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부산 중구를 담다 시리즈#6] 우리동네 이야기 여섯번째, 부평동
여러분이 떠올리는 부평동은 어떤 곳인가요?
이름 그 자체만으로 너무 유명한 부평깡통시장을 가장 먼저 떠올리셨나요? 한때 국내 최대의 공설시장으로 자리잡고 그 명맥을 지금까지 이어오면서 부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최고의 시장이기도 하지요. 특히나 부평깡통시장 어묵은 부산을 대표하는 특산물로 관광객들에게도 인기 만점이랍니다. 시장 뿐만아니라 영화의 거리인 비프거리과 족발골목도 있지요. 북적북적 1년 365일 사람들의 온기가 가득한 부평동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실래요?
갈대밭과 풀밭이 있던 샛디(초량) |
부평동은 부민동과 같은 어원에서 비롯된 것으로 짐작된다. 보수천 하구 일대는 갈대밭과 풀밭이어서 예로부터 샛디라고 불러왔다. 샛디는 초량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어느 사이에 보수천 일대의 샛디는 해정리까지도 샛디라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의 부평동, 부민동에서 초량까지를 모두 초량이라고 불렀던 셈이다. 인가가 매우 드물었던 시절이었지만 지금의 초량을 신초량이라 부르자, 원래의 초량은 상대적인 의미에서 구초량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이러한 호칭은 개항 당시까지도 그대로 존속하였다.
부평동의 부는 부산의 옛 지명인 부산과 같은 뜻에서 사용된것이라 하는데 옛 부민동에서도 비교적 평지를 이룬 곳이어서 분동을 하면서, 부평정이라 불렀다. 해방 후에도 정만동으로 고쳐 부평동이 되었다. 이후 지금의 부평동 1·2·3·4가에 이른다. 특히 부평동은 일제시기 제2호 시장 형태로 전국에서 가장 먼저 생긴 부평동시장이 있어 유명세를 탔다.
당시 최고의 공설시장! 부평정공설시장 그리고 백풍가 |
제2호 시장이란 20인 이상의 사업자가 한 장소에서 상행위를 하는 것으로 공설시장을 의미했다. 1910년에 일한공동시장으로 설립된 부평동시장은 1915년 부산부관리로 이관되면서 부평정공설시장이 되었다. 이 시장의 이용권은 인근 70리까지 세력이 미쳐 당시 조선 내의 공설시장 중 최대의 것이었다.
이 부평동시장의 서쪽 위쪽은 백풍가라 불렀다. 이것은 이곳을 오가는 통상문이 있어 항상 백의를 입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수모여 일본인 상품을 구하여 얻고자 하였는데, 백의인들의 집합소라하여 백풍가라고 불렀다.
1년 365일 북적이는 먹거리, 볼거리 가득한 곳 |
부평동은 동쪽으로 국제시장을 접한중구로를, 서쪽으로 보수천을 덮고 만든 보수대로를 경계로 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대청로가 지나가고, 남쪽으로는 비프광장로가 지나간다. 각 도로 사이에는 흑교로, 부평1길, 부평2길, 부평3길이 있다. 거의 모두 부평동이란 동명과 보수천, 흑교라는 옛 기억에서 따온 도로명이다. 특히 부평동에는 '영화의 도시' 중구를 알리는 비프광장, 그 이름을 딴 비프광장로가 지나가고 있다.
부평동은 부평깡통시장을 중심으로 상업이 발달한 지역으로, 부평깡통시장, 야시장 등 문화관광형 시장이 소재하고 있으며,족발골목, 한복거리, 아구찜골목, 곱창골목 등 지역명소라 불리는 골목들이 자리 잡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지역으로 상주하는 인구수보다 유동인구가 월등히 많다.
이미지 및 내용 출처(저작권)
부산광역시 중구청 / 부산 중구지 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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