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일 전
[부산 산길 역사의 발자취를 찾아서] 2코스ㅣ구덕산, 9가지 덕을 품고 구덕고개 굽이굽이 넘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져 온
부산을 대표하는 산,
그곳에서 '부산문화유산'을 찾아보는 답사기
「부산 산길 역사의 발자취 찾아서」
두 번째 코스입니다.
/
"구덕산, 9가지 덕을 품고
구덕고개 굽이굽이 넘다"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2 코스 |
부산 전차 종점 터 ▶ 부산 항일학생 의거 터와 충무공 이순신 영모비 ▶ 구덕령 꽃마을 입구 ▶ 구덕령 표지석 ▶ 구덕 문화공원 ▶ 구덕산 정상석 ▶ 부산일 과학고등학교 |
코스 2ㅣ구덕산,
9가지 덕을 품고 구덕고개 굽이굽이 넘다
아홉 가지 덕을 품은 구덕산.
부산 감옥소, 부산 전차 종점, 항일학생 의거, 꽃마을, 구덕령, 기상 관측소 등 개항 이후 부산의 성장과 발전을 조망할 수 있는 다양한 역사·문화적 장소성을 품고 있는 부산을 대표하는 산이다.
역사의 상흔을
찾아서
삼익아파트 단지가 있는데 이곳이 바로 부산 감옥소 터이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로 변화하여 감옥소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부산 감옥소는 원래 1896년 9월부터 주둔하기 시작한 일본군 수비대의 연병장으로 사용하던 곳이었는데, 1909년에 1만여 평 부지에 부산 감옥소를 만들었다.
대신동 삼익아파트에 도착해서 감옥소의 옛 흔적을 찾고자 하였으나 어디서도 확인할 길이 없었다. 이곳이 역사적인 장소이기에 적어도 표지
판이나 안내 문구 정도는 비치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조차 없었다. 봄이 되어 벚꽃이 만발하는 꽃 잔치가 펼쳐지더라도 이곳이 일제의 조선 침탈의 전초기지였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부산 전차는 일제강점기에 설치되어 온천장을 출발하여 동래, 서면, 부산역, 옛 부산시청, 재판소현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 등을 경유하여 구덕 운동장까지 운행하였다. 1968년 전차 운행이 중단된 후, 동아대학교가 한국전력의 전신인 남선전기로부터 전차를 학습용으로 기증받아 구덕캠퍼스 야외에 보관해 왔다.
2009년 동아대학교 박물관이 부민캠퍼스로 이전하면서 서구청에서 시행한 임시수도 기념 거리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시민들에게 개방하기 위해 캠퍼스 내에 전시하고 있다. 이 전차는 1952년 미국에서 무상 원조로 부산에 들여와 운행하던 전차 20량 중에서 1968년 마지막까지 운행하던 전차로,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는 유일한 전차이다. 2012년 4월 18일에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민족과 조국의
기상을 떨치다
구덕운동장 주자창 인근에 부산 학생 의거 터가 자리하고 있다. 학생 의거는 일제강점기 1940년 11월 23일에 있었던 항일 투쟁이다. 당시 일제는 전시체 제 시기로 군사훈련을 목적으로 학생들을 동원하여 제2회 전력증강 국방경기대회를 공설운동장현 구덕운동장에서 개최하였다. 명분은 학생들의 운동대회였으나 실질적 목적은 군사훈련을 위한 동원에 가까웠다.
종목별 경기가 열리는 동안 일본인 심판이 조선인 학교를 차별하면서 경기를 편파적으로 운영하였다. 결국 폐회식 때 성적을 조작하여 일본인 학교의 우승을 발표하자 이에 조선인 학생들의 분노가 폭발하였다. 학생들은 우리 민요를 부르면서 공설운동장을 출발하여 보수동 네거리까지 행진한 후, 대열을 나누어 대청동과 광복동을 거쳐 중앙동까지 진출하였다. 일부 학생들은 영주동의 육군대좌 노다이 관사로 몰려가 돌 세례를 퍼부었다.
이에 부산 헌병대는 각 경찰서에 긴급 지령을 내려 200여 명의 학생들을 현장에서 검거하였는데 그 가운데 15명이 투옥되고 21명이 퇴학을 당했으며 44명이 정학을, 10명이 견책을 당하는 처벌을 받았다. 이처럼 부산 항일학생 의거는 일제강점기 전시체제 하에 펼쳐진 대규모 항일 학생 운동이 벌어졌었다.
중앙공원예전의 대신공원인데 그 입구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모비가 있다. 이 영모비의 비문은 붉은색인 것이 특징이다. 아마 장군의 충정과 순국을 추모하기 위함인 듯하다. 영모비는 누군가를 영원히 추모하기 위해 세운 비이다.
이 비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이곳에 자리 잡게 되었으니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겨지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구덕에 깃든 사람들
끈질긴 삶을 이어오다
구덕초등학교 정문으로 가는 길가에 구덕 수원지 터 표지석이 있다. 구덕 수원지는 일본 전관 거류지에 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원래 초량 왜관 내에는 우물 두 곳이 있었는데, 개항 이후 거류민의 증가로 물이 부족하게 되자, 1886년 보수천의 물을 죽관과 목통으로 끌어와 이용하였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물 부족을 해결하기 어려워지자, 1900년에 저수지 공사를 시작하여 1902년에 구덕 수원지가 준공되었다.
구덕산 꽃마을은 구덕산과 엄광산 사이의 고개에 위치하는 마을이다. 마을 사람들이 주변에 자라는 야생화를 꺾어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876년에 부산항이 개항하면서 일본인 전관 거류지에 정착한 일본인들이 군 수송로를 조성하기 위해 초량 왜관에서 구포까지 연결되는 도로를 개수하였다.
원래 이 길은 임진왜란 시절부터 사람들이 왕래하던 길이었는데 이때의 개수를 계기로 외지에서 온 가난한 사람들이 이곳에 움막과 초가 등 무허가 주택을 짓고 살기 시작하였다.
꽃마을 입구에는 이곳이 오래전 장사치들이 넘나들던 고개라는 것을 알리는 구덕령 표지석이 있다. 이 표지석은 마을 입구 왼편 도롯가에 자리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고갯길의 유래와 표지석 건립 취지가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
구덕령은 구덕산과 엄광산 사이에 위치한 해발 262m의 고갯길로 19세기 말 개항과 더불어 새 길이 나기 전까지 부산포에서 구포장을 잇는 유일한 지름길이었다. 당시 이 땅에 살았던 어부, 장꾼과 보부상은 물론 전란 시의 의병이 넘나들며 이곳에서 땀을 식히고 주막에서 목을 축이던 조상들의 애환이 서린 곳이다. 이제 우리 서구민은 이 유서 깊은 자리에 표지석을 세우고 애향의 터전으로 삼고자 한다.
-구덕령 표지석 -
마을에는 마을 주민들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던 오래된 당집이 있다. 당산제는 마을 주민들이 마을의 수호신인 당산신에게 마을의 풍요와 평
안 등을 기원하는 마을공동체신앙의 의례이다. 당산굿·동제·당제라고도 하는데 예전에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당산제를 지냈었다.
지금은 시대가 달라지고 사회가 변화하여 제를 지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제를 지내더라도 신앙적 차원이 아닌 문화적 차원으로 시행하는 경우가 많다.
숲속의 숲
몸과 마음을 힐링하다
구덕령에서 구덕산 정상 방향으로 조금 오르면 구덕문화공원이 있다. 산속의 공원으로 이곳을 방문하는 많은 사람에게 휴식을 제공하는 녹지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 공원은 2004년에 부산 시민들의 평생 교육 및 학생들의 현장 학습을 목적으로 조성되었다.
공원에는 교육 역사관, 다목적관, 목석 원예관, 민속 생활관 등 다양한 시설들이 있다. 원래는 ‘구덕 수목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나, 2007년에 박물관, 식물원, 전시관, 체육 시설 등이 완공되면서 ‘구덕문화공원’으로 변경하였다.
9가지 덕으로
사람을 품다
공원의 숲길을 따라 산 위로 걸으면 구덕산 정상으로 향하는 탐방로를 만날 수 있다. 구덕산 탐방로는 콘크리트로 포장된 도로이다. 정상 부근에 기상 관측소가 있기 때문에 차량 진입을 위한 콘크리트 도로가 조성되어 있다. 흙길이 아니라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넓은 포장도로를 걷는 것도 나름의 운치를 더한다.
구덕산 정상에 오르니 시야가 확 트인다. 맑은 공기가 가슴을 상쾌하게 하고 시원한 바람이 이마의 땀을 식힌다. 정상석에는 이 산의 높이가 해발 565m라는 것을 알리고 있다. 동으로는 멀리 해운대의 고층 빌딩들이 보이고 남으로는 영도와 바다에 떠 있는 배들이 보인다.
또 다른 숨은 매력인 한 그루의 소나무도 함께 살펴보기 바란다.
동으로는 멀리 해운대의 고층 빌딩들이 보이고 남으로는 영도와 바다에 떠 있는 배들이 보인다. 서로는 승학산 정상과 억새밭, 서낙동강과 김해평야 등이 들어온다. 정상에서 맛보는 넓은 시야는 산을 오르는 동안에는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다. 정상에 오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멋진 경험이다. 힘들고 고된 과정을 묵묵히 인내한 결과에 대한 보답이라 할 수 있다.
구덕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곳이 바로 시약산 정상이다. 구덕산 정상에서 기상 관측소가 있는 방향으로 길을 잡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약산 정상에 도달한다. 시약산 정상 입구 좌측에는 시약정이 있다. 동쪽으로 확 트인 시야를 제공한다. 높은 절벽 위에 자리한 시약정에 오르면 가까이는 대신동 일대가, 멀리에는 해운대 넘어 동해와 영도를 지나 남해까지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부산 기상 관측의 역사는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은 사라진 ‘부산임시관측소’에서 시작되었는데 이 관측소는 1905년에 설치되었다. 현재 부산시 문화유산자료 88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현재는 멸실 우려로 해체하여 향후 복원을 위해 잔존 부재를 보관 중이다.
시약산 정상에 기상 관측소가 있다는 것은 이곳이 우리 지역의 기상을 관측하기에 편리한 장소라는 의미일 것이다. 기상 관측은 세계기상기구가 정한 기준에 따라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관측해야 하는데 이러한 기준을 충족하는 장소가 이곳이라니 시약산이 품은 또 하나의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기상 관측소 방향으로 올라가면 관측소 바로 뒤에 시약산 정상석이 있다. 관측소가 있는 곳이 시약산 정상이기 때문에 정상석은 관측소 펜스 바로 뒤에 세워져 있다. 시약산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진 것이 없지만 대체로 사람들이 이곳에서 약초를 심거나 채취하였다고 하여 불려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낙동정맥의 끝,
인재의 요람으로 움트다
시약산 정상석이 있는 곳에서 서쪽으로 난 하산길로 가면 승학산과 시약산의 분기점인 자갈마당으로 가는 길이다. 시약산에서 자갈마당까지는 상당히 가파른 돌길로 이뤄져 있다. 하산길이라 힘들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돌부리가 노출되어 있어 천천히 조심해서 내려오는 것이 중요하다.
자갈마당에서 서남쪽으로 승학 약수터가 있는 방향으로 길을 잡고 20여 분 걷다 보면 아치형 바위 터널이 나온다. 제석골에서 출발하여 이 길을 지나 장수 약수터를 거쳐 다시 제석골로 내려오는 코스다. 이 코스는 승학산 초입의 산덩이를 빙 둘러보는 코스로, 약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짧은 구간이다.
승학 약수터를 지나면 바로 제석골이다. 여기에 부산 과학영재들의 산실인 부산일과학고등학교가 있다. 부산일과학고등학교는 2012년 3월에 개교하였다. 교육 목표는 ‘따뜻한 품성을 갖춘 창의적 융재 과학 인재 육성’이며 교훈은 ‘정직, 창의, 열정’이다.
대한민국 과학기술을 선도할 미래 융합 인재를 양성할 목적으로 설립된 이 학교는 승학산 제석골에 위치하고 있기에 제석관, 창의관, 면학관, 형설관, 회화관, 모란관, 승학관 등의 승학산 관련 명칭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특히 제석관에는 영재 교육원, 역사관 등이 있다.
제석골은 현재 제석 산림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다양한 운동기구가 구비되어 있는 체력 단련장, 시민들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족구장을 비롯하여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원두막과 나무 의자 등이 잘 갖춰져 있다. 특히 제방 공사를 마친 제석골 계곡은 지친 몸과 마음을 상쾌하게 할 수 있는 좋은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다.
아홉 가지 덕을 가진 산, 부산사람뿐만 아니라 부산으로 여행을 오는 많은 사람이 구덕산에 올라 산이 품은 부산의 역사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험하고 부산을 다시 생각하는 산행이 되었으면 한다.
- #부산
- #부산여행
- #부산산길
- #부산등산
- #구덕산
- #구덕산등산
- #구덕산둘레길
- #부산구덕산
- #부산구덕산등산
- #제석골
- #부산일과학고등학교
- #시약산
- #구덕산꽃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