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전
서당의 역사 봉화 ‘두릉서당’
서당 하면 18세기 조선시대 교육의 한 장면을 볼 수 있는
단원 김홍도의 서당 그림을 떠 올릴 텐데요,
봉화군 두릉골길 171에는 1569년에 건립된 서당이 있습니다.
봉화군청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밖에 걸리지 않지만,
시골 농로를 거치는 등 처음 찾아가는 저에게는 조금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어쨌든 서당에 대한 호기심에 이끌려 ‘두릉서당’을 찾았습니다.
현대교육이 이루어지기 이전에는 조선시대 교육은 ‘서당’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두릉서당 소개하기전 잠시 우리나라의 서당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일제 총독부의 통계에 의하면 1911년 3월 말 현재 서당수는 1만6540개 소이며,
학동수는 14만1604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1922년을 기점으로 하여 해마다 감소되어
1930년 서당수 1만36개 소에 학동수는 15만892명,
1940년 서당수 4,105개 소에 학동수는 15만8320명으로 되었습니다.
광복 후 ‘교육법’ 제정에 따라 학제가 정비되면서 점차 소멸되었으며,
서당의 교육기능 역시 학교로 이전되고
현재는 학교교육을 보조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김봉곤 훈장의 서당을 떠올리면 되실겁니다.
서당교육의 내용은 강독(講讀)·제술(製述)·습자(習字)의 세 가지였다고 합니다.
강독의 교재는 기초적인 동몽교재(童蒙敎材)인
천자문·동몽선습 ·통감 및 사서(四書) 삼경(三經)과
부교재격인 사기 史記·당송문 唐宋文』·당률 唐律 등이었는데,
대개는 통감 정도에서 그쳤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중엽 이후로는
우리 나라의 독자적인 동몽교재의 개발과 보급이
서당에서 교육용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서당(書堂)
두릉서당은 문화재자료 제253호로
물암(勿巖) 금융(金隆)(1549-1594)이 1569년에 건립한 서당으로,
두릉골 안쪽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도착하고 보니 옆에는 농가가 있었습니다.
선조 2년(1569)에 서당은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 작 기와집입니다.
현판은 퇴계 이황의 친필입니다.
평면은 어칸의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인데,
좌측 온돌방은 전면의 퇴칸까지 내밀게 하여 통칸으로 구성하였으며,
나머지 3칸의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퇴칸을 두었습니다.
두릉서당을 둘러보셨다면
인근의 바래미마을과 닭실마을의 고택체험을 같이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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