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공주 여행 동학농민혁명 기록물 우금티전적 알림터
동학농민혁명의 기록물
공주 우금티전적알림터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아이와 함께 뜻깊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여행계획을 세우는 분들의 발길이 공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의병활동, 우금티 전적 장소는 최근 유네스코로 지정되면서 치열했던 전투현장은 또다른 볼거리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우금티전적 알림터 앞에는 주차장이 별도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편안하게 자차로 이동하시면 될 만큼 여유있는 공간으로 조성했고 내부로 들어가면 아이들과 함께 체험하기 좋은 탁본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학교에서 미술시간에 한두번씩 해보는 경험이지만, 공주에서 하는 체험은 또다른 추억을 만들어 줍니다.
우금티전적 알림터가 새롭게 조성되면서, 사적 제387호인 우금티전적은 동학 농민혁명의 큰 싸움터 "우금치"로 기록되어 있었지만, 공주 사람들이 원래 사용했던 "우금티"로 선택하게 되었고 현재 이곳은 우금티전적 알림터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공주 우금티전적은 제2차 동학농민운동 당시 최대 격전지로 1894년 동학농민군이 관군과 일본군을 상대로 마지막까지 격렬하게 전투를 벌인 장소입니다. 우금티 고개는 남쪽에서 충청감영이 있는 공주로 들어오는 중요한 길목이었기에 이곳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격전지가 되었습니다.
우금티전투 이후 이어지는 항쟁으로, 남접 농민군은 후퇴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항쟁을 이어갔습니다. 12월 전라도 일대와 해남, 강진, 장흥에서는 일본군의 대량학살에 맞서 수만 명이 모이는 치열한 투쟁을 계속하였습니다.
1895년 1월 대둔산 등 곳곳에서 항쟁은 이어졌고 북접 농민군 또한 후퇴하면서 항쟁을 이어갔습니다. 수만 명의 농민군이 참여하여 영동 용산장터전투에서 승리하기도 했지만, 보은 북실전투와 충주 외서촌 되자니전투에서 패배하면서 결국 해산하게 됩니다.
황해도에서는 농민군이 해주성을 점령하기도 하고, 1895년 3월까지 크고 작은 전투를 이어갔습니다. 그들의 가슴속에서는 포기라는 단어는 없었습니다.
전투에서 지고 이기고를 반복했지만 전쟁에서 승리하면 모든건 끝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과거 힘이 없었고 권력층은 나라가 위험했던 시기에 재산을 모아서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이론적인 설명으로 자세하게 알려 준 게시판을 지나고 나면, 작은 공간에 별도로 마련해 놓은 영상관이 나옵니다. 10여분 되는 짧은 영상이지만, 1차 동학농민 혁명을 시작으로 1894년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군의 나라사랑까지 빠르게 배울 수 있습니다.
1층으로 구성된 아담한 공간이지만 구석구석 동학운동에 관한 내용이 지도와 설명, 그림 등으로 자세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동학운동은 반봉건 농민운동이며 근대화운동, 항일운동으로서 역사적 의의가 큽니다.
"선봉진일기"라는 조선 관군의 기록에는 동학농민운동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무릎쓰고 앞을 다투어 봉우리를 차지하는 모습에 무슨 의리와 무슨 담력을 지녔는지 그들의 행동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적혀 있습니다.
여름방학 기간동안 공주만의 역사를 진심으로 배우고 싶다면, 우금티전적 알림터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우금티전적알림터
위치 : 충남 공주시 우금티로 43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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