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산면행정복지센터에서 여러 역사의 흔적을 살펴봐요

청양 정산면 행정복지센터는 특이합니다. 이곳에 다양한 비가 있어서 둘러보기 좋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곳은 정산고군청지로 조선초부터 정산현이었습니다. 현종 1664년에 청양현을 혁파하여 10년간 정산에 병합하고 정양현이라 하다가 다시 정산현이라 하게 되었습니다.

조선말 고종조 1895년 지방관제 개정으로 정산군으로 되었고 일제강점기 1914년에 청양군으로 병합할 때까지 정산고군이었습니다. 오늘에 이르러 정산면으로 격하되었는 역사가 있습니다.

비가 주륵주륵 내리는 이 시기에 청양에는 많은 비피해가 없기를 기도합니다. 이곳에서 다양한 안내를 볼 수 있는데 정산도시자연공원 안내도를 살펴보면 국도와 일반도로, 등산로, 하천이 있고 주변에는 각 저수지 및 이정표가 있습니다. 대기업은 애경산업도 위치로 안내하고 있네요.

정산향교 연혁비를 살펴볼까요? 정산향교는 지난번 살펴봤는데요.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의 교육을 담당했던 국공립 교육기관으로 1398년에 창건되었습니다. 1997년에는 충청남도 기념물 제132호로 지정되었고 대성전, 명륜당, 동재, 서재, 전사청, 정아루, 전통문화 수화관 등의 건물이 구성되어있습니다.

이곳은 정산초등학교 부지에 위치했으나 소실되고 재건하고 개보수하고 확장하여 오늘날 이르고 있습니다. 성리학을 받들고 있기의 중국의 유교 성자를 배향하고 아국 18현을 종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정산면에서의 교육을 담당했던 것을 살펴보면 청양의 정산면은 예로부터 중요한 곳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밖으로 나와 길에 있는 순열비가 있습니다. 기미의사 권흥규선생 순열비입니다.

이 기념비는 기미년 정산만세운동 당시 일본 헌병의 총을 맞고 순국하신 권홍규선생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996년 청양군에서 건립했습니다. 선생은 청양 출신으로 1919년 청양군 목면 안심리에 거주하면서 정산향교 직원으로 있었습니다. 이 해 4월 5일 정산 장날 오후 3시경 1백여 명의 장꾼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독립 만세를 부르면서 시위하였는데 일제 헌병이 이중 30명을 강제 연행하자 7백여 명으로 늘어난 시위 군중은 격노하여 헌병주재소에 몰려가 검거된 사람을 석방하라고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다가 일제 헌병의 발포로 인하여 그 자리에서 순국했습니다.

이에 격분한 군중은 그의 장례식 때 더욱 격렬한 만세시위운동을 벌였고 이날부터 연 사흘간의 의거로 붙잡혀 태형을 받은 사람만도 166명에 이른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을 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습니다.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로 청양군 정산면장이 관리하고 있습니다. 정산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는 역사적 사실을 볼 때 정산은 예로부터 충과 효의 고장입니다.

다양한 비를 사진도 찍어보고 읽어보고 정산면행정복지센터는 정산의 역사 중심이지 않을까요?

안에는 연못도 작게 있어요. 연들이 피어나고 넓은 연잎이 빗물을 머금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워서 사진 찍어봤습니다.

이 연못 옆에는 다리도 있는데 1966년 5월에 콘크리트로 새로 가설하였다고 하네요.

옛모습을 비슷하게 만들었다고 하는데 연못 옆이라 그런지 아담하게 이쁩니다.

여러분들도 정산면에 오신다면 행정복지센터에서 역사이야기도 살펴보시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청양 정산면 잘 여행하고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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