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호국보훈의 달,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하여 선열들의 고귀한 뜻을 되새겨 보실까요
충성분수대
햇볕도 따뜻해진 6월은호국보훈의 달이죠.
대한민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투쟁하고 헌신하신 선열들,나라가 위험할 때 몸바쳐 지키신 선열들,조국의 번영과 민주주의를 위하여 봉사와 희생으로 노력하신 선열들,우리 후손은 위대하신 선열들의 뜻을 존경과 감사로서 숭고한 뜻을 되새겨야 겠습니다. 호국보훈의 달에 즈음하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의 잘 갖춰진 추모시설과 의미있는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자연공간의 모습을 찾아 볼까요.
현충탑 행사장으로 들어서는 현충문
새해가 밝거나 현충일이면 대한민국 국가원수인 대통령을 위시하여 삼부요인과 국무위원이 방문하여 인사와 추념을하며 선열들의 유지를 받들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자리이기도 하지요.
6월6일 현충일 추념식에는 대통령, 주요 정치인들과 호국 영령 및 독립유공자의 가족, 6.25 전쟁 참전 용사들이 참석하여 현충탑 앞에서 분향 및 헌화 의식을 갖지요.
현충탑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 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을 추모하는 상징탑으로 높이 31미터로 1967년9월30일 준공 하였습니다.
앞부분의 오석평판으로 된 재단과 향로,향합대가 있으며 향로는 중간이 막혀 있어 윗부분은 향을 피울 수 있고 아래 부분은 6.25전사자 및 파월장병의 인식표를 넣었어요.탑의 좌측 석벽에는 순국선열을 상징하는 5인의 애국투사상,우측석벽에는 국토방위와 자유 수호를 위해 용맹을 떨치신 육.해.공.해.경 5인의 호국영웅상이 새겨져 있어요.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이은상의 현충탑 헌시
현충일 추념식은 국립묘지에 모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에게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는 일군으로서 참배하여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국가와 국민에 충성을 다하겠다는 결의를 굳건히 하는 의식이기도 합니다.
외국의 국가 수반이나 외교사절들도 대한민국을 존중하는 의미가 있는 참배를 하지요.
대한독립군무명용사위령탑
2002.5.17 제막식때의 헌시는 악전고투를 하며 목숨을 초개 같이한 독립군의 모습이 상상됩니다.김대중 대통령은 '풍찬노숙을 마다하지 않고 하나뿐인 목숨까지 내놓은 무명용사들이야 말로 역사의 진정한 영웅이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하였습니다.
<2002.5.17 제막식 헌시>
조국의 광복을 위해압록강 두만강 너머의 남.북만주와 시베리아 험지에서
때로는 중국 광야에서 조국 강산을 넘나들며 일제와 싸우다 장렬히 산화한
대한독립군 무명용사의 충혼을 이자리에 모시고 영원한 명복을 비나이다.
<국립서울현충원 연혁>
*1955년 7월 15일 국군묘지로 창설
*1956년 개장 안장시작
전사 또는 순직군인과 군무원 및 종군자의 영현을 안장
최초 안장자는 625전쟁에 전사한 무명용사 1위로 현재는 현충탑 지하에 봉안
*1965년 3월 30일 국립묘지로 승격
국가원수, 애국지사, 순국선열등 국가유공자, 경찰관, 참전한 향토예비군 등이 추가 안장
*1996년 6월 1일 국립묘지관리소라는 관리기관 명칭이 국립현충원으로 변경
*2006년에는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변경
독립유공자 묘역 충열대
충열대는 국립서울현충원에 봉안되고 안장된 애국지사,임시정부요인,연고자없는 선열들의 얼을 추모하는 재단입니다.
1971년 11월17일 '후손없는 선열의 재단건립위원회'가 국가보훈처의 지원으로 건립, 독립유공자,임시정부요인,무후선열재단등에는 대한제국 시절의 의병장, 3.1운동 민족대표, 항일무장 투쟁이나 계몽을 통해서 조국 광복을 위하여 헌신하신 순국 선열과 애국지사가 모셔져 있습니다.
조국과 겨레는 나의 사랑 나의 영광 나의 힘 나의 생명
그를 위해 짧은 일생을 바쳐 그와 함께 영원히 살리라
묘역은 국가원수 묘역, 애국지사 묘역, 국가유공자 묘역, 군인·군무원 묘역, 경찰관 묘역, 일반 묘역, 외국인 묘역으로 구분되어 있어요.길을 따라 거닐다 보면 적당히 우거진 숲과 잘단장된 묘역과 길은 산책로로는 아주 좋인 코스이지요. 현충원길은 명품동작 건설 계획의 일환으로 동작구에서 2011년부터 2012년까지 조성한 동작충효길 7개의 도보길 가운데 제2코스입니다. 현충원길의 총길이는 2.4㎞이며 동작충효길 2코스길 입니다.
호국지장사와 5번묘역
현충원길은 2011년 6월 22일 시작된 동작충효길 1단계 사업인 1~3코스까지의 구간 중 제2코스 구간으로 2011년 11월 26일에 완공되었어요. 현충원길은 국립서울현충원 상도출입문에서 학수약수터 갈림길, 국립서울현충원 사당출입문, 극동아파트 갈림길, 정금마을 갈림길, 이수 갈림길을 거쳐 동작역에 이르는 구간입니다.
국립서울현충원의 내부길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순국한 호국영령들, 국가 원수, 외국인 등이 잠들어있는 국립서울현충원과 호국영령들의 명복을 기원하는 국가 사찰인 호국지장사, 박정희 대통령 묘소, 장군 묘역 등을 지나가며 국립서울현충원의 자연경관을 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현충원길 곳곳에 효도전화 의자, 업어주기 조형물 등이 설치되어 있어 효의 정신을 느낄 수 있습니다.
38묘역
현충원길은 충(忠)을 테마로 충절을 기리는 추모의 길이죠. 다양한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어 산책자들에게 다채로움을 주고, 동작구민들의 쉼터이자 산책로로 살아있는 '충'의 교육장 기능을 합니다.
현충원길이 시작되는 국립서울현충원 상도출입문에서는 국립서울현충원 내부길과 외부담장길이 나누어져 있어 이용자들이 원하는 길을 선택하여 이용할 수 있어요.
현충원 경내 배치도
국립서울현충원은 원래는 국방부 관할이어서 육군 제52경비대에서 현충원을 경비했으나, 경비 업무가 민간으로 넘어가면서 2008년 11월 21일 해체되었습니다. 현충원 안에 국방부 근무지원단 군악대대와 국군교향악단,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본부, 그리고 국방부 의장대대의 일부 중대가 근무하고 있습니다.현충원을 참배하거나 관람할 때는 미리 배치도를 잘 숙지하면 빠짐없이 참배와 관람을 할 수가 있겠어요.
학도의용군무명용사탑비
국립서울현충원 현충문 좌측으로 하나의 위령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바로 학도의용군 무명용사 위령탑이죠.
이 탑은 1954년 10월 30일 지금의 현충탑 자리에 “무명용사비”란 이름으로 건립되었으며, 1956년 1월16일 대표 무명용사 1위를 뒤쪽에 있는 반구형 봉안함에 안장하면서 '무명용사탑'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죠. 이후 1967년 9월 현충탑 뒤편 위패봉안관 지하 무명용사 봉안실이 건립되자 대표 무명용사 1위와 묘역에 안장되어 있던 무명용사 총 5,757위를 지하 무명용사 봉안실로 옮기고 무명용사탑을 현재의 위치로 이설하였습니다. 그러고나서 1번 묘역에 안장되어 있던 학도의용군 48위를 탑 뒤에 있는 반구형 봉안함에 안장하면서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으로 다시 고쳐 부르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약 5만명으로 추산되는 학생들이 구국전선에 뛰어들어 포항 지역을 비롯한 각 지구 전투에서 용감히 싸우다가 7,000여 명이 전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 시신이나 무덤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당시 포항전투에서 중대급(48명) 규모의 학도의용군이 북한군 전초 부대를 맞아 분투하다가 전몰, 포항여자중·고등학교 부근에 가매장되어 있다 1963년 9월 24일 국무회의에서 국군묘지에 안장할 것을 의결함에 따라 1964년 4월 25일 '대한학도의용군 동지회' 주관 아래 국군묘지 1번 묘역에 안장하였고 1968년 4월 현재의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에 이장하게 되었어요.
탑의 전면에는'무명용사영현', 후면에는 '이곳에 겨레의 영광인 한국의 무명용사가 잠드시다 단기 4288년 7월 15일 대한민국'이 각각 새겨져 있어요. 단의 앞쪽 제단 전면에는 '학도의용군의 묘'라고 가로로 새겨져 있지요.
육탄10용사
육탄10용사의 넋을 기리고자 6·25전쟁 당시 사단장인 김석원 장군이 앞장서고 개성 출신 독지가와 일반 유지들이 '육탄 10용사 현충비 건립위원회'를 조직한 후 국방부의 지원을 얻어 건립한 추모비입니다.
이 비는 최초 배롱길 위(솔내길 끝)에 세워졌으나 '육탄10용사 기념사업회'의 이전 건의를 받아들여 약 1개월간의 공사를 거쳐 2013년 9월 5일 육탄10용사가 잠들어 있는 6번 묘역 앞으로 이전하였습니다.
비의 높이는 6m,하단의 기단석 위에 5층의 탑을 쌓은 듯한 형상으로 하여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폭이 좁아지며 제일 하단에는 비문, 그 위에는 ‘THE TEN BRAVE WARRIORS’라는 영문표기, 그 위에는 10용사의 계급과 성명 그리고 제일 상단에는 '육탄 10용사 현충비'라는 비명이 각각 새겨져 있습니다.
비의 전면 중앙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새겨져 있어요.
해방 이후 三八선으로 말미암아 국토가 분단되어 오던중 단기 四二八二년에 이르러서는 개성 서북방
송악고지에 공산 괴뢰군이 불법침입하여 방위가 불리하고 개성이 위태로우매 동년 五월 四일 제一사단
제十一련대 소속 서부덕 소위 이하 九명의 용사 화랑정신을 받아 조국애와 민족정기에 불타는정열로
몸에 포탄을 지니고 적의 지하 참호 속에 뛰어들어 육탄 혈전, 적진을 분쇄하고 옥으로 부서지니
멸공전사상에 이룬 공과 그용맹이 널리 세계에 펴지다. 광음이 흘러도 잊음없이 명복을 빌고
그 영령을 추모하고저, 이에 눈물과 정성으로 현충비가 서나니 이는 조국수호의 정신을 청사에
새기고 만대에 전함이라 十용사의 영혼 불멸하여 겨레와 함께 살며 길이 빛나리로다.
현충원 육탄10용사 비문
부부위패 봉안관
위패봉안관에 모셔진 분들은 대부분이 6.25전쟁 당시 전사자로 유골이나 시신을 찾을 수 없는 분들이며 총103,000여위중 위패 봉안관 내부에101,658위가있고 현충탑 동쪽에 설치된 부부위패판에 1,545위가 봉안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8년2월 개정된 국립묘지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5조3항의 개정으로 위패로 봉인된 사람의 배우자도
함께 위패봉안 또는 유골의 형태로 안장이 가능하며 598위가 충혼당에 안치 되어 있습니다.(2021년4월말기준)
유격부대전적위령비
1950년 가을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며 서울을 수복한 유엔군은약 1개월 만에 북한지역을 점령하게 되었지만 외딴 농촌과 산간지방에 패잔병들은 여러 곳에서 양민들을 약탈과 학살을 행하자, 이에 양민들은 자연스레 '자치치안대'를 조직하게 되었습니다.대부분이 군에 입대 못하는 어린 학생들이었습니다, 유격군의 시초였죠.이후 중공군의 개입으로 국군과 유엔군이 후퇴하게 되고 유격대는 남으로 쳐들어오는 중공군과 교전을 하며 후퇴하게 됩니다.
38선 인근 도서 지역,혹은 내륙지방으로 숨어들어가 게릴라전을 하면서 유엔군의 재북진을 기다렸지요.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군 내에서는 적 주력부대에 대한 견제전략으로 적 후방에 투입해 타격하는 소규모 유격전술의 필요성이 꾸준히 대두되어 자치치안대를 비공식적으로 지원하던 미군이 1951년 극동군사령부 예하에 유격부를 두고 34개 유격부대를 편성하여 자치치안대들은 자연스레 미군에 편입 되게됩니다.
이때 탄생한 유격군 부대가 백령도의 동키 1~15, 20~21부대,교동도의 울팩 1~8부대, 부산·동해의 9개 부대 등 34개 부대입니다.유격부대는 부대당 270명에서 1500명 정도로 조직돼 황해도, 평안남·북도, 함경남·북도 내 침투작전 및 남진 중공군 교란작전을 펼칩니다. 총 32,000여 명의 유격군은 4,400여 회의 크고 작은 전투를 수행하고 적 69,000여 명을 살상 950여 명을 생포, 적 무기·탄약·차량·선박을 노획하거나 파괴한 전과를 올렸습니다. 또 휴전 직전까지 서해 북방 도서 30여 개를 장악해 첩보 작전기지로 활용하면서 제공권·제해권을 확보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외 첩보입수·도서점령·유엔군 구출 임무 등을 수행했습니다.그러나 유격군의 전공·전과는 전쟁 이후까지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유격군 대부분은 이름도, 계급도 없이 참전한 ‘의병’이자 ‘의용군’이었기 때문이죠.
그러던중 1970년대 초반부터 미국의 비밀 해제된 문서를 통해 유격군의 활약상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해서, 1980년대 들어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연구팀이 비밀해제 문서에서 밝혀진 유격군의 존재를 알려지게 되었으며 이들은 의병 형태로 참전하였기에 전사자 찾기도 쉽지 않은 현실입니다.
우리가 잘아는 "소녀와 가로등"의 가수 진미령씨의 부친께서도 광복군출신이며 유격대와 연결하여 적후방을 교란하는 첩보작전을 하여 많은 공을 세워서 대한민국 6.25전쟁 4대영웅으로 미국정부에서 선정하였죠.
선열들의 묘소
지금까지 국립서울현충원을 살펴보았습니다. 보훈의 달 호국선열들께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를 합시다.
※ 본 콘텐츠는 동작 SNS 홍보단이 작성한 글로,
구 공식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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