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의 시작이 된 장소 천진암에 가봤습니다🤗

지금부터 저와 함께 천진암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까요?

천진암(天眞庵)은 분명 석굴암, 보리암, 오세암처럼

불교의 암자 이름이 분명한데 왜 천주교의 성지라고

불리는 것인지 참 오랫동안 궁금했습니다🧐

앵자봉 기슭에 주어사라는 사찰이 있었는데

천진암은 주어사의 부속 암자였던 거지요.

이 허물어져가던 암자터가 그 당시 서학을 공부하던

실학자들에겐 가장 좋은 집합장소였을 겁니다.

어찌 됐든 천주교는 불교의 도움으로 시작됐네요. ​​

널찍한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다 보면

두 갈래의 길이 나오는데 그 중앙에 촛불 모양을 한

석조물이 세워져있고 성모 마리아상이

인자하신 모습으로 서 계십니다.

이 모자이크 작품 속의 다섯 청년들이

훗날 한국 천주교의 초석을 마련한 사람들이랍니다🙎‍♂️

천진암은 우리나라 최초로 천주교 교리를 강론했던

천주교 신앙운동의 발상지입니다.

그 당시에는 종교가 아닌 학문의 하나로 여겼기에

서학(西學)이라 부르기도 했지요.

성모성당 앞에 있는 성모상인데 관을 쓰고 있습니다.

세계 평화의 성모상은 1917년 파티마에서 발현한

성모의 모습을 목격한 루치아 수녀의 목격담과 조언을

통해 제작한 작은 목각 성모상을 확대하여

2018년 6월, 높이 22m 대형 성모상을

성지 성모경당 옆에 세우고 대관식을 가졌다고 합니다.

1993년에는 ‘한민족100년계획 천진암대성당’

정초식을 가졌습니다.

2079년 완공될 예정이니 55년 뒤에

천진암대성당의 모습을 볼 수 있겠네요.

천진암의 성지 개발은 1779년의 강학이 천진암에서

개최되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고 합니다.

한민족100년계획 천진암대성당(8천평)은

현재 기둥 4개 기초와 4대문의 문틀이 세워져 있답니다. ​

실학자 이벽은 1777년부터 이승훈,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권상학, 김성원, 이총억 등

젊은 선비들과 함께 천진암에서 천주교 교리 연구

강학회를 종종 열었다고 합니다.

천진암 입구에는 200여 명이 미사를 드릴 수 있는

광암성당이 있는데 광암은 이벽의 호입니다. ​

천진암 성지는 앵자봉 산자락 깊은 골짜기여서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지는 까닭에

곳곳에 눈과 얼음이 있으니 조심해서 다녀야 합니다.

천주학을 강론했던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모자이크 작품이 그 당시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알게 해주네요.

천진암 성조묘역 정중앙에는 천주교 창립 선조인

광암 이벽의 묘가 있으며 좌측에는 선암 정약종과

만천 이승훈의 묘가 우측에는 녹암 권철신,

선암 권일신의 묘가 조성되어 있답니다.

1779년 당시 이벽 25세, 정약용 17세, 정약종 19세,

정약전 21세, 이승훈 22세, 이총억 14세, 권철신 44세 등이 학문의 영역에서 신앙의 영역으로 확대시킨

역사적인 장소!

강학터 자리 위에 있는 무덤가에서 잠시나마

숭고한 희생과 노력을 기리며 묵념 후 내려옵니다.

내려올 때 문득 하늘을 보니 구름에 가린 해를 보았는데 왼쪽을 보면 예수님 얼굴의 옆모습은 아닐까?

오른쪽을 보면 모자 쓴 소녀가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모습은 아닌가 하고 상상해 보게 되네요🙏

이곳이 바로 한국 천주교가 시작된 천진암이니까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출입 가능시간

오전 10시~오후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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