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산으로

편안할 영(寧)과 넘을 월(越)

이사를 했다. 물론 영월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영월에서 영월로. 읍내에서 조금 더 시골인 면 단위로, 두어 달 잠시 머물 공간이 필요했기에 아버지 집으로 내려가 임시(?)로 짐을 풀었다. 진짜 시골 생활이 시작된 셈이다. ‘영월’이라고 하면, 보통 강원도 산촌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타지에 사는 지인들이 가끔씩 내려올 때면 번화한 읍내 규모에 놀라고는 한다. 맥도날드와 스타벅스, 올리브영을 빼고는 있을 게 다 있는 동네가 영월이다. 나 역시 쭈우욱 읍내에서 나고 자라며 아파트와 빌라에서만 살아왔으니 정확하게 ‘전원이 있는 시골에서의 삶’이라는 건 이번이 처음인 셈이다.

살며 꾸려왔던 짐을 모두 챙겨왔더니 집 안에 더이상 둘 공간이 없길래 아버지 밭에 있는 비닐 하우스로 옮겨 놓았다. 내가 이사 온 아버지 집은 골짜기 안으로 작은 마을이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마을 초입에는 집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기도 하지만, 아버지 집은 조금 더 마을 위쪽으로 올라가서 혼자 덩그러니 서 있는 집이다. 짐을 풀고 저녁 식사를 준비할 때 즈음 벌써 주위가 어두워졌다. 11월, 해가 금방지고 밤이 서둘러 찾아온다. 특히 이 동네는 조명도 없고 산이 양 옆으로 가까이 둘러싸고 있어 더 빨리 어두워지는 것 같다.

다 큰 어른이 되어서 부모님과 함께 산다는 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서로가 활동하는 시간이 다르다는 점인데, 특히나 나는 보통 새벽이 되어야 잠을 자고 아침에 조금 늦게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편이다. 그러나 부모님은 저녁 8시면 잘 준비를 하시고, 아침 6시가 되면 벌써 일어나 닭 모이를 준다. 이 문제가 내가 임시로 아버지 집에 머무는 동안 제일 큰 불편함이 되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놀랍게도 며칠만에 내 활동 시간이 바뀌며 불편이 없어지게 되었다. 그렇다. 이제는 나도 저녁 8시면 잘 준비를 하고, 아침 6시에 눈을 뜨게 되었다. 세상에!

‘전원 생활을 했더니 자연스레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게 되었어요!’의 뉘앙스는 아니다. 오히려 강제적으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었기 때문에 되려 심기가 불편하다. 강제적인 미라클 모닝을 하게 된 첫번째 이유로는, 할 일이 없다는 거다. 이미 초저녁에 온 마을이 어두워진다. 정말 새까맣게도 어두워진다. 주변에 상가도 없고 가로등도 없어서 집밖을 나서면 온 세상이 깜깜하다. 해가 지면 딱히 할 일이 없어서 TV나 핸드폰을 보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다. 그래서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시골의 새벽이 절대 조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까이에서는 개와 고양이 소리가, 멀리에서는 고라니를 비롯한 이름 모를 들짐승의 울음 소리가 들려온다. 특히 새벽 일찍 잠을 깰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닭. 이 닭들이 해가 뜰 무렵이면 집집마다 우렁차게 울기 시작하니 웬만해선 그 소리에 깨지 않을 수가 없다.

자의든, 타의든 아무튼 이렇게 강제적인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게 되었으니, 분명 지금까지 지내왔던 읍내에서의 생활 패턴과 큰 차이가 생겼다. 이런 변화가 앞으로 내게 긍정이 될지, 부정이 될지는 조금 더 지내봐야 알 것 같다. 이사를 온지 며칠 되지 않았으니 조금 더 지내며 내 생활과 마음가짐이 어떻게 바뀔지는 나도 확신할 수 없다. 지금은 좋음 반, 불편 반 정도. 아, 새까맣게 변한 시골의 밤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을 보고 있자면 우주유영을 하는 것처럼 놀랍고 신비로운 기분이 들곤 하는데, 이건 정말 멋진 일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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