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인권운동연대 편집위원회

불쑥 내뱉는 말을 곱씹어 볼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뱉어내고는 ‘왜 그런 말을 했지?’ 돌아봅니다. 이유를 찾아낼 때도 있지만, 이유를 알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어렴풋이 ‘이것 때문인가?’라고 추정해보다가 덮어버리게 됩니다. 내 안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던 무의식의 영역에서 불쑥 나의 입(몸)을 통해 밖으로 튀어나옵니다. 오랫동안 내 안에 자리 잡았던 것들입니다. 나의 정체성을 가늠하는 잣대일 수도 있습니다.

언론에 거론되는 정치인들의 말들을 보면 무의식중에 나온 말들이 많아 보입니다. 논란이 되면 ‘혼잣말’이었다고 해명합니다. 어떤 이는 ‘그것이 뭐가 잘못이냐?’고 항변하기도 하구요. ‘잘못이 없다’고 항변하는 이들은 의식적 발언이었을 것입니다. 목적의식적으로 단어를 배치하고 사용한 것이겠지요. 스스로 준비한 발언이니 잘못을 찾을 수 없고, ‘뭐가 잘못이냐?’고 역성을 내기도 하는 것이겠지요.

‘혼잣말’은 무의식의 영역에 자리 잡았던 무언가가 밖으로 튀어나온 것입니다. 그 사람의 내면(세계관)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말입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속성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랜 시간 반복된 학습과정을 통해 내면에 자리잡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의식적 발언보다 무의식적 발언은 더 깊이 있고 무게감 있게 바라봐야 합니다.

이야기 나누다가 무심결에 불쑥 튀어나오는 말에 친구가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아차 싶어 수습한다는 말이 ‘생각없이 한 말이니 신경쓰지마!’라고 합니다. 의식적으로 한 말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내 생각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더 큰 문제가 아닐까요?

무의식은 습관의 영역입니다. 습관은 내면에 깊숙이 배어들어 있는 것입니다. 오랜 시간 축적된 결과입니다. 운동선수들이 정식경기에서 움직이는 것과 같습니다. 운동선수들은 정식 시합이 시작되면 의식적으로 활동하기보다 오랫동안 반복훈련을 통해 몸에 배인 습관에 따라 움직입니다. 물론 의식적인 움직임도 있지만 이는 극히 일부입니다. 대부분은 무의식적인 움직임입니다.

무의식적으로 한 말이니 ‘신경쓰지마!’라고 하면 안 됩니다. ‘혼잣말이었다’고 덮어두려 해도 안 됩니다. 나의 말이 상대방에게 불편을 주었다면, 그 말을 들은 상대방이 불편하다는 표현을 했다면 사과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누군가의 앞에서 말을 할 때는 들으라고 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혼잣말이든, 목적의식적으로 한 말이든.

실수 또는 잘못을 알고, 이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태도는 사회공동체를 유지하는 힘이 됩니다. 그리고 그 행위를 고치려 해야 합니다. 그것이 ‘염치’입니다. ‘체면을 생각하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입니다.

중용(中庸)에는 ‘부끄러움(수치)을 아는 것은 용기에 가까워지는 것’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염치가 있어야 용기가 생기고, 용기가 있어야 스스로 바로 잡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맹자는 “인간이라면 반드시 염치를 몰라서는 안 된다”라고 했습니다. 성현들은 ‘부끄러움(수치심)을 아는 것(知恥)에서 인간의 도리가 비롯된다(예의염치(禮儀廉恥)’고 했습니다.

일제식민지 시절 대한광복회 총사령관이었던 박상진 의사는 ‘염치(廉恥)없는 사회는 결코 정의(正義)로울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자살하려던 청년에게 사비를 털어 위로하며 판결문으로 세상에 울림을 준 박주영 판사는 ‘나를 가장 똑바로 서게 하는 것은 염치(廉恥’라고 했습니다.

의도했던지 의도하지 않았던지 나의 행위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었다면, 잘못을 했다면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무조건 덮고 지나가려는 것은 ‘염치(廉恥)’없는 행위입니다. ‘용기(勇氣)’없는 ‘비겁(卑怯)’한 모습입니다. ‘정의(正義)’롭지 않습니다. ‘염치(廉恥)’가 있어야겠습니다.

※ 2022년 겨울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title":"울산동구 인권뉴스 ⑭염치(廉恥)","source":"https://blog.naver.com/usdonggu/223168551248","blogName":"여기는 울..","blogId":"usdonggu","domainIdOrBlogId":"usdonggu","logNo":223168551248,"smartEditorVersion":4,"cafeDisplay":true,"blogDisplay":true,"meDisplay":true,"lineDisplay":true,"outsideDisplay":tr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