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일 전
전북도립국악원 - 신명나는 젊은 소리꾼들의 한마당 : 목요상설 가무악 8인8색 소리열전
목요상설 가무악
'8人8色, 소리열전’
매주 목요일 열리는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의 신명나는 국악공연 ‘목요상설 가무악’의 2025년 상반기 공연이 6월 19일 공연을 마지막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목요상설 가무악은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관람하여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국악 프로그램으로, 창극단과 관현악단, 무용단이 모여 도민에게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보이는 프로그램입니다.
목요상설 가무악의 마지막 공연인 ‘8人8色, 소리열전’을 관람하기 위해 전주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을 찾았습니다.
목요상설 가무악은 목요일 저녁 7시 30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명인홀에서 열리는데요. 이날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은 다른 공연 일정과 맞물려 주차가 어려울 정도로 공연장을 찾은 사람들로 붐비었습니다.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공연여권’은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공연패스 제도입니다.
공연을 관람하고 ‘공연인증 스탬프’를 모으는 재미까지 더해진 공연여권은, 관람 시마다 스탬프를 받을 수 있으며, 일정 횟수를 채우면 국악원에서 준비한 소정의 기념품도 증정 받을 수 있습니다.
어느덧 저녁 7시를 훌쩍 넘겼음에도 해가 지지 않은 걸 보니, 여름이 성큼 다가왔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무더운 여름날, 신명나는 우리 국악 공연을 관람하는 것도 한여름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의 하나일 것입니다.
명인홀에는 벌써 공연을 보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공연여권을 들고 있으니, 마치 보딩시간이 임박해 서둘러 입국심사를 받는 느낌을 받는데요. 예약해둔 표를 수령하고 남은 공연여권 스탬프도 받아보겠습니다.
공연 스탬프를 모두 모아 제출하자, 관계자분께서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에서 준비한 기념품을 건네주셨습니다.
바로 전북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선자장 방화선 명인의 작품인 ‘부채의 전설, 단선의 맥(脈)’ 전통 부채였는데요. 나무 향이 은은히 풍기며 신비로운 매력을 더하는 이 부채는, 무더워지는 여름에 특히 잘 어울리는 기념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느껴지는 적절한 긴장감. 매번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은 한국의 전통과 소리 문화를 배우기 위해 가무악 공연 때마다 꾸준히 외국인 관람객들이 보이는데, 목요상설 가무악은 한국의 매력을 알리기 좋은 의미 있는 공연 프로그램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공연 ‘8인8색, 소리열전’은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소속의 젊은 소리꾼 여덟 명이 각자 준비한 소리로 판소리의 매력을 마음껏 펼쳐 보이는 무대였습니다.
수궁가, 심청가, 춘향가, 흥보가, 적벽가 등 대표적인 판소리 다섯 바탕을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소리와 깊은 감동을 전했습니다. 공연 전, 사회자분의 간단한 해설을 시작으로 본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수궁가 中 상좌다툼 대목
소리 유희원, 고수 김태영
<수궁가>는 토끼가 자라의 꾐에 빠져 용궁에 갔다가 죽을 뻔한 위기 속에서 재치를 발휘해 살아 돌아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가운데 ‘상좌다툼’ 대목은 여러 바다 동물들이 '상좌(上座,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장면으로, 권력과 계급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는 인간 사회의 모습을 동물에 빗대어 풍자한 대목입니다.
소리꾼은 부채를 능숙하게 휘두르며 동물들의 성격과 감정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는데, 장단을 맡은 고수와의 호흡과 관객들이 내는 “얼쑤”, “그렇지” 추임새는 마치 관객과 소리꾼, 고수가 무대를 함께 장식하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수궁가 중 상좌다툼 대목은 단순한 희극적 장면을 넘어, 인간사회 구조와 인간 심리를 해학적으로 비춰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판소리가 유행하기 시작한 조선 후기뿐만 아니라 오늘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에 대한 공감과 성찰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심청가 中 타루비 대목
소리 이정인, 고수 김태영
다음은 <심청가> 중 ‘타루비 대목’입니다. ‘타루비’란 “눈물을 흘리며 세운 비석”이라는 뜻으로, 한자어로는 ‘떨어질 타(墮)’, 눈물 루(淚), 비석 비(碑)’를 씁니다. 이 대목은 곧 심청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앞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룹니다.
줄거리는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진 이후 맹인 심 봉사는 재산을 얻었지만, 타루비(심청의 효행을 기린 비석) 앞에서 딸을 그리워하며 오열하는 장면입니다.
‘8인8색’ 공연 가운데 가장 감정선이 돋보였던 무대로, 울림 있는 소리꾼의 곡조는 마치 <심청가>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부채를 쥔 채 목청 높여 절절히 부르는 동작 하나하나에서도 마치 감정이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았는데, 마치 파도처럼 감정을 밀고 당기며 무대를 울림의 장으로 만듭니다.
춘향가 中 초경이경 대목
소리 이종호, 고수 박추우
<춘향가> 중 ‘초경이경’ 대목은 어사가 된 이몽룡이 거지 행색으로 변장해 춘향의 집에 들러 밥을 얻어먹은 뒤, 옥에 갇힌 춘향을 몰래 찾아가는 장면입니다.
이 대목의 특징은 새 소리, 바람 소리, 귀신 소리 등 다양한 표현과 감옥 속 춘향의 외로움과 슬픔을 극적으로 부각한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5월에 관람했던 ‘목요상설 가무악’ 공연에서는 춘향전을 ‘어사 상봉 대목’으로 단막극으로 본 적이 있는데 초라한 행색의 이몽룡이 남원으로 내려와 월매와 상봉하는 과정을 표현했습니다.
단막극으로 먼저 접하고 판소리의 ‘초경이경’을 들으니 때마침 그때의 공연 속 장면이 절로 떠오르게 하는 대목이었습니다.
흥보가 中 제비노정기 대목
소리 한단영, 고수 김태영
<흥보가> 중 제비노정기 대목은 흥보에게 은혜를 입은 제비가 흥부에게 보은하기 위해 강남(중국의 이남 지역, 당시 자원이 풍부하고 풍요로워 강남에 빗댐)에 박씨를 입에 물고 조선에 있는 흥보 집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은 대목입니다.
소리꾼은 이 대목에서 제비의 여정을 사람처럼 묘사하며, 은혜를 갚기 위해 천 리를 나는 장면을 풍성한 언어와 익살스러운 몸짓으로 풀어냅니다.
흥보가 곤궁 속에서도 선을 행한 결과 기적 같은 복이 찾아오게 되는 복선을 마련합니다. 제비의 여정을 따라가며 이야기 속 상상 세계에 흠뻑 빠져들게 됩니다. 조선에 당도한 제비가 흥보 집에 가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지역 곳곳을 유랑하는 대목이 흥미로웠습니다.
심청가 中 행선전야 대목
소리 최현주, 고수 박추우
<심청가>의 타루비 대목에 이어 ‘행선전야’ 대목입니다. 심청이가 아버지의 눈을 띄우기 위해 인당수로 끌려가기 전날 밤, 주무시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애통하게 울며 부르는 대목으로 ‘타루비’ 대목 못지않게 감정을 자극하고 울림이 있는 대목입니다.
심청은 아버지 심봉사에게 이별을 말하지 못한 채 내일 새벽 사라질 운명을 안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위해 스스로 희생을 결심한 딸의 마음과 아무것도 모른 채 잠든 아버지의 모습은 극적인 대비를 이루며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소리꾼은 절제된 슬픔과 고요한 정서를 섬세한 창과 호흡으로 표현하며, 심청의 내면 속 고뇌와 결단을 드러냅니다. 고수의 장단도 격정보다는 잔잔한 여백을 살려, 오히려 침묵의 비극을 더욱 강조합니다.
‘행선전야’ 대목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부모를 살리려는 절대적인 효심을 담아낸 장면이자,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엄숙한 결단을 담은 대목입니다. 그 안에는 사랑, 두려움, 체념, 연민, 그리고 아주 깊은 고요가 녹아 있습니다.
적벽가 中 불지르는 대목
소리 이세현, 고수 박추우
마지막은 <적벽가> 중 불지르는 대목입니다. 개인적으로 소설 삼국지를 좋아해 어느 때보다 몰입하며 즐겁게 본 대목입니다. 줄거리는, 적벽에서 동오의 대도독인 주유와 촉의 제갈량의 기지로 조조군의 전선이 몽땅 불타기 시작하며 조조의 백만대군을 무찌른다는 내용입니다.
적벽가 중 불지르는 대목은 어느 대목보다 리드미컬하고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데, 불화살에 전선이 활활 타오르며 조조군의 병사들이 이리저리 혼비백산하다 죽는 장면을 익살스럽게 표현하였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대목의 주요 시점이 조조군의 병사들마다 각각의 사연과 상황을 담아 시점을 조조가 아닌 병사들에게 맞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새 공연을 마치고 나니 해가 진 늦은 저녁 시간이 되었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나갔던 8인8색 소리열전 공연이었는데요.
전북의 젊은 소리꾼들이 선보이는 당찬 기량과 진심 어린 목소리를 통해, 우리는 판소리의 미래가 여전히 희망적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최근 유튜브를 통해 판소리의 매력에 빠져 프랑스에서 유학하러 온 외국인 소리꾼 ‘마포 로르’씨의 사연을 접한 바 있습니다. 우리 판소리가 세계인의 매력을 끌어당기는 세계인의 예술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의 목요상설 가무악 공연은 잠시 휴식기를 가진 뒤, 하반기 프로그램으로 다시 여러분을 찾아뵐 예정입니다. 다가오는 하반기 목요상설 가무악과 함께, 우리 국악이 전하는 깊은 감동과 행복한 시간을 함께 나눠 보시길 바랍니다.
글, 사진 = 조영인 기자
- #전북특별자치도
- #2025전북
- #전북도립국악원
- #목요상설가무악
- #소리열전
- #국악프로그램
- #전북공연
- #볼만한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