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위강국!

백제가 다시 강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혹시 역사 좋아하시나요? 오늘은 지금으로부터 1,500년 백제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웅진백제역사관을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웅진백제역사관은 충청남도 공주시 왕릉로 37에 위치해 있습니다.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하는 안심 관광지에 선정되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공주를 방문할 때마다 웅진백제역사관 앞을 자주 지나쳤는데요, 웅진백제역사관의 외관은 옛 왕의 무덤인 고분처럼 생겨서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웅진백제역사관의 내부는 따듯한 분위기가 나는 나무를 사용해서 친근하면서도 고급스럽습니다. 마치 왕의 무덤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삼국시대 역사를 보면 전라도가 고향인 저는 백제가 가장 빨리 멸망해서 속상한데요, 사실 백제는 고구려를 세운 주몽의 아들 중 하나인 온조의 후손으로 고구려와 같은 핏줄이며 삼국 중에서 가장 뛰어난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제는 475년 고구려의 공격으로 수도인 한성을 빼앗기게 되자 웅진으로 천도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공주인 웅진은 산과 강으로 둘러싸여 적들이 들어오기 어려운 지역으로 남쪽으로는 전라도 지역의 넓은 평야와 가깝고 금강을 통해 중국과 일본을 왕래할 수 있어서 다시 나라를 일으키기에는 충분한 곳이었습니다.

백제가 영토확장과 번영을 위해 보다 넓은 사비로 천도하기 전까지 웅진에는 다섯 왕이 살았는데요. 문주왕은 웅진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였고 삼근왕은 나이가 어렸지만 귀족 세력을 억누르기 위해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동성왕은 서남부로 백제의 영토를 넓히고 국경 방어를 강화하였으며, 무령왕은 사회를 안정시키고 중국과 다시 교류하며 강국임을 선언했는데요, 성왕은 웅진이 계속해서 성장하는데 지리적 한계가 있어서 지금의 부여인 사비로 수도를 이전하였고 국호를 남부여로 바꾸었습니다.

웅진백제역사관은 백제 무령왕이 양나라에 보낸 국서에 백제가 여러 번 고구려를 격파하여 마침내 다시 강국이 되었다는 ‘갱위강국’이라는 말을 사용할 정도로 짧은 되살아난 백제의 모습을 재조명하고 있습니다. 백제는 다시 강국이 되기 위해 두 번째 수도인 웅진에서 국경의 방어를 튼튼이하고 제방과 저수지 등을 정비하여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켰습니다.

그리고 중국 남조의 여러 나라와 교류하면서 불교, 도교와 함께 도자기, 기와 등의 제작기업을 받아들여서 새로운 문물을 양분으로 삼아 문화강국이 되었습니다.

웅진 시대에 백제는 한류의 원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국과 일본, 동남아시아와 인도까지 교류하였습니다.

하지만 백제는 사비로 천도한 이후 660년에 신라와 당나라로부터 공격받게 되었는데요.의자왕은 웅진으로 다시 피난을 오게 되었지만 결국 백제는 멸망하게 되었고

웅진은 통일신라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중남부를 대표하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웅진백제역사관은 ‘무령왕릉 가디언즈’ 4D 애니메이션, 가상현실 옷장과 틀린그림찾기, 미니도서관 등 체험을 통해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시설들을

다양하게 갖추고 있습니다. 평소 역사를 좋아하신다면 꼭 방문해보시길 바랍니다.

웅진백제문화역사관

위치 : 충남 공주시 왕릉로 37

매일 09:00 -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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