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근대문화유산 공주 3.1 만세운동 역사 순례지 공주제일교회 기독교박물관
공주 가볼 만한 곳
공주기독교박물관
백제의 숨결이 살아있는 공주시는 시대를 대표하는 근대문화유산이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1937년에 완공된 중동성당이 고딕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천주교 성지라면, 1931년에 지어진 공주제일교회 예배당은 기독교를 대표하는 근대 건축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11년 6월 20일 등록문화재 제472호로 지정되었는데 2012년 새 성전을 지어 예배처를 옮기기 전까지 80년간 예배당으로 사용한 곳입니다. 현재는 2018년 박물관으로 개관한 이래 한국 기독교 선교 역사의 중요한 장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벽면엔 1902년 김동현 전도인이 공주 관찰부 앞에 첫 교회를 세웠을 당시 최초 예배당의 모습을 찍은 사진, 사애리시 선생님과 나란히 서 있는 유관순 열사의 커다란 벽화가 있습니다.
협산자 예배당(1909~1931)을 거쳐 현재의 장소에 자리 잡게 되었는데 선교사들은 이 예배당을 중심으로 충청지역 최초의 사립인 영명여학교와 영명남학교를 세워 영아원과 유치원을 이끌며 전국 최초의 우유급식소를 설치·운영하였다고 합니다. 민족대표 중 한 분인 신홍식 목사가 담임목사(1916~1917)로 설교를 하였고, 유관순 열사가 학창 시절 예배를 드리던 교회로 이후 3.1 만세운동의 중심지가 된 역사적으로 뜻깊은 의미를 가진 곳입니다.
한국전쟁 당시 폭격을 맞아 크게 파손되었지만, 남아있던 반지하층과 벽 등을 수리하는 등 전 교인의 노력 덕분에 1956년 복원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제단과 출입구의 위치가 서로 바뀌게 되는데 폭격 전 측면에 세워졌던 종탑이 복원 때는 정면의 가운데로 옮겨지게 됩니다. 1979년 다시 증축하면서 종탑 아래에 현관을 두었고, 현관의 좌우 창과 본당 강단 뒷벽에 스테인드글라스를 장식하였습니다. 이 스테인드글라스는 스테인드글라스 개척자인 이남규의 초기 작품이며, 개신교 예배당에 설치된 최초의 작품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형상화하여 제작하였습니다. 공주제일교회가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는 이유는 개축과 증축을 거치면서도 초기 교회 건축이 지닌 특징 중 하나인 고딕 양식의 형태를 잘 보존하였기 때문입니다.
공주제일교회 박물관은 미국 북감리교회에서 파송된 샤프와 사애리시 선교사 부부가 1904년에 사역을 시작한 곳으로,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를 쓴 청록파 시인인 박목월과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지은 이상화 시인이 혼례를 올린 장소로 역사적 의미가 깊은 곳입니다.
입구 정면엔 1916년 8월 공주제일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충청도 초기 교회 형성에 큰 공헌을 한 신홍식 목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는 1919년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기독교 대표였으며, 목사로서는 처음으로 참여 의사를 밝힌 인물이기도 합니다. 법정에서 동양평화론의 허구성을 질타하였고 출옥 이후로도 종교운동과 독립운동을 이어간 그는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추서되기도 하였습니다.
공주제일교회 박물관은 빨간 벽돌과 아치형 창문이 매우 아름다운 건축물이라 여기서 혼례식을 치렀다는 사실이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1930년, 1955년, 1979년 성전 개축을 했다는 초석은 공주제일교회의 오랜 역사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공주제일교회 박물관의 보존 상태가 좋아 초기 교회의 아름다운 고딕 양식이 도드라져 보입니다.
샤프 목사는 1904년 감리교 공주 선교부의 책임자로 지정되어 서울과 공주를 오가며 충청도 지역에서 목회활동을 시작하다 1905년 사애리시 선교사와 결혼한 이후 공주로 이주하여 본격적으로 공주제일교회에서 활동하게 됩니다. 공주시 근대교육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명설학교를 창설하는 등 큰 발자취를 남겼지만 1906년 장티푸스에 걸리는 바람에 3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현재 공주시엔 샤프 목사의 신혼집이었던 '선교사의 집'과 명설여학교가 전신이 된 영명중고등학교, 샤프 선교사의 묘비가 남아있어 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공주제일교회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종탑과 함께 김찬흥 목사의 흉상이 보입니다. 1929년 봄, 제14대 담임목사로 부임하였는데 교회의 오랜 숙원이었던 교회 건축을 시작해 1년 2개월 만인 1931년 지금의 예배당을 봉헌합니다. 그의 독립운동의 공이 인정되어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됩니다.
공주제일교회와 깊은 인연을 가진 인물인 유관순과 박목월에 얽힌 에피소드를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과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형상화한 스테인드글라스는 보면 볼수록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이남규 작가가 쓴 스테인드글라스의 원재료인 엔틱 글라스와 함께 작품에 대한 설명을 확인할 수 있었고, 스테인드글라스를 배경으로 단체사진 촬영하는 방법까지 있는 걸 봐서 관람객들이 기념사진을 많이 찍나 봅니다.
바로 이 오르간이 1904년 샤프 선교사가 공주에 내려오면서 가져온 것이라고 합니다. 샤프와 사애리스 선교사 부부가 예배 때마다 사용하였는데 120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초가 예배당, 협산자 예배당과 1931년 개축했을 당시 공주제일교회 모습을 미니어처 모형으로 재현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공주제일교회의 역사를 고스란히 느껴지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1958년과 1969년 주보에서도 시대상이 보입니다.
유관순 열사와 사애리시 선교사가 사용하던 그릇과 크리스탈 볼도 함께 전시되어 있습니다.
공주제일교회의 역사는 한국 기독교의 역사이기도 해서 매우 의미가 깊습니다. 초기 교회는 단순히 선교활동만 한 것이 아니라 독립운동 지원과 근대 교육에도 앞장섰기 때문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도록 일으켜 세운 공로가 큽니다.
지붕은 목조로 층고가 굉장히 높습니다. 2017년까지는 예배당으로 쓰여서 앉는 좌석에서도 그 세월이 느껴집니다.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은 보면 볼수록 아름답습니다.
지하 전시장으로 가면 공주제일교회의 역사를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샤프와 사애리스 선교사 부부가 신혼집으로 사용했다는 '선교사의 방'을 비롯하여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한 기독교인과 3.1 만세운동에 대한 기록물들이 있습니다.
공주제일교회와 기독교의 역사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지하 전시장은 엄숙하고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글귀들이 많았습니다. 이렇듯 근대문화유산이자 공주 3.1 만세운동 역사 순례지이기도 한 공주제일교회 기독교박물관은 공주시로 여행 온다면 반드시 들러봐야 할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공주기독교박물관
위치 : 충남 공주시 제민1길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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