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잊혀져가는 옛 지명을 찾아서
잃어버린 옛 지명을 찾는다? 어찌 보면 쓸데없는 일로 취급받을 수 있는 이 일을 생각한 건 작년이었습니다. 기자는 작년 하반기 내내 군포시 경로당 중 시내에서 제일 외진 곳에 자리 잡은 '수리산 경로당'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약 20여 회에 걸쳐 스마트폰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경로당 수업의 특징은, 가르치는 내용만 고집하면 안 된다는 데 있습니다. 주제가 다른 데로 새더라도 어르신 말씀을 경청해야 하고, 추임새까지 넣어주어야 할 때가 종종 있지요. 기자는 이 또한 수업의 일환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취재의 결말부터 말하자면 옛 지명을 찾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탐문 과정에서 직면한 제일 큰 의문은, 옛 지명을 누가 인정해 주느냐 하는 문제였습니다. 고증과 답사와 검증이 수반되지 않으면 섣불리 주장할 수 없을뿐더러 수록할 수도 없지 않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자가 취재를 약속한 날인 6월 13일, 동네인 8단지에서 속달동까지 걸어서 가기로 마음먹은 건 작년에 경로당에서 들은 얘기 때문입니다. 80년을 그 동네에서 살아오신 어르신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숯고개란 지명을 처음 듣고 귀가 쫑긋해졌습니다. 어르신의 말씀으론, 어렸을 때 납덕골 근처에서 임도오거리로 오르는 계곡에 숯가마가 여럿 있었고 지금도 그 가마터가 있다고 하시면서 임도오거리가 있는 언덕바지를 숯고개라 불렀다는 겁니다. 그럴싸한 얘기에 이끌려 그날 수업은 1960년대를 더듬다가 끝났습니다. 숯고개란 예쁜 지명은 그날 이후 임도오거리를 찾을 때마다 떠올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수리동에서 속달동으로 가자면 지나야 하는 임도가 고갯길이고 임도오거리가 바로 고갯마루 아니던가요. 숯고개를 밟고서 '속달리'에 가보자는 생각이 들어 걷기 시작했습니다. 가면서 이리저리 둘러봤으나 가마터는 눈에 띄지 않더군요.
1년 전, 스마트폰을 접고 지리 수업을 한 날 저녁에 군포시청 홈페이지를 뒤져 봤는데 市(시)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옛 지명을 깨알같이 정리해 놓고 있더군요. 속달동의 지명은 행정동인 대야동에 묶여 정리돼 있었는데 거기에 '숯고개'는 없었습니다.
대신 취재하러 간 날 1시간 넘게 많은 얘기를 들었습니다. 세 분을 만났는데 세 분마다 의견이 다른 것도 있었고 의견이 맞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런 혼돈을 마주하면서 도대체 시청 홈페이지의 내용은 누가, 언제 정리했을까 궁금해지면서 새삼 市의 노고에 감사한 마음이 들더군요. 어쨌든 그날 들은 지명이 꽤 많았는데 홈페이지에 누락된 것도 있었고 비슷한 것도 있었으며 똑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속달동 인근 '속달리'는 반월에 속해 있다가 1994년에 군포시로 편입됐다는 얘기를 그날 처음 들었습니다. 속달동엔 예부터 尹(윤)가 성을 가진 사람들이 터를 잡았고 朱(주)가 성을 가진 사람들도 많았다고 했습니다. 숯고개의 어원에 대해서는 세 분 모두 이론(異論)이 없었습니다. 납작골이란 말은 홈페이지에 등재돼 있는데 길거리 표지판엔 납덕골로 통용되고 있었습니다. 임도 표지판 여기저기서 만나는 매쟁이골은 홈페이지에는 없더군요.
"여길 납덕골이라 하는데 원래는 납작골이여. 골짜기 안에 납작한 평지라고 해서..."
"매쟁이골은, 임도 중간 속달정 근처에서 옛날에 매 훈련을 시켰다고 옛 어른들이 말씀하셨지. 아마 그래서..."
"숯고개에서 여기까지 난 골짜기를 외령골이라고 해."
"무성봉에서 도장골로 가는 길에 반듯한 바위가 있는데 그걸 '쉬는 돌'이라고 했거든."
"지금 궁내동을 옛날엔 궁안골이라 불렀어."
"홈페이지에 갈티라고 써 있다구? 우리 어려선 갈태라고 했지. 갈치저수지의 갈치가 모르긴 몰라도 거기서...“
이런 말씀을 듣는 동안 홈페이지에 등재된 지명과 그날 취재한 어르신들의 말씀 중 어느 게 옳다 그르다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증 방식과 조사 방법, 대상 등 여러 변수가 있을 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잊혀지기 전에 어떻게든 정리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단 생각은 조금 더 간절해졌습니다. 그래야 '숯고개' 같은 예쁜 이름이 사라지지 않을 거니까요. 어르신 한 분이 말미에 기자에게 훅 던졌습니다.
"수리산이 왜 왜 수리산인 줄 아시나?"
"수리사 때문 아닙니까?"
"그게말야..."
하면서 들려주신 이야기가 홈페이지의 수리산 지명 유래 세 번째 이야기더군요. ‘아주 오랜 옛날 천지개벽이 있을 때 서해안 바닷물이 이곳까지 들어왔는데, 이 산 정상에 '수리'가 앉을 만큼을 제외하고 전역이 물에 수장되었다고 해서 '수리산'이라 불려지게 되었다’는... 기자는 앞으로 이 설화 같은 풀이를 믿기로 하였습니다.
- #군포
- #군포시
- #군포시청
- #군포시기자단
- #군포시옛지명
- #숯고개
- #수리산
- #속달리
- #납덕골
- #매쟁이골
- #외령골
- #뒤는돌
- #궁안골
- #갈태
- #군포살아요
- #임만식블로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