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궂은 6월 마지막 주말이다. 일찍 찾아온 장마 탓에 높은 온도와 습도, 꿉꿉함이 가득하다. 기상청은 비가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어 잠시 쉬었다가 오후 2시부터 다시 내릴 거라는 예보다.

오늘은 염창동에 있는 이수어린이공원을 찾았다.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을 뿐, 빗방울은 아직 내리지 않고 있다. 공원 중앙의 그늘 쉼터(퍼걸러) 아래에는 서너 분의 어르신들이 비둘기에게 먹이를 던져주고 계시고, 할아버지 한 분이 운동기구에서 내려오시며 비닐우산을 들고 공원 밖으로 나가신다.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들어선 아빠는 아이가 그네를 타는 걸 도와주고 있다.

비둘기들이 몰려다니며 먹이를 찾는 모습은 어느 공원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도시에서 흔하게 만나는 비둘기는 사람들과 가장 가까운 동물 중의 하나로 먹이도, 배설물 처리도 사람의 몫이지만, 아이들에게 동물과의 교감, 정서 안정, 호기심과 관찰력 증진이라는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그럼에도 배설물로 인한 위생 문제를 간과할 수 없다. 손을 자주 입으로 가져가는 아이들이나 바닥에 주저앉을 때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큰 나무들과 작은 정원수들이 빼곡하고, 공원 가득 머금은 습한 기운은 나뭇잎을 더욱 짙푸르게 한다. 나무를 몇 그루 솎아내고 가지치기를 하면 나무 성장에도 좋고, 오늘 같이 궂은 날에도 공원 이곳저곳이 탁 트여 넓고 시원스럽게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전체적으로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는 공원이었지만, 고장 난 운동기구 하나가 테이프로 둘러쳐져 있는 모습이나 비구름 가득한 하늘과 습한 공기 때문인지 왠지 모르게 머릿속이 붕 떠 겉돌고 집중도 되지 않는다. 아마도 비를 걱정하며 시간에 쫓기듯 공원을 바라보는 마음탓인지도 모르겠다. 비구름으로 채운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내릴 기세다.

어느덧 12시가 넘어 점심을 먹고 다시 공원을 찾은 오후 1시경. 우려하던 빗방울이 간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공원 입구에서 캘리그래피와 슬러시 나눔 행사 테이블을 설치하던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며 비를 피해 그늘 쉼터로 테이블들과 슬러시 기계를 옮기고 있었다. 동시에 1톤 화물 트럭 한 대가 공원 입구에 멈춰 서고, 작업복을 입은 대여섯 명의 어른들이 삽 등 연장을 들고 고장 난 운동기구의 테이프를 걷어내고 바닥 공사를 시작한다. 여기에 공원을 끼고돌며 확성기로 요란하게 광고하고 다니는 차량 주위로 어르신들이 몰려들면서 공원 안팎은 순식간에 혼란스러워졌다.

이런 어수선함에 휩쓸려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사이에 빗방울은 다행히 멎어 있었다. 두 분의 여성이 허리 숙여 쓰레기를 줍는 모습에 조심스레 다가가 촬영 허락을 구하며 무슨 일을 하시는지 여쭸다. 돌아온 대답은 어린이공원 봉사활동을 준비 중이라는 이야기였고, 장맛비를 무릅쓰고 나왔다는 말에 호기심과 함께 의구심이 피어올랐다.

이 후텁지근한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슬러시 기계를 설치하는 중년 남성들의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도대체 누가, 왜 이렇게까지 할까?’ 슬러시 기계 건너편 테이블에는 캘리그래피 도구들과 인쇄물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현수막이 걸리고, 시원한 슬러시와 예쁜 손글씨를 제공하는 무료 봉사 활동이란다. 그 열정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봉사자들은 대부분 어르신들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연배의 분들이 찜통더위와 끈끈한 습기가 심한 날씨에 구슬땀을 흘리는 모습은 말을 잊게 한다. 처음에 의구심이 가득했던 마음은, 그분들이 오로지 어린이들을 위해 이 행사를 준비한다는 이야기에 이내 뭉클한 감동으로 바뀌었다. 그 무더운 여름날, 어르신들의 따뜻한 마음이 모여 어린이공원은 사랑과 나눔의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아이 쑥쑥! 아이 품은 마을>이라는 이름의 이 행사는 아이들에게 장래의 꿈과 희망을 물어보고, 그 꿈을 응원하는 문구를 캘리그래피로 써 주는 행사다.

아이돌을 꿈꾸는 아이에게 "꼭 이뤄질 거야, 최고로 멋진 아이돌 (금쪽)이"라고 예쁜 손글씨로 써 주는 식이다. 아이의 꿈에 따라 문구는 다양하지만, 특히, 엄마 아빠가 아이를 응원하는 사랑의 메시지와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주를 응원하는 따뜻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인쇄물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인쇄물에 있는 메시지를 아이들에게 매일 한 마디씩 해 주라."라고 당부하는 봉사자의 그 진심 어린 말이 마음에 깊이 다가온다.

매일 듣는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따뜻한 응원 속에서 아이들은 분명 자신의 꿈을 소중히 간직하고 씩씩하게 자라날 것이라는 확신도 들었다. 그 작은 인쇄물 한 장이 아이들의 미래에 얼마나 큰 힘이 될지 상상하니, 가슴 한편이 따뜻해졌다. 이렇듯 사소해 보이는 행동 하나하나가 모여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팸플릿에 소개된 캘리그래퍼는 ‘붓을 든 특전사’ 조규찬 씨(55세)와 임하자 어르신(81세), 박순자 어르신(72세) 세 분이셨다. 오늘이 용기를 내 나온 봉사 첫날이라고 한다. 이분은 염창시니어대학 캘리그래피 강사와 수강생 어르신들이라고 한다. 그들의 열정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조규찬 강사의 손글씨는 현란하고 막힘이 없었고, 임하자 어르신은 속도는 좀 느렸지만 할머니의 손주 사랑이 듬뿍 담긴 듯한 멋진 글씨다. 얼굴에 흐르는 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글씨에 여념이 없다.

이 행사는 엄마 아빠들에게는 아이의 꿈과 희망을 응원하는 문구로 써 주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는 손주를 위한 덕담과 격려하는 문구로 써 주는, 동네 어르신들의 ‘특별한 아이 사랑 프로젝트’다. “아이는 온 동네가 키운다."라는 옛말이 이 시대에 더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용기를 내어 도전하고 있다고 한다.

도시에 있는 어린이공원을 행사 장소로 선택한 것도, <아이 쑥쑥! 아이 품은 마을>이라는 행사명도 너무나 멋지다. 그 이름만으로도 돌봄, 격려, 응원, 포용, 믿음, 사랑, 보호, 따뜻함, 포근함이 연상되지 않는가.

공원 밖 주변에서는 세 분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단지와 건빵을 나눠주며, 아이와 손주를 위한 응원 문구를 무료로 캘리그래피로 써 준다고 안내하고 있고, 때로는 아이들을 이끌고 공원 안으로 데려오기도 한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슬러시 무료 나눔 코너도 있었지만, 아쉽게도 기계가 고장인 듯, 행사가 처음이라 미안하다며 슬러시 대신에 나눠주는 음료수 한 잔을 얻어 마시고, 잠시 무더위도 달래본다.

공원녹지법에 따라 ‘어린이의 보건 및 정서생활의 향상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설치’한 어린이공원에서 이런 뜻밖의 행사를 베푼 주최 측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염창시니어대학의 열정에 큰 박수를 보낸다. 이분들의 노고가 결실을 맺기를 바랄 뿐이다.

아이의 행복은 결국 엄마 아빠의 사랑이고, 할머니 할아버지의 기쁨이다. 어린이공원이라는 공간에서 아이들을 위한 문화 행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아이들의 꿈은 더욱 커지고 정서 함양은 물론 문화적 감수성과 사회성도 좋아질 것이다. 어른들의 보호 속에서 걱정 없이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이 기대되며, 놀이터를 활용해 어린이들에게 다가가는 아이디어에도 찬사를 보낸다.

이 순간만큼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다. 무덥고 습한 날씨를 잊게 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강서까치뉴스 이병택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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