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전
울주군 보물이 잠든 망해사 사찰여행, 울주 망해사지 승탑
울주군 보물이 잠든 망해사 사찰여행, 보물 「울주 망해사지 승탑」 둘러보기
신라 제49대 헌강왕(憲康王, 재위 875~886) 때 창건된 망해사는 동해의 용을 위하여 세운 절입니다.
그 망해사 터에 국가 보물인 승탑 2기가 세워져 있는데요. 망해사가 창건된지 오래 지나지 않은 9세기 말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승탑도 줄곧 이 자리에 있었는데, 그 모습이 무너졌기 때문인지 1963년에 들어서야 보물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망해사는 어떤 이야기가 있는 사찰인지 돌아보았습니다.
영축산 언덕배기에 세워진 망해사(望海寺)는 그 이름에서부터 절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시 헌강왕이 오늘날의 남구 황성동 지역에 있는 세죽해변에 나들이를 갔다가 구름과 안개로 인하여 길을 잃었습니다. 이는 동해 용이 일으킨 것으로, 용을 위한 일을 하여야만 풀 수 있다고 믿어 용을 위한 절을 짓도록 하명하였습니다. 이 때 지어진 것이 망해사이며, 이 설화는 다시 처용설화와 이어집니다.
망해사는 차를 타고 사찰 바로 앞까지 진입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널널한 주차장까지 완비되어 있어 차를 타고 방문한 신도들이 간간히 보였습니다.
들어가는 입구에는 어떤 의미로 세워진 것인지 설명이 없는 2개의 비석이 있습니다.
추정컨대 가장 최근인 1957년에 사라졌던 망해사를 재건한 '김영암' 주지스님을 기리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절 내로 들어서니 멋진 대웅전이 정면에 보입니다. 겨울엔 앙상한 나뭇가지 덕분에 대웅전이 바로 보였는데, 봄~여름엔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나무가 우거져 시원한 초록빛이 가득한 대신 대웅전은 가려져 보일 듯 합니다.
망해사는 처음 건립된 이후 1544년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폐사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옛 터만 전해 오던 것을 1957년에 전 주지인 김영암이 중건하였습니다.
당시부터 하나씩 재건된 사찰 내 건물들은 1991년에서야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현재는 여러 스님들께서 이곳 망해사에서 수련을 하고 있으며, 많은 불자들이 심신을 달래고 원하는 바를 기원하기 위하여 이곳을 찾아오고 있습니다.
중앙에는 화려한 색감의 대웅전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주 멋진 자태입니다.
대웅전은 망해사 내 건물들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재건된 건물로,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사찰의 중심 건축물입니다.
하늘로 말려 올라가는 처마끝의 위용도 아주 멋지고 대웅전 현판도 멀리서부터 눈에 띕니다.
내부엔 석가모니 좌불이 있으며, 많은 신도들이 이곳에서 절을 올리거나 앉아 심신을 가다듬고 있었습니다.
천장에는 각자의 소망을 담은 연등이 빼곡하게 매달려 있었는데요. 그 모습도 꽤나 장관이었습니다.
방문 당시에는 왼편에 작게 제사상이 마련되어 있었는데요.
이승을 떠난 이를 위하여 명복을 빌어주는 것 또한 이곳에서 하는 역할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웅전의 외벽에는 망해사의 창건과 관련된 처용 설화와 보물인 승탑이 조성되는 모습이 벽화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대웅전 외벽에는 사찰과 관련된 역사를 탱화로 담고 있으니, 한 바퀴 빙 둘러 그려져 있는 그림을 보면 망해사의 건립 이야기를 간략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웅전 옆에는 스님들이 머물며 생활하는 요사채가 있습니다.
간간히 수행하고 계신 스님들이 사찰 내를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요사채의 반대쪽, 대웅전 옆에는 산신 · 칠성 · 독성을 함께 모시는 삼성각(三聖閣)이 세워져 있습니다.
내부에는 북극성을 상징하는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와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칠성여래(七星如來) 등을 그린 불화가 있습니다. 이 칠성도는 불교와 별자리 신앙의 결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상단에는 치성광여래가 칠성여래를, 하단에는 자미대제(紫微大帝)가 칠원성군(七元聖君)을 거느리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이 것은 불교와 도교의 세계를 함께 담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삼성각 앞에는 작은 불상이 세워져 있는데요. 겨울에는 추위를 피하기 위한 망토와 털모자 등을 불상에 둘러놓았습니다.
스님과 불자들의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 했습니다.
삼성각 바로 옆에는 범종이 있습니다. 보통 절에서는 아침 저녁으로 부처님에게 인사드리는 의미에서 종을 치는데요.
현대에는 그 커다란 소리로 인하여 매일매일 종을 치지는 않고, 필요에 따라 울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찰 마당을 지나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두 가지의 석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이 지장보살상이고, 정말 많은 분들이 마음을 담아 함께 세운 동상입니다.
지잘보살은 사후세계의 교주로, '위로는 부처의 도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도를 실천하며, 육도윤회(六道輪廻)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남김없이 구제하기 위해 성불마저도 포기한 대비(大悲)의 보살입니다.
또 하나는 석가여래입상입니다.
이는 불기 2550년의 뜻 깊은 해를 맞아 조성되었다고 하며, 동해 용왕을 위해 헌강왕이 망해사를 세웠던 그 마음을 이어 영암 주지스님께서 사찰을 재건한 유지를 받들고자 함이라고 합니다.
두 석상을 지나 더 안쪽으로 이동하면, 사찰 부지 중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자리 잡은 2기의 승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63년 1월 21일에 보물 제173호로 지정된 울주 망해사지 승탑(蔚州 望海寺址 僧塔)입니다.
승탑은 이름난 스님의 유골을 봉안하기 위하여 세운 돌탑을 의미하는데, 망해사가 창건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9세기 말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승탑입니다.
승탑의 높이는 3.3~3.4m 정도이며, 8각원당의 기본형으로 통일신라 후기 당시의 승탑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산입니다.
원래 동쪽, 서쪽에 나란히 2기의 승탑이 서있었는데, 동쪽 승탑이 일찌감치 무너졌던 것을 1960년에 복구하여 세워졌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승탑 내부의 사리공이 도굴되면서 무너졌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동쪽 승탑 지붕 부분이 깨져 그 모습이 온전치 않은 것은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그래도 작지만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현재 망해사에는 봄이 한창 찾아오는 중이었습니다.
동백은 지고 진한 분홍색의 매화꽃이 피고 있었는데요. 식물이 푸르러지는 봄~여름엔 현재와는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망해사는 의외로 찾는 이도 많은 사찰이라 이따금씩 불자가 오가는 모습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높은 산 중턱에 위치한 것 같은 이 풍경이 멋스러웠습니다.
망해사는 나라의 보물인 승탑을 보유하고 있는 사찰로 그 의미가 깊습니다. 문화재를 잘 관리하고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여주면서 오래오래 관리되고 유지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울주 사찰여행, 망해사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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