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조선왕릉 김포 장릉을 보호했던 전통사찰 봉릉사, 김포 금정사
농경사회이자 불교 사회였던 우리나라에는 참으로 많은 사찰이 있는데요, 그중에는 망자의 명복을 빌었던 원찰도 있습니다.
신라시대 문무왕을 위해 건립한 감은사가 대표적이며 조선시대에는 죽은 왕의 무덤 가까이에 사찰을 건립하였습니다.
김포에도 그와 비슷한 사찰이 있어 소개합니다. 금정산 자락의 작고 아담한 사찰 금정사입니다.
금정사는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 김포시 풍무동에 위치하였습니다. 금정산 초입 추존왕 원종과 부인 인헌왕후가 잠든 장릉이 지척입니다. 또한 우리나라 유일의 승려전문교육기관인 중앙승가대학도 있습니다.
그러한 사찰은 오랜 시간을 지나며 명칭이 3번 바뀌었네요.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되며 고상사라 하였고 1627년 조선 인조는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원종과 인헌왕후로 추증하며 그들의 묘를 양주에서 김포로 이장하고 장릉이라 하였습니다.
또한, 인근에 있던 고상사를 현재의 위치로 옮겨 장릉을 보호하는 사찰로 재건하여 봉릉사라 하였습니다. 금정산 능선 아래로 김포 장릉이 있습니다.
장릉을 보호했던 봉릉사는 일제강점기 강제로 철거된 김포 관아의 목재와 주춧돌 등 자재로 크게 중수하였습니다. 하지만 6.25 전쟁으로 퇴락하니 1974년 비구니 스님에 의해 다시 재건되며 금정사로 이름이 한 번 더 바뀌었습니다.
1500년의 세월을 지나며 고상사이며 봉릉사였던 사찰은 현재의 금정사가 되었습니다. 금정산 기슭 아래로 대웅전, 선원, 당우, 범종각이 이어집니다.
사찰은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지척으로 접근성이 좋으면서도 금정산과 장릉으로 이어지는 숲길이 있어 수려한 자연경관을 즐기게 됩니다.
산기슭 넓은 평지에 자리 잡은 사찰 또한 고풍스럽습니다. 종무소를 시작으로 강당과 대웅전이 마주하고 가장 뒤편으로 범종각까지 앞마당을 중심으로 ㅁ자 배치입니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알릴 종소리가 멀리 퍼져나갈 듯합니다.
금정산 기슭에 석축을 쌓아 경계를 이루고 사찰의 중심 건물을 오르는 길에는 소나무가 호위하듯 서 있습니다. 금정사의 전각은 조금 특이합니다. 가장 상부에 위치한 주불전인 대웅전이 정명 3칸 측면 2칸의 소박한 모습과 달리 선원과 강당, 요사채인 본원지 등이 큰 규모입니다.
대웅전 앞마당에는 7층 석탑이 자리 잡았습니다. 너른 잔디마당 한가운데로 불을 밝히는 장명등과 유일하게 있어서는 존재감이 컸습니다. 건물을 보호하는 건축 양식 아래로는 불교 경전이 그림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스님의 기도가 계속되어 대웅전 실내는 둘러볼 수 없었습니다.
대웅전에서 오른쪽으로 위치한 금정사 선원입니다. 정면 7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로 팔작지붕과 맞배지붕이 결합되었습니다. 기와와 목재의 전통양식은 아름다움과 복잡함으로 대웅전과 큰 대비를 이룹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으니 일제에 의해 철거한 김포 관아의 자재를 가져다가 지어졌다고 합니다. 선원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금정사 석조여래좌상도 모셔졌습니다.
사찰을 둘러본 후 잠시 중앙승가대학으로 향해봅니다. 도로 옆으로 담장을 사이에 두고는 금정사와 승가대학이 나란히 합니다.
좌우로는 김포 장릉과 금정산을 오르는 등산로와 둘레길도 이어지네요. 풍무동 아파트 단지와 맞닿은 금정산 기슭에는 조선 16대 왕인 인조 부모의 장릉을 보호하는 금정사가 있습니다. 고즈넉한 풍경으로 잠시 일상의 복잡함을 벗어나 고요함을 즐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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