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삶, 삶의 불

편안할 영(寧)과 넘을 월(越)

한 겨울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던 건 화목 난로 덕분이다. 올 겨울 동안 꽤 많은 나무를 주어왔고, 불을 때었다. 산에는 부러져 죽은 나무와 선채로 말라죽은 나무가 꽤 많았기에, 장작을 얻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톱과 도끼에 익숙해질수록 손바닥 안에 자리 잡은 굳은살은 단단해졌고, 팔뚝도 제법 튼실하니 생각지도 못했던 근육까지 얻을 수 있었다. 평소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았던 몸이 노동에 길들여지며 형태를 바꾸는 모습이 스스로도 신기했다. 톱과 도끼에 대해 자세히 공부를 하게 된 것도 화목 난로 덕분이다. 크기와 무게에 따라 적합한 나무의 길이와 두께가 달라진다는 사실은 물론, 톱과 도끼는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 기술로 하는 작업이라는 노하우 또한 깨닫게 되었다.

장작을 패서 불을 때는 일. 보일러와 히터와 전기장판이 당연한 시대에 화목 난로라는 건 사실 실용성보다 감성적인 면이 더 크지 않나 싶지만, 바로 그 감성적인 면 때문에 나는 퍽이나 마음에 들었다. 불을 지피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잔 가지를 모아 아래쪽에 두고 그 위로 조금 더 큰 장작을 쌓고, 종이처럼 불에 잘 타는 매개체를 이용해서 잔 가지에 불을 붙인다. 여기에서는 바람이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바람이 없으면 잔 가지에 불을 옮겨 붙이기가 정말 힘들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한번 시도를 해봤다가 포기하고 가스 토치를 이용해서 불을 붙였다. (역시 문명 최고…!) 내가 오래 지켜본 결과, 불은 점화-발화-기폭-소진으로 네 단계의 변화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점화는 막 잔가지에 불이 붙었을 때의 아직 위태로운 시기다. 충분히 바람을 넣어주거나 더 오래 불을 붙여주지 않으면 쉽게 꺼져버리는 상태라 할 수 있다. 발화는 이제 잔 가지가 불을 충분히 머금어서 굵은 가지로 뻗어 나가는 상태다. 물론 이 상태 역시 지속적인 바람이 없다면 불은 꺼지고 연기만 피어오르는 상태가 된다. 기폭은 굵은 가지까지 불이 옮겨 붙어서 활활 타오르는 절정의 상태인데, 이쯤 되면 물을 퍼붓지 않는 이상 쉽사리 꺼지지도 않는다. 그렇게 한참이나 타오르던 불은 마침내 모두 연소되어 재가 되는데, 이 상태를 나는 소진이라고 본다. 뜬금없이 웬 화목난로와 불에 대한 이야기를 이토록 지지하게 했느냐면, 내가 여기에서 삶을 봤기 때문이다.

매번 이렇게 화목 난로를 때며, 나무에 불이 붙고, 활활 타고, 재가 되는 일련의 진행을 지켜보면서, 사람의 인생이 그려졌다. 위태로운 점화의 상태에서 아무도 바람을 불어주지 않아 발화할 수 없었던 누군가와, 발화되었지만 성급하게 공기구멍을 막는 실수로 꺼져버린 누군가도. 활활 타오르는 기폭의 상태가 영원할 거라 오만했던 사람과, 모두 소진되어서도 자신이 아직 활활 타오르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까지. 시기를 놓친 사람과 바람을 얻지 못한 사람, 오해를 한 사람과 착각을 한 사람들. 나무에 불이 붙어서 활활 타오르고 다시 재가 되는 하나의 순리가, 어쩌면 그렇게도 삶을 닮았는지 지켜보는 내내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지금 어떤 단계일까? 고민이 깊어지는 겨울의 끝자락, 다시 화목 난로 앞에 앉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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