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고 있는 동학혁명과 전봉준은 정읍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전봉준관’이 순창 쌍치에 있는지가 궁금했고, 전봉준을 왜 녹두장군이라고 부르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순창 쌍치면에 있는 ‘녹두장군 전봉준관’을 찾아가 그 이야기들을 알아보기로 하였습니다. 함께 가보실까요?

전봉준 장군은 바로 이곳 순창 피노리에서 체포되어, 1894년 12월 9일 전라감사로 압송해 1895년 3월 29일에 사형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순창에는 ‘전봉준 장군 압송로’와 ‘녹두장군 전봉준관’이 설립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봉준 장군은 키가 작아서 어린 시절 별명이 ‘녹두’였고 후에 ‘녹두장군’이라 불이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부르시던 노래가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녹두장군 울고 간다." 원래 노랫말은 "청포 장수 울고 간다"인데 연로하신 할머니는 꼭 녹두장군으로 부르셨던 기억이 났습니다.

녹두장군 전봉준관에 가면 입구에 전봉준의 ‘절명시’가 있었는데요. 시구절을 보면서 전봉준 장군의 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때가 오면 천지가 모두 힘을 합했는데.

운이 다하니 영웅도 스스로 할 바를 모르겠구나!

백성을 사랑하고 정의를 세운 것이 무슨 허물이겠느냐만

나라 위한 오직 한 마음 그 누가 알겠는가?

전봉준 절명시

더불어 창의문을 선포하는 전봉준 장군 동상과 전봉준관에는 부패한 정부와 탐관오리에 맞선 동학농민운동의 수장 전봉준 장군의 모습이 있습니다. 또한 그때의 모습을 재현한 초가집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그 당시 농민들이 사용했을 곡괭이와 여러 농기구가 재현되고 있었습니다.

탐관오리에 분노하며 나라를 개혁하겠다는 뜻을 품고 민란을 일으켰던 농민과 민중들이 함께 했던 동학농민운동은 결국, 조선 관군과 일본군에게 대패하고 꿈을 접었지만,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에도 우리 민중의 마음속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옆에 녹두관이라는 체험관과 캠프장이 있는데요. 녹두장군 전봉준을 기념하면서 다양한 행사를 할 수 있게 되어 좋은 것 같았습니다.

녹두장군 전봉준관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만난 ‘전봉준 피체유적지’라는 기념석을 보며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승전비도 아닌 ‘피체 유적지’라는 말이 마음을 적셨습니다. 다양한 여행지를 돌아보는 것도 좋지만, 우리의 주요 역사를 간직한 '녹두장군 전봉준'관에 방문해 우리의 역사를 다시 되새겨 보는건 어떨까요?

■ 녹두장군 전봉준관

- 주소 :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피노길 65-29

- 전화: 063-650-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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