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소 박산소 석장승이 있는

웅진동 마실

디지털공주문화대전에 의하면, 공주시 웅진동의 한산소(韓山所)와 박산소(朴山所) 마을에서는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정월 열 나흗날 남·여 장승을 합궁시켜 마을 제사를 지냈다고 해요. 현재는 웅진단제에 흡수되어 독립된 행사는 없어졌으나, 비정기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시행되고 있을 뿐이라고 하네요. 오늘은 (음력) 정월 열 나흗날 열린 마을 제사를 놓쳐 큰 아쉬움을 안은 채 한산소와 박산소의 석상을 둘러보기 위해 길을 나서 보았습니다.

장승배기길 전경

한산은 두리봉 또는 두루봉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봉우리가 둥글며 매우 높게 빼어나 있어 이 같은 이름이 붙어졌다고 한다. 산 아래 한씨의 묘가 있다는 한산소라 불리는 마을이 있는데, 이 명칭에서 따온 것으로 추측된다.

디지털공주문화대전

웅진 2~5통 마을회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외약리, 용당리, 박산리, 서혈동, 한산리, 송산리, 하봉촌 일부를 병합해 용당주읍(龍堂州邑)이라 하고, 1938년 주외면이 폐지되면서 공주읍에 편입되어 용당정(龍堂町)이 되었다가 1947년 웅진동이 되었다고 한다. 사진 속 용당정(龍堂亭)은 옛 지명에서 따온 정자 이름으로 생각된다.

먼저 웅진동 장승배기길에 자리하고 있는 '한산소 석장승'을 찾기 위해 웅진동 2~5통 마을회관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서 봤어요.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 왼편으로 '웅진 2통 복지회관'이 나타나고 맞은편에 자리한 빌라 인근에는 '용당정'이라는 정자가 있었어요. 이곳에서부터는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우회전을 하면 목적지까지 헤매지 않고 갈 수 있습니다.

'한산소 석장승'이 서 있는 장승배기길

세 번의 우회전 끝에 현재는 영업을 중단한 운수회사 주소지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담장 옆의 소나무 아래 세워진 작은 석상 2기도 발견했습니다. 참고로 혹자는 '장승'이니 '벅수(장승을 달리 이르는 말)'라는 명칭 대신 '수구막이(마을에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거나 또는 마을의 기운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 것)'나 이정표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의견을 내면서 한산소는 공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임을 근거로 들고 있습니다.

'한산소 석장승'이 서 있는 장승배기길

한산소 동자석 & 입석(왼쪽)과 그 배면(오른쪽)

한산소 석장승' 2기 중 왼쪽의 석상은 묫돌이 신앙의 대상화가 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데요, 조복의 형태와 홀(笏)을 들고 있는 모습에서 동자석으로 불립니다. 우측의 입석은 동자석보다는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본래 한산소의 '장승' 역할을 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한산소 석장승' 2기에는 무명 실타래가 걸려 있었고, 주변에는 북어가 나뒹굴고 있었으며, 군데 군데에는 황토흙이 놓여 있었습니다. 정월 보름날 마을 제사를 지낸 흔적으로 마을의 안녕과 풍요, 마을 사람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면서 부정한 사람과 물건을 들이지 못하게 하는 신앙 의례라 생각됩니다.

한산소 석장승을 둘러보고 나서 다리(橋) 있는 데까지 산책길에 나섰다는 동네 할머님을 만나 본격적으로 동네 마실에 따라나섰습니다. 마을길 주변은 온통 전답뿐이었는데요, 연미산을 바라보며 직진하다 보니 흔적만 남은 다리 하나가 보였어요. 다리 너머 (배) 과수원 앞에 다다르자 동행한 할머님께서 "다리가 아파서 쉬었다 가겠노라."라고 말씀하셔서 감사 인사를 드리고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공주웅진동고분군(公州熊津洞古墳群)

과수원 맞은편에는 관계자 외 출입을 금지한다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습니다. 작년 3월부터 '공주웅진동고분군' 정비사업부지 내 유적 발굴조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라고 해요. '공주 웅진동고분군'은 1979년 박산소(朴山所) 마을 산기슭에서 조폐지공장(造幣紙工場) 건설 공사 중에 발견되었으며, 삼국시대 백제의 독무덤· 궁륭상천장돌방무덤를 비롯해 통일신라· 고려시대· 조선시대

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이라고 하네요.

웅진동고분군을 지나니 다리 하나가 놓여 있고, 다리를 건너자마자 곧바로 갈림길이 나옵니다. 한산소에서 만난 할머님이 일러 주신 대로 우회전하여 공주소방소가 보이는 곳을 향해 소하천을 따라 나아가니 '박산천(朴山川)'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이며, 박산소 마을에 들어섰음을 확실하게 알려 줍니다.

공주시의 지명 유래에 의하면 '박산소' 마을은 웅진동의 중심이 되는 마을인 '소정이'의 남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예부터 박 씨들의 산소가 있다 해서 박산소라 부른다고 해요. 멀리 아파트 단지가 밀집되어 있는 곳이 오늘 여정의 종착지입니다.

공주의료원이 보이는 곳까지 오니, 다리 하나가 또 나타납니다. 이곳에서 다리를 건너 우측으로 진입하니 2022년 12월 말에 오픈한 커피숍이 나타납니다. 알음알음으로 '논 뷰(畓 view)'가 장관이라는 소문이 들리는 곳으로 카페가 들어서기 전에는 이곳 역시도 전답이 있던 자리였습니다.

박산소 석장승 중 할아버지 장승은 65cm이고, 할머니 장승은 53cm라고 한다.

'박산소 석장승' 2기는 전신주에 가려 눈에 잘 띄지 않았지만, 카페 입구 쪽에 서 있었습니다. 공주문화원 자료에 의하면 1990년대 중반만 해도 커다란 느티나무가 주위에 서 있었다는데요, 1997년대쯤에 아름드리 느티나무는 베어지고 말았다고 해요. 현재는 카페 사장님이 느티나무를 대신해서 폐벽돌을 쌓아 석장승을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정월 보름날 마을 제사를 지냈는지 석장승에게는 옷이 입혀져 있었으며, 무명 실타래를 두른 머리에는 북어가 꽂혀 있었어요. 한산소 석장승과 달리 북어가 석장승 얼굴 한가운데에 놓여 있었으며, 주변에 황토흙은 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웅진교회(공주시 백제문화로 2125-3)

박산소 석장승을 둘러보고 나서 아파트 밀집지를 향해 나오니, 웅진교회가 보였습니다. 교회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웅진동에만 웅진교회가 세 곳이나 된다고 해요. 카페가 생기면서 랜드마크 역할을 해주기에 길을 헤맬 일은 없지만, 논 뷰가 예쁠때쯤 박산소 석장승을 보고 나서 한산소 석장승을 보고자 할 때는 주소지를 확인한 후 웅진교회 골목에서 출발하시면 될 듯합니다.

한산소· 박산소 마을을 떠나오며 어느 다큐사진가가 개인전에서 "공주를 다 돌아봤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아직도 찾아볼 곳이 너무 많습니다"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아직도 돌아볼 곳 많은 공주 구석구석을 찾아 또다시 한 걸음을 내디뎌 봐야겠어요!

웅진동

위치 : 충남 공주시 백제문화로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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