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옥천여행! 지탄역 & 김문기유허비
옥천여행! 지탄역과 또 다른 사육신의 흔적 김문기유허비
안녕하세요, 행복드림 옥천입니다.
햇살은 따뜻한데 유난히 매섭게 부는 바람에 한껏 움츠러드는 하루였습니다.
오늘같이 일교차가 심한 날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한 주도 고생많으셨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오늘은 옥천여행을 떠나봅니다!
전국 묘목 거래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옥천 이원면에서는 매년 봄이 되면
전국에 나무를 심으려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입니다.
나무의 뿌리는 그 땅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고, 나무의 성장에도 중요합니다.
이원면에는 영동과의 경계선에 지탄리와 백지리가 있습니다.
월이산 아래 금강이 흐르고 반대편으로는 평평한 논과 밭이 펼쳐지는 곳에 외딴섬과 같은 지역이 지탄리와 백지리입니다.
두 마을 주민들이 힘을 모아서 역을 만들었는데, 바로 지탄역이라고 합니다.
이들의 노력으로 지탄역은 1960년 5월 16일 문을 열었으며
개역 5년 후인 1965년 12월 1일, 지탄역은 배치간이역(직원을 배치하고 여객 또는 화물을 취급하는 역)으로 승격되었으나,
이용객이 적어 1972년 7월 20일 다시 무배치간이역으로 운영중입니다.
지탄역은 '명예역장제'를 운영하고 있는데,
'명예역장제'는 무배치간이역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효율적인 역사 관리를 위해 코레일이 2009년부터 시행한 제도로,
선발된 명예역장에게는 역장 제복과 신분증, 명함 등이 제공되고 이들은 무보수로 역장의 기본 임무를 수행하였다고 합니다.
지탄역에서 기찻길의 아래쪽으로 들어오면 옥천 김문기 유허비가 나옵니다.
김문기라는 사람에 대해 생소하실 수도 있는데요,
백촌(白村) 김문기는 1399년 현 옥천군 이원면 백지리에서 태어나
1453년 계유정난 때 사절(死節)한 이조판서 민신과 병조판서 조극관과 같은 판서급의 중신이라는 이유로
'삼중신'이란 칭호를 받았던 사람입니다.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사육신은 성삼문·박팽년·이개(李塏)·유성원(柳誠源)·유응부(兪應孚)·하위지(河緯地) 등 6인이며
김문기는 1691년(숙종 17) 국가에서는 육신을 공인해 복관 시켰고,
뒤따라 1731년(영조 7)에는 김문기를 복관하고 1757년에 충의(忠毅)란 시호를 내렸습니다.
김문기는 삼중신(三重臣: 민신(閔伸)·조극관(趙克寬)·김문기)의 한 사람으로 선정되고 ,
정조가 내각과 홍문관에 명령해 세조실록(世祖實錄)을 비롯한 국내의 공사 문적을 널리 고증해
신중히 결정한 국가적인 의전(儀典)인 어정배식록에 의해 그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김문기 유허비는 김문기가 태어난 옥천군 이원면 백지리에 위치해 있는데,
2017년 후손들이 뜻을 모아 이곳에 충의사를 건립하고 영정과 위패를 모시고 단종 복위에 힘쓰다가
목숨을 잃은 충신 김문기를 기리는 추모제향을 하고 있습니다.
충의사가 있는 곳에서 위쪽으로 올라가 보면 김문기의 유허비가 나옵니다.
넓은 공터에 돌길을 내고 좌우에 얕은 향나무를 심어 비각으로 향하게 한 곳의 비석은 1804년(순조 4)에 세운 것인데,
1846년(헌종 12)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습니다.
사람은 홀로 태어나지 않듯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역사가 모여 지금의 사회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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