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지붕 없는 박물관 강화도 나들이[강화문학관&용흥궁]
흔히 강화도를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부릅니다. 수도권에 살고 계시는 분들이라면 어린 시절 수학여행이나 소풍으로 강화를 찾으신 적이 많으실 텐데요. 이른바 학창 시절에 단체로 들렸던 강화도는 예나 지금이나 '역사'와 '안보'등을 테마로 한 여행이 아직도 많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요즘은 시대가 변하여 수많은 역사유적과 문화재를 비롯하여 지금은 도시재생사업으로 탄생한 핫플(명소)과 카페, 펜션 등도 강화를 대표할 만한 자랑거리가 되었죠.
어린 시절 학교에서 방문했던 '강화'가 수학여행과 소풍의 느낌이었다면, 지금의 강화는 사뭇 다른 느낌일 것입니다. 최근에 강화를 들리지 못하셨던 '강린이'라면, 오늘 제가 추천해 드리는 여행이 제격인데요. 수도권과 강화를 잇는 강화대교를 건너 강화읍 중심지까지 오시면 강화도 최고의 명소인 '강화고려궁지'일대에 도착하게 됩니다. 성공회 강화성당 및 용흥궁공원, 그리고 사진에 보이는 강화문학관에도 주차공간이 넉넉히 조성되어 인생 첫, 혹은 2회차 강화여행에 제격인 곳입니다.
저도 이번에 강화문학관에 들리면서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강화하면 '고인돌'같은 이미지가 제일 먼저 떠올랐으니까요. 그럼에도 강화는 오랜 역사의 시간 속에서 찬란한 문화와 예술을 꽃피웠습니다. 우리나라의 긴긴 역사 속에서 강화의 자연이 품고 역사가 길러낸 수많은 문인들이 있었는데요. 우리에게 익숙한 '이규보'와 같은 위인 이야기도 그래서 신기하게 느껴지기만 합니다.
강화문학관의 관람시간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설날 및 추석 당일에 휴관하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넉넉하고 충분한 운영시간을 선보이고 있어 여행 일정에 맞게 부담 없이 들려주시기 좋은 곳입니다. 강화문학관의 구조는 1층과 2층으로 나누어지며 1층은 '강화의 문학'이라는 콘셉트, 그리고 2층은 '조경희'선생님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층은 순서대로 강화가 가장 격동의 시대를 보냈던 고려시대의 문학을 시작으로 민족의 대문호 이규보, 고려시대 문학가, 조선시대 문학, 현대문학에 이르기까지 강화 문학의 역사를 시대순으로 살펴볼 수 있는데요. 각 시대의 문학을 살펴본다는 것은 각 시대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는 얘기도 됩니다. 1층은 그래서 나름의 '역사박물관'의 느낌이 들어 좋았던 것 같습니다.
한국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던 이규보, 정철, 정제두, 정인보 등 교과서에서 익히 들었던 문학계의 거두들이 강화도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사진에는 담아오지 못했지만 체험코너, 강화문인 정보검색 등 단순히 전시에만 치중하지 않은 전시실 구성도 돋보였습니다.
2층으로 올라오면 강화문학관의 보너스 같은 공간인 조경희 수필문학관이 나타납니다. 조경희 선생님의 육필원고와 생전에 사용하던 책상, 안경 등과 미술품 40여점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1918년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에서 태어나 한국수필가협회장, 한국문화예술총연합회장 등 문학계의 큰 어른 역할을 하셨던 분입니다. 생전에 한국 수필문단의 어머니로 불렸던 그분의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1918년에 강화에서 태어나 1938년에 '측간단상'으로 등단, 그리고 1957년 한국문학상을 시작으로 1987년에는 대한민국문화예술상수상, 1992년에는 프랑스 문화훈장 수여 등, 정말 굵직굵직한 흔적을 남기신 선생님의 업적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입니다. 강화문학관 2층의 전시실을 가득 채우실 수 있는 그런 훌륭한 분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강화문학관을 나서서 고려궁지로 향하는 오르막길에는 유서 깊은 학교인 '강화초등학교'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오르막길 하나하나에 재밌는 벽화거리가 조성되어 있어 눈길을 끄는데요. 1909년 공립강화보통학교(현 강화초등학교)의 졸업증서를 시작으로, 12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강화초등학교의 흔적도 고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요즘 MZ세대들은 잘 모르는 흑백사진과 당시 재미난 이야기까지 시대순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용흥궁공원은 이름 그대로 '용흥궁'을 품고 있는 공원으로 주변에는 강화문학관과 고려궁지, 성공회강화성당 등 많은 명소들이 한데 모여있는 곳입니다. 이정표가 아주 자세하게 되어 있는데요. 말씀드린 명소 외에도 강화산성의 성벽 흔적들도 살펴볼 수 있는 곳이기에, 그 여행과 답사의 가치가 남다른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용흥궁'으로 찾아가는 길에는, 이색적인 풍경이 눈길을 먼저 사로잡는데요. 용흥궁이라고 하면 다들 아시다시피 강화도령 '철종'이 기거했던 곳으로 아실 겁니다. 조선후기 풍경이 가득한 돌담과 한옥 기와집이 나올 법도 한데, 그 입구에는 당장이라도 연기를 뿜을 것 같은 '굴뚝'이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네요. 이는 '심도직물 터'라고 하여 1947년부터 2005년까지 약 1200여명의 근로자가 종사했던 국내 굴지의 주식회사인 심도직물 터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화운동 시발점이 된 곳으로, 강화군은 여러 가지 가치를 평가하여 심도직물 터의 흔적인 굴뚝을 보존해 놓았습니다.
용흥궁으로 향하는 길은 작은 '한옥마을'을 여행하는 느낌이 듭니다. 용흥궁이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0호로 등록되어 있는 만큼, 진입로와 주변 환경만 개선하여 정비해 놓은 모습으로 용흥궁 자체는 원형이 잘 보존된 상태로 관람객들을 맞아주고 있습니다.
조선 '철종'인 '이변'이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거처했던 곳으로 현재의 용흥궁은 강화유수 정기세가 철종 4년인 1853년에 이 자리에 지금과 같은 건물을 지은 것인데요. 궁의 건물은 창덕궁의 연경당, 낙선재와 같은 살림집의 형식으로 지어 소박한 분위기를 연출해 주고 있습니다. '궁'이라는 이름 때문에 사실 '궁궐'을 생각하신 분들도 많을 텐데요. 마치 조선시대의 어떤 인물이 죽어서 '왕'으로 추존되었다는 느낌처럼, 용흥궁도 단순한 가옥에서 철종(왕)을 배출한 곳으로 인식되어 용흥궁이라는 이름을 받게 된 게 아닐까 합니다.
철종의 일대기는 아시다시피 복잡하면서도 신기한 느낌이 듭니다. 어수선한 정국(세도정치와 삼정의 문란 등)에 이른바 강화도령에서 왕으로 신분이 바뀌어버린 드라마 같은 사실이었으니까요. 철종은 후에 대한제국 시대에 '황제'로 추존되기도 합니다. 전계대원군 이광의 3남으로 온갖 고초를 겪고 교동에서 강화도까지 넘어와 19세까지 농사를 짓고 나무를 베는 아주아주 평범한 인생을 살았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헌종이 후사 없이 23살이라는 나이에 급하사면서 강화도령의 앞은 뜻밖의 일들로 가득 차게 됩니다. 당시 영조의 후손으로는 정통성을 가진 왕족은 이광의 아들밖에는 없었고, 자연스럽게 이원범(철종)이다음 국왕으로 지명되게 됩니다.
재밌는 일화가 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왕족으로 태어나 당시에 왕족들은 왕위 계승 및 쟁탈전에서 살아남거나 혹은 죽어야 하는 가혹한 운명들이 많았는데요. 철종 이원범도 어린 시절 역모 등에 휘말리며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케이스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을 왕으로 옹립하기 위한 조정의 행렬이 왔을 때, 자신을 죽이려는 것인 줄 알고 산속으로 도망쳐버렸다는 일화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철종 임금으로 즉위하게 되었지만, 철종도 사실은 세도정치와 어수선한 정세 등에 휘말려 제 꿈을 이루지 못한 왕으로 재위 14년 간 큰 업적을 이루지 못하고 병사하게 되었습니다. 후에 흥선대원군과 고종의 등장으로 우리가 잘 아는 격변의 근현대사 이야기가 펼쳐지게 됩니다. 철인왕후 등의 관계 인물은 드라마와 같은 매스컴에도 등장하며 전계대원군은 우리가 잘 아는 사도세자, 영조와도 가계도에 연관이 있어 철종이 큰 업적은 이루지 못했지만, 우리나라 역사에 나름 비중이 있는 인물로 기억되곤 합니다.
용흥궁은 용흥궁공원과 성공회강화성당, 강화문학관과 고려궁지 등 함께 여행하기 좋은 코스들이 많습니다. 강화도령 철종을 배출한 용흥궁에서 당시의 역사를 되짚어보시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
문화와 예술이 있는, '강화문학관'
철종이 살았던, 용흥궁
이번 주말에는 여기 어떠세요?
# 어서오시겨 강화
- #강화
- #강화군
- #강화군청
- #강화문화
- #강화여행
- #인천여행
- #강화가볼만한곳
- #인천가볼만한곳
- #용흥궁
- #강화문학관
- #강화포토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