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전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곳, 평화2동 마을이야기
25년간 살아온
살기 좋은 우리 동네 평화동
여유를 즐기며 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관, 건강한 신체를 위해 운동할 수 있는 체육센터, 보고 싶은 영화가 있을 때면 찾을 수 있는 영화관과 전주 권역을 다닐 수 있는 버스까지. 제가 평화동으로 이사를 온 건 유치원 다닐 때였습니다.
그 후로 쭉 평화동에 살고 있으니 어느덧 25년이 되었네요. 중간중간 부모님께서 다른 동네로 이사를 고민하셨지만 평화동이 살기 좋은 동네라며 지내 온 것이 이렇게 긴 시간이 되었네요.
평화2동은 평화동 1가의 일부와 평화동 2가, 3가, 석구동, 원당동까지 아우르는 넓은 동네입니다. 본래는 평화 2동의 지역들은 농촌의 모습을 유지해왔는데 이후 도시 개발이 진행되며 많은 아파트가 들어서며 농촌의 모습이 점차 줄어나가 현재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평화동 지명의 이름은 해방 전으로는 관련된 자료를 찾아볼 수 없으며 광복 전후로 많은 시련을 겪었던 조상들이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에서 ‘평화’동이라고 개명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있습니다.
미나리꽝과 좁은 둑길이 있던
과거 평화동이 떠올랐습니다
전주문화재단에서 발행한 마을조사서를 통해 과거 평화 2동의 모습을 살펴보니 정말 새로웠습니다. 코오롱아파트 인근 일대는 과수원과 미나리꽝이 있는 동네였고, 지금은 전교생 50명 남짓의 소규모 학교로 운영되고 있는 문정초등학교가 과거에는 학생 수가 너무 많아 버스를 못 타면 계속 기다리는 것이 일상이었다고 합니다.
30대 초반인 제가 신성초등학교 다닐 때, 현재 평화도서관 자리에 미나리꽝이 있었다는 것은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잘 포장된 도로를 두고 지름길이라며 친구들과 미나리꽝의 좁은 둑길을 가로질러 가다가 미끄러져 옷이 더러워졌던 기억이 살포시 떠오릅니다.
지금은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 차들이 쌩쌩 다니는 넓은 도로도 예전에는 시골의 평화로움과 향긋한 풀냄새를 느낄 수 있던 길이였다고 합니다. 평화동에 시내버스가 다니기 전에는 남부시장에 물건을 팔러 가거나 시내에 나가기 위해 이삼십 리 이상 걸어 다니는 것은 당연했고, 삐걱삐걱 소달구지가, 마이크로버스와 군용 트럭을 개조한 작은 트럭이 짐을, 사람을 싣고 오갔던 길이라고 합니다.
현 전주교도소가 있는 자리는 옛날 박산이라는 산이었는데 남부시장으로 장사하러 다니던 사람들이 쉬어가던 주막이 있었고, 그 주위에 난장이 섰었다고 합니다.
순창, 임실, 구이 등 각지에서 찾아온 장사꾼들이 하룻밤 머물던 주막이 있다 보니 난장이 자연스레 형성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서노송동에 있던 교도소가 1970년대 평화동으로 이전하게 되었고, 현 교도소도 이전 계획이 있어 먼 훗날에는 ‘이곳에 교도소가 있었다.’라고 마을 기록이 또 하나 남겨지겠네요.
전주천, 학산도 등 자연 명소와
함께할 수 있는 평화동
평화동에는 자연 명소도 곳곳에 있습니다. 완주군 구이면 일대의 노령산맥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르다가 전주천과 합류하는 삼천입니다. 전주천과 함께 전주의 대표적인 도시 하천이지요. 더군다나 요새는 삼천이 흐르는 곳에 핫플레이스가 생겨 사람들의 발길이 더 많아진 곳입니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 나무를 보며 봄날의 여유를 한껏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도심의 생활에서 잠시 한숨 돌릴 수 있는 곳을 찾으신다면 학산도 추천드립니다. 송정써미트 아파트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산책하기 좋은 저수지와 조금 더 발길을 돌리면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시집 도서관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분이 학산-고덕산 코스로 등산을 많이 하시는데 고덕산 서쪽 산기슭에는 학의 둥지를 연상케 한다고 하여 이름이 붙은 ‘학소암’이라는 절도 있습니다.
규모는 작으나 견실하게 지어졌으며 꾸밈도 간결하여 소박한 느낌을 주는 절입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일상의 바쁨은 잠시 내려두고 숨 고르기를 할 수 있는 좋은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일 다니던 길의 역사와 유래를
알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매번 오가던 동네이지만 취재를 하기 위해 동네를 한 바퀴 도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그리고 눈에 띄는 것이 있었습니다. ‘꽃밭정이’. 동네를 돌다 보니 유독 ‘꽃밭정이’를 내세운 곳이 많이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꽃밭정이 노인 복지관, 꽃밭정이점, 꽃밭정이 사거리 등... 이 일대의 지역이 꽃밭정이라고 불리는 건 알았지만, 왜 꽃밭정이라고 불리는지 궁금했지만 기회가 닿지 않아 궁금증에서 멈췄었는데 이번 기회에 새로운 내용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재 평화동 BYC 건물이 있는 곳이 예전에는 꽃밭으로 둘러싸인 샘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꽃샘의 물은 항시 4℃를 유지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물이 솟아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곳이라고 합니다. 이와 관련한 전설이 있는데, 옛날에 어느 효자가 살았는데 그 효자의 아버지가 중한 병에 걸려 자리에 누워 계신 상태였다고 합니다.
효자는 병으로 고생하는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엄동설한에 꽃을 찾으러 헤매던 중 이 마을의 공동우물에서 애타게 찾던 꽃을 찾아내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그 샘을 꽃샘으로, 동네를 꽃밭정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행정구역 명칭에 따라 평화동 사거리, 평화동 지점으로 명명되던 곳이 아름다운 사연과 우리말로 표현된 고유지명의 멋들어짐을 간직하고자 1997년부터 다시 꽃밭정이 사거리, 꽃밭정이 지점 등의 이름을 되찾은 것이라고 합니다.
꽃밭정이처럼 놓칠 뻔한 것을 되찾은 곳이 또 있습니다. 바로 평화동 주민들의 산책 코스 중 하나인 지시제인데요. 지시제는 평화동에 농지가 가득했을 때 사람들에게 물을 대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준 저수지였습니다. 1930년대에 조성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소중한 자원으로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요. 아파트가 들어서고 도시가 개발되면서 매립될 위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농지가 사라지고 주택들이 들어서며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던 지시제를 매립하자는 의견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후 몇 번의 위기가 더 있었지만 지시제를 보살피고 가꾸고자 하는 평화동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지시제 환경 정화 활동을 하고 자연 체험 학습장을 조성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이후 전주시의 생태 공원 사업으로 인하여 현재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다시 방치된 게 아닐까 싶었던 지시제는 작년에 공원 재조성을 마치고 이제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산책 코스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흐드러지는 벚꽃들을 보며 타박타박 동네 한 바퀴.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 애정이 한 스푼 더해지는 취재였습니다. 평화동에 사시는 분들, 평화동에 방문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다음 마을 탐방에서 만나요.
※ (재)전주문화재단에서 진행한 마을조사단의 마을조사서를 참고하여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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