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가마동이 어디지?
11월 11일 토요일 10:30~15:00시까지 양천향교역 인근 어울림공원에서는 가양1동 주민자치회가 주관한 축제가 열렸습니다. 그날 무대 뒤편에는 '가양동 · 마곡동 주민이 하나 되는 제9회 가마동 한마음 축제'라는 현수막이 내걸렸습니다.
가양동 마곡동 주민이 하나 되는 축제라니 참석자 대부분은 가양동과 마곡동을 합성한 말이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마동’이란 이름에는 반전이 숨어있습니다.
사실 가마동이란 이름에는 오래전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서울 지명사전(2009.2.13 서울역사편찬원)에 따르면 가마동(加麻洞)은 지금의 강서구 가양동에 있던 마을입니다.
(주)대상 공장 일대로 이곳에 삼밭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며 조선시대에는 양천현(陽川縣)의 중심 지역이었습니다.
그리고 인접 궁산 남쪽에 볕이 잘 드는 마을이 있었는데 그 마을을 ‘고양리(古陽里)라 불렀습니다. 일설에는 조선시대 양천현아(陽川縣衙) 가까운 곳에 있던 오래된 동네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고양동 역시 가마동(加麻洞)과 함께 가양동(加陽洞)의 유래가 된 마을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가양동(加陽洞)은 가마동과 인근의 고양리(古陽里)가 합쳐져 동명이 유래했다고 합니다.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로 인천부(仁川府) 양천군(陽川郡)에 속하였다가,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의해 경기도 김포군 양동면 가양리가 되었습니다. 이후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한 서울시역 확장으로 김포군의 양동면과 양서면(옛 양천군 지역)이 서울시역에 편입될 때 가양리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가양동이 되었다가,
1963년 김포군의 양동면과 양서면 전역이 서울시 영등포구에 편입되어 양동면 지역을 관할하는 양동출장소, 양서면 지역을 관할하는 양서출장소가 설치되었습니다.
1968년 화곡동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면서 영등포구의 인구 팽창을 해소하기 위하여 1973년 관악구가 분리된 데 이어 1977년 16개 동(가양동·개화동·공항동·과해동·내발산동·등촌동·마곡동·목동·방화동·신월동·염창동·오곡동·오쇠동·외발산동·신정동·화곡동)이 분리되어 강서구가 서울시의 13번째 구로 신설되었습니다.
이후 여러 차례의 분동을 거쳐 30개 행정동으로 확대되었다가 1988년 15개 행정동(목1~4동·신월 1~6동·신정1~5동)이 분리되어 양천구가 신설되었습니다.
옛 지명이 가마동이었다는 뜻이건, 지금 서로 이웃하고 있는 가양동과 마곡동의 합한 이름이라 생각하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한마음 축제의 모토처럼 ‘가양동 마곡동 주민이 하나 되는 가마동 축제가 되었으면 그만이지.. 다만 내가 살고 있는 우리 고장의 뿌리쯤은 알고 산다면 애향심 가득한 주민이 될 것 같습니다.
강서까치뉴스 최용수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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