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4일 전
서혈사지 북쪽에 있는 동굴법당, '구란사(龜卵寺)'를 아시나요?
공주 가볼 만한 곳
공주 구란사
공주 원도심에는 (추정) 백제시대 사찰인 '대통사(大通寺)'가 자리했던 대통사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대통사지를 중심으로 4방위에 네 개의 혈사(穴寺)가 있었다는 기록과 설이 전해집니다. 현재 남혈사지, 서혈사지, 동혈사지로 추정되는 곳의 존재가 확인됐으며, 북혈사지에 대해서만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귀동냥으로 혈사의 조건에는 천연석굴과 극심한 가뭄에도 절대 마르지 않는 샘물이 있어야 한다고 듣고 있고, 알려진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사실이 많아 개인적으로 4개 혈사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오늘은 네 개 혈사 중에 개인적으로 호기심이 충만해서 (추정) 서혈사지 북쪽에서 발견했다는 천연석굴을 찾아 나서 봤습니다.
천연석굴을 찾아 나서기 전에 웅진동 시어골2길에 자리한다는 '구란사(龜卵寺)'를 키워드로 검색해 봤습니다. 예상대로 검색되지 않았습니다. 시어골에 오래 사신 분들도 서혈사지를 전혀 모르거나, 천연석굴에 만들어졌다는 법당에는 간 일이 없다는 대답을 부지기수로 들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5월에만 시어골을 세 차례나 찾아야 했어요.
5월에 두 번째로 시어골을 찾았을 때 동네 분께서 "작년 여름 물난리가 나서 입구가 없어져서 찾기 힘들 거예요."라는 정보를 주셨습니다. 입구까지 직접 알려 주셨기에 희망이 보여서 세 번째로 시어골을 찾아 나섰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서혈사지와 천연석굴을 찾고야 말리라,"라고 다짐을 하고 길을 떠났는데, 뜻이 하늘에 닿았는지 운 좋게 고사리를 캐고 계신 무량스님을 뵐 수 있었습니다. 무량스님은 11년째 천연석굴에 동굴법당을 만들어 부처님을 모시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무량스님은 서혈사지와 석굴사원을 찾고 있다는 말에 고사리 군락지에서도 보이는 구란사 표지석을 가리키며 "길 따라 200여 미터 쭉 올라가다 보면 구란사가 나타날 거예요. 천천히 올라가셔서 산에서 내려오는 물도 마시고, 법당 구경도 자유롭게 하세요. 사진? 찍어도 괜찮습니다!"라며 친절히 길 안내와 사진 촬영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구란사 표지석이 세워진 곳에서 임도를 따라 올라가다 보니 길 양옆으로 석등이 세워져 있고, 포대화상 불상이 놓인 공간이 나타났습니다. 틀림없이 여기다! 확신이 들었습니다.
아, 참! 포대화상(布袋和尙)은 오대(五代) 시대 후량(後梁)의 고승으로 성씨와 이름의 출처를 알 수 없으나, 선종에 명석하였던 인물로 세간에는 미륵보살(彌勒菩薩)의 화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정한 거처가 없고, 항상 긴 막대기에 포대 하나를 메고 다니며 동냥하여 어려운 중생을 돌봐 주었다고 합니다. 포대화상 불상이 자리한 곳에서 보니 유독 햇빛이 밝게 들어오는 지점이 보이던데요, 그곳이 바로 무량스님이 일러주신 서혈사지로 가는 입구였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찾은 서혈사지를 찬찬히 둘러보고 나서, 왔던 길을 되돌아나가 50m쯤 위로 오르니 작은 암자가 보였습니다.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 고사리를 채취하신다더니 무량스님은 결국 그때까지 법당을 비워놓고 계신 상태였습니다.
좋든 싫든 혼자서 구란사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구란사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가 앉을 규모라고 예상했는데 그보다는 규모가 훨씬 컸습니다. 그리고 무량스님께서 곳곳에 연등을 달고, 꽃을 심고, 화초를 키우며 정성으로 가꾸고 계셔서 소박하나 정갈했습니다.
경내 시설물을 대충 훑어보고 나서, 서혈사지 발굴 시에 함께 찾았다는 석굴사원의 위치를 찾아봤습니다. 얼핏 보고 법당 위 산꼭대기에 부처님을 모시고 있어 그곳인 줄 알았습니다. 의아해하며 '그건 아닐 거다!'라고 생각을 고쳐먹고 그다음에 시선이 머문 곳은 산신을 봉안한 작은 동굴이었습니다. 그곳 역시도 자연 동굴을 이용한 석굴사원이라고 하기에는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연등 사이로 '대웅전(大雄殿)'이라 쓴 편액을 발견했습니다. 법당 가운데 있어야 할 편액이 측면에 있는 점도 상식 밖인 데다 무량스님이 부재중인데 함부로 법당 문을 열 수 없어 처음에는 주저할 밖에요. 그러나 그간의 고생한 시간과 자유롭게 둘러보라고 무량스님께서 말씀하신 것도 있어서 대웅전 편액 아래 있는 문을 떨리는 심정으로 살짝 열어봤습니다.
"아니, 이게 뭐야!" 외마디 감탄사가 터져 나왔습니다. 예상 밖의 놀라운 광경에 법당 내부로는 발을 들이지도 못하고 문고리를 쥔 채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하물며 '공주 서혈사 석불좌상'과 통일신라시대의 석불좌상 3구를 이곳에서 발견한 발굴자들은 경이로운 광경에 얼마나 놀랐을까요?
약수 한 바가지를 들이켜며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한 산사에서 먼 곳을 내다보고 있노라니 무념무상에 젖어 들었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더니......" 그토록 찾고자 했던 서혈사지와 석굴사원을 찾고 나니 외딴 산사에 혼자 있어도 무섭기는커녕 몇 년 묵은 체증이 싹 가시는 듯 속이 시원했습니다.
한참 동안 구란사에 머물다 고사리를 꺾고 계시는 무량스님께 내려가 좋은 말씀을 듣고, 애써 캐신 고사리도 한 줌 얻어 귀가했습니다. 다사다난했던 5월을 보내며 귀한 인연과 소중했던 시간에 감사드리고, 누구나 서혈사지와 구란사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안내판의 위치와 내용을 보강해 나갈 방도가 찾아지길 바랍니다.
서혈사지
위치 : 충남 공주시 웅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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