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의 고향 밀양의 산은 하늘처럼 높고, 바다처럼 끝이 없다.

물멍을 때린다는 말이 있듯이, 나는 어렸을 때 소위 ‘산멍’을 때리는 것을 참으로 좋아 했다.

어린시절 소태리에 사는 할머님댁으로 가기 위해 굽이굽이 고갯길을 넘는 중, 눈 앞에 펼쳐진 시커먼 산줄기를 보다 보면, 그 신비로움에 넋이 나가기 일쑤였다.

바람에 일렁이는 거대한 나무 무리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생명처럼 나와 교감했다. 자연의 경외로움이 눈 앞에 있었고, 때로는 마음 속 기도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나는 그 느낌을 40대 중반이 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밀양의 산을 좋아했지만 그렇다고 등산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시야에 가득히 산줄기를 담는 것을 좋아할 뿐이다.

이제 밀양을 떠난 지 언 20년이 흘렀다. 부모님도 친구들도 대부분 도회지로 나와 연고도 거의 남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 여름휴가를 맞아 가족을 이끌고 그 시절 나의 온 마음을 지배했던 위대한 자연을 느끼러 밀양에 왔다.

첫째 날, 숙소로 선택한 도래재휴양림으로 가기 위해 구불구불한 언덕을 오르니, 역시나 숨막힐 듯한 산안개가 병풍처럼 펼쳐진다.

도심 생활에 지친 휴가지에서의 첫인상으로 이만한 게 또 있을까?

그저 감탄만 나온다.

“어데서 왔십니꺼?”

휴양림 직원이 정겨운 말투로 아내에게 묻길래,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 그 먼 곳에서 왔냐면서 신기해한다.

나는 내심 놀랄 것도 신기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서울 등 수도권에 비교적 덜 알려진 숨은 보석같은 곳이라 생각했다.

숙소에서 이른 저녁으로 바비큐 파티를 하니, 어느새 날이 저물어 간다.

평소 별과 우주에 관심이 많은 아이둘을 위해 배부른 몸을 이끌고 소화도 시킬겸 우주천문대로 향한다.

천문대에 도착하니 어느덧 까만 밤이 되었다. 어렸을 적 소태리 할머니 동네 평상에 누워서 밤하늘을 바라보던 기억이 난다.

별이 너무 많아 쏟아질 것 같던 풍경.

학창시절 나는 부끄럽게도 그 별들에 취해 좋아하던 여학생에게 전화를 걸어 마음을 고백한 적이 있다.

짝사랑으로 결말이 났지만, 지금도 별을 볼 때면 가끔 그 때 생각이 떠오른다.

지금 그녀는 잘있을까? 혹시 아직도 밀양에 있을까?

나의 이런 망상을 비웃듯 첫째 딸아이가 기념사진을 찍어달라고 포즈를 취한다. 내가 지금 가장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정성들여 사진을 담았다.

천문대 견학을 위해 직원이 안내하는 데로 천체투영관에서 별자리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아이들이 무척 신기해하고 즐거워했다.

국민학교 시절엔 이런 교육시설 견학을 하려면 모처럼 준비해서 마산이나 부산 등 주변 도시로 가야했던 기억이 나는데, 밀양에도 이런 게 생기니 괜시리 뿌듯하다.

이런 시설 하나 유치하는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텐데, 밀양시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의 부단한 노력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여행 다음날, 우리는 얼음골과 호박소를 찾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일단 배를 채우자는 마음으로 아내가 식당을 검색하여 한 야외 식당을 선택했다.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

멀리 케이블카가 보이는 산중턱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도토리묵, 해물파전, 국수를 먹었다.

도토리묵이 웬 말인가? 어릴 적 표충사 계곡 초입에서 부모님이 사주셨던 도토리묵 미나리무침의 맛은 아직도 입맛을 돋우게 한다.

지금은 미나리철이 아니라 잘게 자른 풋사과를 무쳐서 나왔지만 이것도 나름 상큼한 맛을 더하게 해서 입맛을 돋우었다.

아내도 절경을 바라보며 맛깔나는 여름 음식들을 먹으니 기분이 좋았나보다. 연신 감탄사를 날린다. 사실 운전하는 길에 왜이리 외진 식당에 가냐고 투덜거린 날 민망하게 하려는 속셈도 있어 보인다.

나는 매우 만족스런 점심을 보내고 호박소로 향했다.

밀양출신임에도 호박소는 한번도 간 적이 없다. 마치 용이 솟아오를 것 같은 신비한 계곡이라는 데, 사진에서 보는 것 보다 일단 규모가 크다. 출입제한 때문에 근처에 가진 못하나, 아마 가까이에서 보면 깊이가 아찔할 것 같다.

주변 계곡을 보니 물에 들어가고 싶은 욕구가 올랐으나, 아이들이 몸을 담기엔 다소 위험해보여, 당초 계획한 표충사 계곡으로 이동했다.

표충사 계곡은 이번 일정에서 화룡정점이었다.

초등 아이들에게 딱 맞는 수심인데다가 조그만 물고기떼까지 보여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둘째 남아는 연신 물고기를 잡아보려 애쓴다. 그동안 도심 아파트 생활에 제대로 된 계곡 구경 한번 못 해본 녀석들이라 표충사 계곡에서의 하루 내내는 가히 흥분 속에 보냈다.

나도 이 맘 때 이 계곡 자리에서 얼마나 즐거웠던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 감기 걸리기 일쑤였다.

아이들이 표충사 계곡을 너무 좋아해 남은 2박 3일의 일정은 오로지 이 곳에서 보내게 되었다.

그 나이 되도록 이만한 계곡 한번 못 가봤냐고 물어 볼 수도 있겠으나, 나는 물놀이로는 단연 표충사계곡을 전국 최고라 말하고 싶다. 여기는 물놀이하기에 아주 깊거나 위험하지도 않고, 곳곳에 작은 폭포와 다채로운 바위들이 어우러져 절대 시시하지도 않다.

다시 오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기꺼이 다시 오겠다고 말하고 싶다.

산과 계곡에서의 짧고도 강렬했던 밀양에서의 추억은 여운을 남긴 채 이렇게 끝났다.

덧붙여, 내가 유년시절 오랫동안 거주했던 내이동을 다시 가봤는데 동네 중간에 흐르던 개천이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는 걸 보고 격세지감을 느꼈다. 동네 영남루 주변도 너무나 쾌적하게 정리되어서 보기 좋았다.

나의 사랑하는 고향, 밀양은 이번에도 나를 행복하게 했다. 언젠가 은퇴 뒤에 다시 살아보고 싶다는 욕구도 자극한다.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해당 게시글은 '밀양, 어때?!' 이벤트 참여자 중

우수작으로 선정된 '유시진'님의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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