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와 폭염 그리고 거친 태풍까지 어느때보다 치열한 여름입니다.

영천은 임란의병. 구한말의병,한국 영천전투등 굵직한 역사의 중심에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극적인 승리로 전쟁의 흐름을 바꾸는 중요한 전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임진년 1592년(선조25년) 4월13일 17만여 명의 육군과 3, 4만 명의 수군을 동원하여

부산을 점령한 왜군에 의해 불과 보름 만에 한양이 함락되고

국왕과 관료들은 평양을 거쳐 의주로 피난을 떠나게 됩니다.

4월 22일 영천성을 점령한 1,000여 명의 왜군들은 영천읍성을 거점으로

인근 지역민들에 대한 약탈과 방화 및 살육을 벌이는 백성에게는 공포의 시간이었습니다.

이에 신녕현의 무인 권응수는 의병을 이끌고 1592년 5월 6일 신녕 동편 한천 대동에서

전투를 벌여 왜군을 격살하고, 백성을 괴롭힌 두목이자 관노(官奴)인 희손(希孫) 일당을 소탕하게 됩니다.

비록 소규모 승리이기는 하지만 임진왜란 초기 아군이 승리한 의미있는 전투입니다.

이는 영천 지역 최초의 의병 승리이며 전란 초기의 육전승리로 이를 바탕으로

영천성 복성전투에도 긍정적 영향을 준 전투가 한천승첩 또는 한천전이라 합니다.

이런 역사적 의미가 있는 승리를 기억하기 위해 1992년에 한천 일대의 전승을 기념하고

참전 의병과 무명 병사의 제향을 목적으로 백의사(百義祠)와 충훈당을 건립하였습니다.

백의사에는 의병장 권응수(權應銖)[1546~1608]를 비롯,

정천리·정우번·조종악 등 42위의 의병과 무명 의사가 봉향되어 있다합니다.

2006년 2월 16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15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때 소중한 목숨을 바친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수많은 의병들의 함성이,

지금도 고스란히 들릴것만 같은 한천전 승첩지에서

용감했던 그분들을 기억하는 뭉클한 경험을 가져 보실 것을 추천합니다.

한천전 승첩탑


※ 본 글은 새영천 알림이단의 기사로 영천시 공식 입장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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