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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벨 선교기념관

광주 남구 양림근대거리에 있는 유진벨 선교기념관이 있습니다​​

유진벨 선교기념관

EUGENE BELL MEMORIAL HALL

'전남지역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유진벨 목사와 그의 동역자들을 기념하기 위한 유진벨 선교기념관입니다.

1904년 양림동에서 복음의 씨앗을 뿌리며 시작된 광주선교부의 역사와 남장로교 선교사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개관 : 09:00 ~~ 18:00

휴관 : 매주 월요일

1층과 지하1층 전시가 되어 있습니다

유진벨선교기념관 을 들으면서 로티벨 묘비석이 눈에 띱니다

로티벨 묘비석 설명이 자세하게 나와 있어요

유진벨 선교사의 첫 번째 부인인 로티 위더스푼 벨(Lottie Ingram Witherspoon Bell, 1867~1901)의

첫 번째 묘비석이다.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역에 세워졌으며, 한국전쟁 당시 총탄을 맞은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외증손인 린튼가의 인요한(John Linton) 박사가 양화진 선교사 묘역의 묘비석을 새것으로 교체

(재)순천기독결핵재활원이 보관하고 있다 대여해준 것이다.

광주 전남 선교의 아버지라 칭하는 유진벨​

유진벨의 발걸음을 따라

미국 선교사들은 성화 시사 후 고종의 수해서 을 게 된 것이 제기 되며

고통의 묵인 하에 다시 활기제 교통을 떨칠 수 없었다.

미국 장교 교사들은 비우스 신데 따라 정도 일부와 전라도, 제주도를 선교자료 받고 오게 되었고

또 광주군 등치면 양림리에 정학하게 되었다

특히 광주가 다른 파보다 크게 한 이유는 무신의 한 열정과 한 번도전 때문이었다.

유진벨의 첫 번째 사택

유진벨 선교사의 임시사택, 이곳에서 1904년 12월 25일 첫 예배를 드린 후 거의 1년간 예배당으로 사용되었다.

1905년 11월 15일 영구사택이 마련되자, 임시사택을 리모델링하여 11월 20일에 진료소로 문을 열었다.

이 진료소가 오늘의 광주기독병원으로 성장하였다.

진료소로 문을 연 뒤에도 주일예배는 잠시 이곳에서 드렸다.

유진벨의 편지

유진벨은 미국에 있는 가족에게 많은 편지를 남겼다.

한국에서의 선교활동 외에 한국인과 한국생활에 대한 그의 솔직한 생각을 생생하게 알 수 있다.

처음 한국에 도착했을 때의 낯선 문화에 대한 거부감과 부정적인 감정들은

점차 친화적이고 긍정적으로 변해갔다.

유진벨의 선교활동

유진벨은 자신의 집에 구경꾼을 수시로 초대하여 방안에는 언제나 사람들로 가득했으며

그 기회를 이용하여 전도를 하였다.

문에 들어서면 거울이 거의 틀림없이 방문객 구경꾼의 눈길을 끌었다고 한다

유진벨은 전도 사역, 교육 의료사역에 중심을 두었다

유진벨의 선교결과

유진벨의 선교 결과는 가시적인 것만도 목포, 광주를 위시한 전남지역에 지어진

많은 교회와 학교, 병원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목포의 양동교회와 영흥학교, 정명여학교, 목포진료소, 그리고 육지와 도서에 수많은

교회들... 광주 북문안교회, 북문밖교회, 양림교회, 숭일학교, 수피아여학교 광주진료소(현 광주기독병원),

이일성경학교가 모두 유진벨 선교사의 지휘 아래 그의 동역자들이 목숨을 바치는 각오와 헌신으로 일궈낸 선교의 열매들이다.

유진벨재단의 설립은

전남지역 선교의 아버지로 불로는 선교사 유진벨로부터 시작되어

딸 살롯벨이 월리암 린톤과 결혼하면서 린튼 가문으로 이어진다

유진벨을기억하며 ..

유진벨은 진성한 선교전략가였다

그는 어떤 일을 맡아도 그 일을 함에 있어서 지도자였으며 그 의 일은 언제나 적극적 진실적이었다 ....

지하에 전시되어진

양림동 선교사들 활동을 볼까요?

어머니의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다

선교사로, 아내로, 교사로, 여러 이름으로 활동한 이들 유진벨 선교사를 비롯하여

한국에 입국한 남장로교 여성 선교사들은 부부로 혹은

한국에서 같은 선교사와 결혼을 하여 여성 신자들을 만났다.

처음 기독교가 전래된 시기에는 남자와 여자가 한 자리에서 예배를 볼 수 없었으므로

목사는 가운데서 양 옆을 보고 신자들은 커튼을 가운데 치고 자리에 앉았다.

이러한 환경 속에 사회적 지위가 약하고 교육을 받을 수 없는 여성들에게 먼저 다가가

동료이자 교사로 따뜻한 손길을 전했다.

서서평과 전도

여성의 손을 잡아 인생을 함께한 서서평

서서평은 한국 최초의 부인조력회(현 여전도회)를 조직하고,

이일성경학교를 설립하여 불우한 여성들을 교육시켜 전도부인을 양성하였다.

자신의 월급의 반을 교회에 헌금하고 걸인, 미감아, 불우 여성들의 숙식, 교육, 진로를 책임지는

자기 희생의 삶을 살았다.

​​

교육으로 깨우침을 전하다

"성공이 아니라 섬김 "

Not Success, But Service

어둠의 시기에 믿음의 땅으로 일어나다

번성하는 광주 남장로 교회 선교중심이 되다

열정으로 전파된 복음

교회 개척의 역사

아픈 곳을 복음을 전파하다

광주진료소 시작

초대소장들

작은 진료소에서 시작하였다

기적과도 같은 손길이 이어지며

광주 나병원

최초의 나환자 수용소이다

광주 양림근대거리에 있는 유진벨 선교기념관에

한번 오셔서 유진벨을 비롯한 선교사들의 활동을 알아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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