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고령 뉴스] 가야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를 통해 방문해 본 '국립중앙박물관' '가야 전시실' 탐방기
금년 9월, 고령 ‘지산동 고분군’을 포함하여 가야의 7개 고분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세계유산위원회는 “주변국과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독특한 체계를 유지하며
동아시아 고대 문명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인정된다"라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가야 유물을 보기 위해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아가 봤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가야’ 전시실은 구석기 시대에서 통일신라에 이르는 ‘선사•고대관’ 12개 전시실 중 한곳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안내글을 읽어보니 가야는 낙동강 유역에 있었던 변한의 여러 작은 나라에서 출발했고 철기 생산 능력이 탁월했으며 주변 지역과 교역을 했는데, 초기에는 김해의 금관가야가 중심이었으나 5세기 이후부터는 고령 지역의 대가야를 중심으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김해 지역에서 발견된 철광석인데, 철이 풍부했던 가야는 ‘철의 왕국’으로 불립니다.
가야는 철제 농기구를 만들어 농업 생산력을 증진시켰고, 철제 무기로 군사력을 높였습니다.
전시된 쇠망치와 쇠집게를 보니 요즈음 사용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정교합니다.
덩이쇠는 쇠납작도끼에서 변형된 것으로 철기의 중간 소재, 화폐, 무덤에 묻는 용도 등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오른쪽 위는 굽은 칼, 그 아래 두 점은 쇠낫이며 아래 두 점은 쇠칼, 왼쪽에 전시된 것은 쇠도끼입니다.
가야의 연표인데, CE 42년 금관가야 건국을 가야 성립의 해로 표기하고 있으며,
후기 가야 연맹체의 중심인 대가야가 562년에 멸망하면서 가야의 역사는 끝이 납니다.
(서력기원을 기준으로 BC/AD 로 표기하던 것을 요즈음에는 BCE/CE로 표기하는 경우가 있네요)
가야는 지리적으로 백제와 신라 사이에 위치하여 많은 전쟁을 치르며 성장했는데,
북방 유목 민족과 고구려로부터 철기문화를 받아들여 군사장비를 생산했고 기마병을 앞세워 세력을 키워나갔다고 합니다.
전시된 유물 중에 말에 사용된 도구가 많이 보입니다.
쇠로 된 도구를 여러 곳에 착용한 말은 무거워서 움직이는데 힘이 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예쁜 청동 방울과 말띠꾸미개도 많이 보이는데, 말띠꾸미개는 말에 둘러진 끈들이 교차되는 부분을 장식하기 위한 마구라고 합니다.
병사들이 착용했던 갑옷과 투구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했던 투구입니다.
철판을 연결하여 만든 갑옷인데, 투구와 갑옷을 착용하면 몹시 무거웠을 것 같네요.
정교하게 제작된 화살촉과 화살통도 볼 수 있습니다.
가야는 3세기 후반부터 새로운 토기 제작 기술을 활용하여 단단한 토기를 생산했다고 하는데,
1000~1200℃의 높은 온도로 밀폐된 가마에서 구워 매우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대부분 짙은 회청색을 띠며, 유약을 바르지 않아도 윤기가 도는 토기가 생산되었습니다.
가야의 토기는 지역마다 형태가 조금씩 다른데, 대가야는 굽다리 접시가 가로로 넓고 납작하여 안정감을 주며,
원통형 그릇받침에는 뱀이나 고사리 같은 긴 띠가 세로로 붙는 것이 특징입니다.
지역별로 조금씩 모양이 다른 가야 토기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요즈음 사용되는 컵처럼 손잡이가 달린 굽다리 항아리도 있습니다.
두 귀 달린 항아리도 보입니다.
다양한 모양의 그릇 받침대도 전시되어 있는데, 둥근바닥 토기가 많이 만들어졌기에 토기를 고정하기 위한 용도로 제작되었으나 점차 제사에 사용하면서 크고 화려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뚜껑 있는 굽다리 접시로 금관가야 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대성동 1호 무덤에서 출토되었는데 세련된 토기 문화를 보여줍니다.
북방 유목 민족들이 말에 싣고 다니면서 사용한 취사도구인 청동솥인데,
주로 금관가야 지역에서 출토되며, 가야는 당시 중국과 한반도, 왜를 연결하는 국제 교류의 중심지였기에 이런 유물들이 출토되나 봅니다.
서역에서 제작된 후 유입된 로만글라스도 금관가야 김해 대성동 91호 무덤에서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중국과의 교류를 알려주는 청동 그릇들인데, 역시 금관가야 무덤에서 출토되었습니다.
사슴 장식 구멍 단지로 고대 북방 아시아 여러 민족이 신성시한 사슴을 장식했는데, 당시 사슴은 토속 신앙의 대상이었나 봅니다.
뛰어난 가야의 토기들을 감상해 본 시간이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가야’ 전시실 중 마지막 장소에 전시되어 있는 금동관과 금귀고리 혁대 등 장식류입니다.
가야 전시실의 하이라이트는 고령 지산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금동관인데,
1978년 고령 지산동 32호분에서 출토된 유물로서, 발굴 경위와 출토지가 확실한 대가야의 금동관으로 2019년 3월 6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2018 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보물로 지정된 근거는 가야시대 금동관은 출토 예가 매우 적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금동관은 유물로서 희소가치가 탁월하며, 특히 현대적 감각을 보여주는 단순․세련된 문양으로 인해 신라 및 백제의 관모에 비해 고유성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유리 목걸이도 전시되어 있는데 5번이 고령 지산동에서 출토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지 않는 코발트를 넣어 만든 유리 목걸이는 인도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당시 해상교역이 이루어지면서 희귀한 보물들이 거래되었다고 하네요.
오늘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가야의 유물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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