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뜨거웠던 3 ․ 1 독립 만세 운동의 현장 논산, 강경
뜨거웠던 3 ․ 1 독립 만세 운동의 현장 논산, 강경
안녕하세요
논산시 소셜미디어 서포터즈 임영선입니다.
일제강점기 수난의 역사는 지금도 논산에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논산시 강경읍은 조선 후기 우리나라 3대 시장으로 경제적으로 융성하던 곳이었습니다.
총칼을 앞세운 일제는 강경에 일본인들을 살게 만들면서 경제적으로 침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역할을 바로 은행이 담당했습니다. 우리나라 침략의 주범인 식산은행이 당시 강경에 있었습니다.
우리 민족 수난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을 때 서울에서 일어난 3 ․ 1 독립 만세 운동은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독립을 염원하던 논산 주민들은 13차례나 만세 운동을 일으킵니다. 그중 강경에서는 7차례의 독립 만세를 목 터지게 불렀습니다.
강경 3 ․ 1 만세 운동은 3월 10일 강경 장날 일어납니다. 주동인 엄창섭 선생 등 6인이 미리 만들어 둔 태극기를 옥녀봉에 갖다 놓았습니다. 그리고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장터로 행진하면서 만세를 불렀습니다.
또한 3월 20일에는 이근석 선생 등 채운면 심암리 주민들이 주도하여 다시 옥녀봉에서 500여 명이 모여 만세를 불렀는데 옥녀봉 아래 상시장을 지날 때는 1,000여 명으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당시 강경인구로 볼 때 1,000명은 엄청난 숫자입니다.
이때 영국 맨체스터 출신 존 토마스 목사는 교회 부지 매입하려고 강경에 왔다가 만세 운동을 목격합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일본 경찰에게 구타당해 일본과 영국은 국제적인 문제가 발생하여 일본은 사과하고 보상했는데 그 돈으로 현재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성결교회를 지었습니다.
3월 31일에는 강경의 300여 상가가 가게 문을 닫고 무언의 저항 운동을 벌입니다. 1919년 4월 3일 매일신보 기사에 보면 “상점이 많은 강경에서 철시가 새로운 시위 방략으로 나타났다.”라고 보도했습니다.
이후 강경은 일제에 강경하게 대응하게 됩니다.
일제는 주민뿐 만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간악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일제는 서울 남산에 일본 신궁을 세우는 것을 계기로 전국 학생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강경에서 학생을 포함한 62명이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일으킵니다. 이에 일본은 신사참배를 1년간 미루게 됩니다.
또한 현 강경중앙초등학교 윤판석 학생이 주동이 되어 일본 역사 수업을 거부하는 일이 일어나 일본 역사를 배우지 않겠다고 학교를 자퇴하기도 하였습니다.
1905년에 개교한 강경중앙초등학교는 신사참배 거부 운동에도 앞장섰고, 일본 역사 수업 거부 운동을 일으킨 학교로 역사 속에 남아 있습니다.
강경에는 곳곳에 독립만세 운동의 흔적과 정신이 살아 있습니다. 강경에 가면 꼭 들러 볼 때가 세 군데 있습니다.
첫 번째가 구 한일은행 논산지점 건물입니다. 지금 강경 역사관입니다. 둘러보시면 강경의 역사를 잘 살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강경제일감리교회 안에 있는 근대 역사 전시관입니다. 이 곳에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하기 시작한 19세기 조선의 고종 황제 시대부터 사진과 아울러 자세한 설명을 통하여 잊지 말아야할 우리 고난의 역사가 그대로 담겨져 있습니다
세 번째는 구 강경노동조합건물로 이 곳은 현재 강경역사문화안내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강경 역사에 대해 자세한 안내를 해 주는 곳입니다.
강경에는 근대 문화 거리 조성을 하고 있습니다. 그 중 옛 일제강점기 강경의 모습을 재현한 강경구락부는 한 번 둘러보시면 색다른 경험을 하실 수 있습니다.
논산은 우리나라 독립 운동사의 산 증인입니다. 곳곳에 남아 있는 독립 운동의 역사를 이번 3 ․ 1절 날 강경에 오셔서 수난의 역사를 극복한 우리 민족의 저력을 느껴 보시기를 적극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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