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나라의 독립을 위해 외치던 광주의 만세운동
광주시 중앙로 125번지(경안동 53~2)에는
경안동 행정복지센터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경안동 행정복지센터 이곳은 예전에 광주군 군청이 있던 장소였고 광주의 원도심이던 곳입니다.
1917년 남한산성에 있던 광주 군청이 경안리로
(지금의 경안동 행정복지센터) 옮겨오며 경안동은
광주의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의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고 합니다.
광주 군청 앞(현재 경안동행정복지센터)에서
1919년 만세운동을 했던 곳입니다.
경안동 행정복지센터 입구 한쪽에는
<광주 군청 3.1운동 만세 시위지> 표지석이 있습니다.
시민들이 보통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표지석 앞에서
표지석에 기록된 내용을 읽어보면 1919년 광주군
군청 앞에서도 만세 운동을 했던
당시의 내용을 알게 됩니다.
표지석에 기록된 내용을 옮겨봅니다.
중앙로 125번지 광주 군청 3.1운동 만세 시위지는 3.1운동 당시 대규모 독립 만세 시위가 일어난 곳이다. 1919년 3월 28일 오후 2시 무렵에 2,000여 명의 시위대가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 만세를 외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군청사와 광주 우편소 건물에 돌을 던져 건물 유리창을 깨트렸다. 시위대가 총기 탈취를 시도하자 헌병들이 이들을 향해 발포하였고, 6명 사망 15명이 부상 당하였다. |
다음 날인 29일에도 경안리 부근에서 200~300여 명의 주민들이 모여 산발적으로 시위를 벌였다는 내용입니다.
광주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있는
광주 초등학교 정문 옆에도 표지석이 있습니다.
표지석의 내용을 읽어보니
<광주 공립보통학교, 동맹 휴학 운동지>
학교 당국(당시 일제강점기)의 민족 차별에 맞서
학생들이 동맹 휴학을 일으킨 곳으로
1921년 8월 4일, 일본인 목수가 한국인 학생
황추호를 구타하여 실신 시켰으나
경찰에서 훈방 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광주 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이에 반발하여
8월 29일 무더기로 휴학원을 제출하여
동맹 휴학을 단행하였던 곳입니다.
이에 8월 30일과 31일에 학부모들이 회의를 하여
일본인 목수를 고소하였고 결국 목수는
재수감되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일본 교육 당국의
민족 편견과 차별에 맞서 항일 민족정신을
표출한 사례로서 역사적 의의가 있습니다.
(당시 조선일보 기사 1921년 9월 2일 자 광주 공보교
학생구타사건 속보로 게재되었다고 합니다.)
광주시에도 우리 조상들, 윗 세대들께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또 내 고장을 지키기 위해 만세 시위를 했던
시위지와 그 내용을 기록해 놓은 표지석을 관심있게
읽어보며 그 분들의 얼을 되새겨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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