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일 전
[기회기자단] 하나된 우리나라를 꿈꿨던 열정적인 독립운동가, 여운형 선생
[공레오 기자]
외교가부터 스포츠맨까지
다양한 활동을 펼친 몽양의 길
광복 80주년,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서
우리는 ‘독립운동가’ 하면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까?
나라의 해방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모습에서
항상 비장하고 진지한 표정이 생각날 것이다.
아마 야구, 축구는 물론 달리기와 철봉을 즐기는
쾌활한 성향의 독립운동가는 어쩐지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몽양 여운형 선생은
어려서부터 스포츠를 좋아했고
독립운동가로 활동을 하면서도 항상
체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하니
한결 친근하게 느껴졌다.
기자는 여운형 선생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몽양기념관’을 방문했다.
몽양기념관은 여운형 선생 생가의 복원과 함께
2011년에 개관하였다. 기념관은 한적한 곳에 있어
고즈넉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기념관은 크게 기념관 본관과 생가, 산책로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관 내에서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진행되는 문화관광 해설을 통해서
여운형 선생의 다양한 면모들을 확인할 수 있다.
기자도 사전에 전화로 예약하여
해설을 들을 수 있었다.
여운형 선생은 평등주의적 독립운동가로서
파리강화회의에 김규식을 파견했고,
3.1만세운동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던
신한청년당을 조직했다. 때로는 일본의 심장
도쿄에서 독립의 정당성을 세계에 알리는가 하면,
수차례 감옥에 투옥되는 등 독립을 위해 애썼다.
그는 도쿄제국호텔 연설을 통해
우리나라의 독립 의지를 널리 퍼뜨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또 여운형 선생은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외무부 차관으로 지내며
다양한 국제 행사들에 참여했다. 그는 일본 헌병의
감시를 피해 일부러 험난한 고비사막을 지나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피압박민족대회’에
참석하여 쑨원, 장제스, 호찌민 등을 만나
우리나라의 독립을 강조하기도 했다.
광복 이후 여운형 선생은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이끌며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나라의 기틀을 만드는 데 앞장섰다.
그 후로도 그의 열정은 지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수많은 테러 속에서도 여운형 선생은
좌우합작위원회를 조직함으로써
좌파와 우파를 중재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좌파, 우파와 같은 정치적 이념과 관련 없이
하나로 뭉쳐서 ‘통일정부 수립’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리자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여운형 선생은 좌파, 우파 양쪽의
테러에 노출되었다.
끝내 그는 1947년 혜화동 로터리에서
열두 번째 테러로 서거하게 된다.
후손들이 북한에 살고 있는 탓에 수년 동안
공산주의자로 몰렸지만, 2008년에 오명을 벗고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 받았다.
여운형은 1933년부터 조선중앙일보의
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우리나라 신문 중에서
스포츠면을 처음으로 만드는 등
신문사를 나날이 키워나갔다.
여운형 선생이 한창 바삐 일할 때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리나라의 손기정 선수가 1등,
남승룡 선수가 3등을 했다. 하지만 손기정 선수의
신분은 다름 아닌 일본 선수여서 이를 부끄럽게 여긴
선생은 기사 발행 과정에서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 달린 일장기를 지웠다. 이것이 그 유명한
일장기 말소 사건이다. 이를 뒤늦게 알아차린
조선총독부는 조선중앙일보를 강제 폐간하게
되었고, 여운형의 짧고 굵은 언론인으로서의
삶은 막을 내린다.
기념관 본관 내에서는 다양한 즐길 거리가
기다리고 있다. 전시실 출구에는 여운형 선생이
성취한 다방면의 업적을 정리하는
비디오를 볼 수 있는 영상실이 있다.
또 태극기 바람개비 만들기 세트가 비치되어 있어
손쉽게 만들 수 있는 바람개비를 돌려볼 수 있다.
선생에 대해서 보다 자세히 알고 싶어 하는
어린이 방문객들을 위한 활동지도 준비되어 있다.
방문 기념으로 스탬프도 찍을 수 있다.
휴게실도 마련되어 있어 취향별로 차와 커피를
무료로 마시며 잠시 쉬어갈 수 있다. 스티커 사진
기계도 있어 여운형 선생과
사진 한 컷을 남길 수 있다.
양평군민들과 지자체의 노력으로 복원된
생가에서는 선생의 양평 생활이 어땠는지 보여준다.
방 안에는 선생이 면도하는 모습을 실감 나게
재현하여 정말 움직일 것만 같았다.
몽양어록길은 기념관 앞에서부터 시작하여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중간중간 배치되어 있는
여운형 선생의 어록과 그에 관련된 만화를
읽을 수 있다. 묘골애오와공원은
‘나의 사랑하는 집’이라는 의미를 지닌 공원이다.
관람객들은 고요하고 아담한 공원에서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다.
몽양기념관의 특별함을 이야기할 때
어린이 야구체험장을 빼놓을 수 없다.
평소 정정당당한 스포츠정신을 좋아했던
여운형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야구와
티볼을 칠 수 있어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체험장 좌측에 커다랗고
검은 상자가 있어 자유롭게 야구 장비들을 꺼내어
야구를 마음껏 체험할 수 있다.
기자는 체험 중에 여운형 선생이
뒤에서 응원하고 있을 것만 같다고 느꼈다.
야구를 하면서 몸을 움직이고 나니 기분이 상쾌하고
에너지가 다시 차오름을 느꼈다. 여운형 선생이
왜 독립을 하려면 체력도 중요하다고 말했는지
이해가 갔다.
여운형 선생은 독립운동가 외에도
다양한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열정적인 독립운동가인 한편,
평소에는 운동을 좋아하는 이웃 아저씨 같은 모습이
매우 친밀하게 다가왔다. 비록 그가 애타게 바라던
통일은 실현되지 못했지만, 사망한 후
88서울올림픽과 2002 한일월드컵 등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가 우리나라에서
개최되었으니, 하늘에서 흐뭇하게 바라봤을 것 같다.
여운형 선생이 새빨간 티셔츠를 입고 하늘에서
누구보다 더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수많은 길거리응원단을 주도하면서
우리 민족을 또다시 하나로 뭉칠 것만 같았다.
평생동안 조국을 위해 쉼 없이 달렸으니
하늘에서만큼은 잠시 앉아서 편안히 스포츠를
관람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여운형 선생은 다양한 방면으로 우리나라의
자주독립을 누구보다 활발히 이끌었다.
하지만 김구 선생이나 안중근 의사보다
덜 알려졌다는 것이 아쉬웠다.
‘여운형 선생이 오명을 써서 아직까지도
덜 알려진 거라면, 비슷한 이유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독립운동가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몽양기념관을 찾아와
여운형 선생의 깊은 애국심을 느끼고 갔으면 좋겠다.
몽양기념관 |
○ 개관 시간 : 하절기 9:30~18:00 / 동절기 9:30~17:00 ○ 휴관일 : 매주 월요일, 1/1, 설날 및 추석 당일 ○ 관람료 : 어른 1,000원 / 중·고생 및 군인 800원 / 초등학생 500원 ○ 관람 문의 : 031-775-56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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