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중심은 경안이라고 합니다!

경안동은 광주의 원도심으로,

예전에는 버스터미널(차부)이 위치해 있었고

광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의 중심지로

늘 사람들로 붐볐던 곳이에요!

특히 경안동 행정복지센터는

예전 광주 군청이 있던 장소였어요🏢

1917년 남한산성에 있던

광주 군청이 이곳으로 옮겨왔고

1919년 군청 앞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광주 군민들도 나와

만세 운동이 펼쳐졌던 곳입니다.

보통 경안동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하거나 지날 때

무심코 지나가는 시민분들이 많이 계실 것으로

짐작되는데요,

자세히 보면 행정복지센터 입구 벽면에

만세 운동 시위지 표지석이 부착되어 있어요!

그 내용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광주 군청 3.1운동 만세 시위지는 3.1운동

당시 대규모 독립 만세 시위가 일어난 곳이다.

1919년 3월 28일 오후 2시 무렵에

2000여 명의 시위대가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 만세를 외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군청사와 광주 우편소 건물에

돌을 던져 건물 유리창을 깨뜨렸다.

시위대가 총기 탈취를 시도하자

헌병들이 이들을 향해 발포하였고

6명 사망, 15명이 부상당하였다.

다음 날인 29일에도 경안리 부근에서

200~300여 명의 주민들이 모여

산발적으로 시위를 벌였다.

1919년 3.1 만세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은 광주시 곤지암읍 유사리에서

1856년 출생하신 정암 이종훈 선생입니다.

곤지암읍에서 양평 방향 도로에는

그분의 호를 따서 정암로라는 도로명이 있어요.

1918년 개교된 광주초등학교

10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있는 학교예요🏫

강점기였던 1921년 8월 4일 일본인 목수가

학생 황추호를 구타하여 실신시켰으나

경찰에서 훈방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학생들이 이에 반발하여

8월 29일에 무더기로 휴학원을 제출하여

동맹 휴학을 단행하였다.

이에 학부모들이 회의하여 일본인 목수를

고소하였고 결국 목수는 재수감되었다.

이 사건은 일본 교육 당국의 민족 편견과

차별에 맞서 항일 민족정신을

표출한 사례로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

시민분들께서도

경안동 행정복지센터 앞 만세 운동 시위지,

또 광주초등학교 정문 앞에 세워진

동맹 휴학 운동지 표지석을 읽어보며

나라의 독립을 위해 우리 광주시에서 애쓰셨던 분들을

다시 한번 기억하였으면 합니다!

나라 사랑과 내 고장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나는 길에 꼭 둘러보셨으면 합니다😊

※본 게시글은 광주시청 정윤옥 SNS서포터즈님이 작성한 글로

광주시와 공식 입장이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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