방문했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되었답니다.

관람 방향을 따라가다 보면 자칫 지나칠 수 있으니 기억해 두셨다가 방문해 보시길 바래요.

메러디스 빅토리호(MEREDITH VICTORY)

'기적의 배'로 불리던 이 배는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1만 4천 명의 피난민을 태워 생명을 구한 배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한때 퇴역했다가 월남전에 다시 동원되어 임무를 다한 후, 고철로 팔려 중국의 어느 항구에서 1996년 해체되었다고 한다.

밧줄 사다리로 배에 오르는 사람들, 그들을 도와주는 군인들, 그 난리 통에 부모님을 잃어버렸는지 우는 소녀의 모습 등을 보니 가슴이 아파왔어요.

전쟁에 승자는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흥남 철수작전 기념비

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 12월 24일 흥남부두에서 민간인 10만 명을 성공적으로 탈출시켜 거제도로 후송하여 세계 전쟁사에서 가장 인도주의적인 작전으로 평가받는 흥남철수작전의 뜻을 되새기고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내 기념비를 2005년 5월 27일 건립하였음.

다시 관광안내소로 돌아와 관람 방향대로 따라가면 탱크 전시관이 나와요.

탱크 전시관

본 대형 탱크는 북한군이 남침을 감행할 때 그 선봉에 섰던 소련제 T-34 탱크이다.

동족상잔의 비극 그리고 한국전쟁을 움직였던 역사의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탱크 안에 들어가면 왼편에는 김일성, 마오쩌둥, 스탈린, 펑더화이, 남일, 오른 편에는 이승만, 맥아더, 트루먼, 워커, 리지웨이의 등신대가 세워져 있어요.

북한군 남침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를 기해 북한군은 38도 선 전역에 걸쳐 대대적인 기습 공격을 개시하면서 불법 남침을 감행하였습니다.

국군의 사수

우리 국군은 노도와 같이 밀려오는 북한군을 맞아 진퇴를 거듭하면서도 전선을 사수하기 위하여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6.25 역사관

한국전쟁의 발발에서부터 휴전에 이르기까지의 치열했던 전쟁의 주요 과정과 참전 16개국 현황, 피해 현황, 전쟁 속 삶의 모습 등을 엿볼 수 있다.

대동강 철교

중공군의 참전으로 국군이 다시 후퇴하게 되자 피란민들은 폭파된 평양의 대동강 철교를 타고 자유를 향해 처절하고 험난한 피란 길에 올랐다.

M.P 다리(MILITARY POLICE BRIDGE)

1952년 5월 7일 돗드준장이 친공 포로에게 납치되자, 연초면 연사리 연사교에 포로수용소 지역 내의 주민 1.116세대를 분리시키고 출입을 통제하던 유엔군 헌병 검문소가 설치되었다.

M.P 다리를 걷는 아이.

제일 뒤에 서서 포로들과 같은 포즈를 취해보네요.

포로생활관

당시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포로들은 규정된 통제와 규율 속에서도 제네바 협정에 의거 자율적인 내무생활이 상당 부분 허용되었다.

포로들의 생활 모습을 미니어처로 만들어 전시해놓았어요.

포로생포관

국군과 유엔군의 강력한 반격과 공세에 투항하는 북한군의 모습이 생생하게 재현되어 포로 생포 상황의 긴박감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요.

생포된 포로들은 이후 대부분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이송되었어요.

포로 수송

포로들은 LST에 승선하여 해상을 통해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이송되었고 전쟁 포로의 신분으로 수용소 생활을 시작하였다.

여자포로관

남자 위주의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는 일부 여자 포로들도 생포되어 수용되었으며 그들도 남자 포로와 동일한 수용소 생활을 하였다.

전쟁 포로 처우에 관한 제네바 제3협약 제14조

"여자는 여성이 당연히 받아야 할 모든 고려로서 대우되며, 또한 여하한 경우에도 남자와 동등하게 대우되어야 한다."

포로사상대립관

포로수용소 내의 포로들은 점차 조직화되어 친공포로와 반공포로로 갈라진 채 사상 대립 양상을 띠게 되었으며 갈등과 증오가 시작되었다.

포로 폭동 체험관

포로수용소에서 이념적 마찰은 날로 증폭되어 급기야 포로 간의 처절한 학살과 폭동으로 이어졌다. 생생했던 그 현장을 국내 최초 체험 전시관에서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여기 들어갔을 때, 큰 소리에 저도 깜짝 놀라고 괜히 무서워서 후다닥 지나쳐 온 곳이에요.

실제가 아님에도 순간 무섭게 느껴지던데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니 너무 끔찍하더라구요.

포로설득관

판문점에서 송환 희망 포로의 교환이 신속히 이루어졌지만 본국 송환을 거부한 포로들은 집요한 귀환 압박에 시달려야만 했다.

포로 귀환 및 송환

휴전과 함께 송환 희망 포로의 북송이 마무리되었으며 송환을 거부한 포로들은 드디어 석방되어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야외 막사

포로수용소의 막사와 감시초소, 취사장, 생활 도구까지 완벽하게 재현된 공간으로 '흑수선'촬영 현장이 되었던 수용소를 재현하였습니다.

무기 전시장

M577 장갑차, M46 전차, UH-1 헬기, 2.5톤 카고 등 군수품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잔존 유적지

경비대장 집무실, 경비대 막사, P.X, 무도회장 등 잔존 유적의 실물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은 평화 ZONE으로 세계 평화 미래관, 어린이 평화정원, 평화수호대, 평화광장 등이 있어요.

그중에서 평화 탐험관 1층 로비에 가면 「피란살이 거제살이」 무료 기획 전시가 있어요.

피란민 5인이 직접 기획·연출한 거제도에서의 피란살이와 거제도 정착기를 볼 수 있답니다.

그리고 같은 건물 2층으로 올라가면 폭격을 받은 마을과 전쟁터의 모습을 재현한 공간이 있는데 모형 기관총이 있어서 그런지 제 아들은 이곳을 두 번이나 반복해서 들어갔다 나오더라구요.

아이에게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을 다녀온 소감이 어떠냐 물으니 전쟁은 무서운 거라고 절대 일어나면 안 된다고 하더라구요.

우리 모두 같은 마음이 아닐까 싶네요.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은 6.25 한국전쟁의 아픔을 딛고 통일을 희망하는 역사의 현장입니다.

6.25 한국전쟁과 거제도 포로수용소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 인민군이 38도선 전역에서 일제히 기습남침을 개시하여 서울은 3일 만에 함락되었다. 국군은 미군 및 유엔군의 지원을 얻어 낙동강 교두보를 확보하는 한편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100만여 명의 중국군 개입으로 다시 38도선을 중심으로 치열한 국지전이 전개되었다.

전쟁 중에 늘어난 포로를 수용하기 위해 1951년부터 거제도 고현, 수월 지구를 중심으로 포로수용소가 설치되었고, 인민군 포로 15만, 중 국군 포로 2만 등 최대 17만 3천 명의 포로를 수용하였는데 그중에는 300여 명의 여자 포로도 있었다. 1951년 7월 10일 최초의 휴전 회담이 개최되었으나 전쟁 포로 문제에서 난항을 겪었다.

특히, 반공포로와 친공포로간에 유혈 살상이 자주 발생하였고, 1952년 5월 7일에는 수용소 사령관 돗드 준장이 포로에게 납치되는 등 냉전시대 이념 갈등의 축소 현장과 같은 모습이었다.

1953년 6월 18일 한국 정부의 일방적인 반공포로 석방을 계기로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됨으로써 전쟁은 끝났고, 수용소는 폐쇄되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1983년 12월 20일에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99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으며, 지금은 일부 잔존 건물과 당시 포로들의 생활상, 막사, 사진, 의복 등 생생한 자료와 기록물들을 바탕으로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으로 다시 태어나 전쟁 역사의 산 교육장 및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조성되었다.

끝으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을 이용해도 주차비는 따로 지불해야 하더라구요.

주차요금 사전 정산(카드 전용)으로 하면 빨리 출차 가능하더라구요.

최초 3시간, 승용차는 2.000 원 주차비가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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