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퇴계 "이황" 선생의 흔적을 찾아~
SNS서포터즈
퇴계 "이황" 선생의 흔적을 찾아~
온통 들판은 황금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는 가을입니다.
사천대교를 지나면 사천의 서부지역에 곤양면.곤명면.서포면 3 개면이 있습니다.
서포면을 지나 곤양면으로 가는 길에 퇴계 이선생이 다녀 갔다는 정사를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작도정사 (鵲島) ~ 경남 사천시 서포면 서포로 633
가을 바람이 산들거리고 마른 나뭇잎이 땅위로 사각거리는 메마른 듯,
쓸쓸함이 담겨져 있는 인적이 드문 곳이기도 합니다.
500여년 전 이곳은 바다였습니다.
바다 위 우뚝솟은 섬 하나~ 까치들의 놀이터였기에
섬이름도 한문으로 표기하면 까치 작 <鵲>,섬 도<島> 랍니다.
인근에는 조도 (鳥島)라는 동네도 있습니다.
퇴계 이황선생은 500여년 전 왜 이곳에 와서 흔적을 남기고 갔을까요?
작도정사를 오르기 길가 왼편으로 "퇴계이선생장구지소"라는 표지석이 우뚝 서 있습니다.
약간 뒷 편으로는 이 표지석이 세워지기 전 크기가 작은 비석이 세워져 있으며,
큰 표시석 뒤면에는 이곳이 어떤 곳인지 설명이 잘 되어 있습니다.
장구지소 ~
옛 성인이나 유명하신 분들이 지팡이와 가죽신을 신고 와서
자기의 흔적을 남겨 놓고 가는 곳이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퇴계 이황 선생이 다녀갔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곳입니다.
바로 앞 넒은 들판은 한창 황금빛으로 물들어 황금 들녘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간간히 추수를 마친 논들도 보이고. 그곳에서 먹이를 찾는 백로도 보입니다.
이 넓은 들은 1938년 일제 강점기 때 일본사람이 개간하고 간척하여 매립한 농경지라하며,
이 때 축조 된 방조제 길이가 2km에 이르러
이 방조제를 이곳 사람들은 "5 리 방천"이라 불렀으며, 지금의 농경지로 농사를 짓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조선시대 이곳은 바다였고, 작도정사가 있는 이 곳도 바다 속에 떠 있는 섬이었습니다.
퇴계 선생이 이곳을 다녀 갔다는 기록은 "퇴계가연표"에 기록되어 있으며,
퇴계선생의 나이 32세 그 때 이곳을 지키던 곤양군수였던,
관포 어득강의 나이는 63세 ~두 분의 친분으로 이곳을 방문해서 조석으로 물이 들고 나가는 것을 보며,
시를 읊으면서 놀았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분의 관계가 묘하지만, 스승과 제자였다는 설이 있습니다.
퇴계선생의 처가가 경남 의령이라 그 곳을 들릴 때,
꼭 한번 초대하리라 어득강이 마음을 먹었던게 아닌가 여겨집니다.
건물안에는 1928년 이곳 유림들에 의해
작도정사가 세워질 당시의 지방유지들의 이름들이 빼곡히 적혀져 있는 현판이 벽면에 걸려 있으며,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나 낙후 된 건물을 1954년 다시 재 건립했을 당시 함께 ,
도음을 준 유지들의 이름도 한편 건물벽면에 현판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곤양향교에서 관리를 하며 매년 봄, 춘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작도는 작은 데 손바닥처럼 평온하고
오산은 멀리 마주하여 우뚝하구나
하루 아침동안 에도 깊이 헤아리지 못하니
예부터 이치란 궁구하기 어려운 것 숨 한번 쉴 사이에
땅이 포구가 되고 조소 들락날락하는 곳에 산이 문이 되네
고금의 많고 많은 주장 가운데서
결국 누구의 말이 정곡을 찌른걸까
이렇듯 관포 어득강과 퇴계 선생은 밤 새 술잔을 기울이며
이곳에서 잡은 고기로 회를 쳐서 먹으며 시담을 즐겼다는 설도 있습니다
가을이 점점 더 익어가고 있습니다.
가까운 곳에 사천의 역사적인 곳으로 스토리텔링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길 바라면서 가을바람에 바램을 실어봅니다.
※사천시 SNS서포터즈가 작성한 글이며 사천시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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