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전
도심 속 작은 사찰 용화사에 선 진천의 수호신 석조여래입상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인 용화사는 진천의 옛 읍지인 '상산지 고적조'에는 진천 용화사 석조여래입상에 얽힌 전설이 내려옵니다.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불상 맞은편인 삼덕리에 진용을 갖추고 진천읍으로 침입하다가 키가 10여 척이나 되는 대장이 우뚝 서 있어 그 위풍에 놀라 싸울 뜻을 잃고 물러나 진천읍은 그 화를 면했다.』
용화사 석조여래입상에는 국난에 얽힌 전설 때문에 호국과 관련하여 진천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있다고 합니다.
도로변에 있는 용화사는 누구나 쉽게 찾아갈 수 있는 도심 속 아담한 사찰입니다. 원래 불상이 있던 사찰은 신라 성덕왕 19년에 창건, 고려 말에 폐사되었다 하나 정확한 문헌 기록은 없습니다. 1959년 자심 스님이 중창할 때 미륵이 머무는 절이라고 해서 '용화사'라고 이름하였다고 합니다.
전형적인 도심 속 사찰이다 보니 일주문도 없습니다.
입구로 들어서면 정갈하고 아기자기한 꾸밈새가 보살님들의 부지런한 손놀림을 떠올리게 합니다.
가람 가운데 우뚝 선 거대한 석조여래입상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박가범은 덕을 가진 자, 모든 복덕을 갖추고 있어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세간에서 가장 존귀한 자, 곧 부처를 일컫는다고 합니다. 석가불이 주불인 대웅전, 박가범전 앞에 섰습니다.
'여래'라고 통칭하는 것은 불상이 어느 부처인지를 확실치 않을 때 쓰이는 것으로 구분이 어렵다는 석조여래입상은 화강암으로 된 약 7미터의 거대한 불상으로 고려 시대 불상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높이 7m가 넘는 거대한 돌기둥에 조각된 석조여래입상은 마을 사람들은 미륵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큰 키에 비해 양감 없는 돌기둥형 신체, 빈약한 세부 표현 등이 고려 시대 거대 불보살상의 특징을 보이고 있으나 얼굴과 몸매에서는 일반적인 고려 시대 거상들보다 훨씬 부드러운 표정이라고도 합니다. 목·팔 등을 치장한 구슬을 꿴 장식인 영락과 왼손에 쥐고 있는 줄기와 오른손에 쥐고 있는 연꽃이 있어 불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불상은 진천 지방 호족 세력에 의해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합니다.
석조여래입상 옆에는 마치 공양하는 모습처럼 보이는 작은 석조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1980년 용화사 인근 개울 바닥에서 발굴된 것으로 고려 시대 유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머리에 원통형의 장식 없는 높은 관을 쓴 모습이며, 이마와 눈·코 등은 많이 닳아 있지만 입가의 미소나 얼굴의 윤곽이 전체적으로 원만합니다.
깔끔한 사찰 여기저기에는 찾아오는 이들을 미소 짓게 하는 다양한 소품들이 있어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마치 병풍을 둘러치듯 한 용화사 뒷산인 걸미산 녹색 나눔 숲이 잘 조성되어 있어 가벼운 산책코스로도 좋은 곳입니다.
진천 용화사
충북 진천군 진천읍 소강정1길 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