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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석 이희승과 한글>

의왕향토사료관 2023년 특별전시

1896년 경기도 광주군 의곡면 포일리(현 의왕시 포일동)에서 태어난 국어학자이자 시인, 수필가 이희승의 삶을 보여주는

<일석 이희승과 한글> 전시를 의왕향토사료관에서 2023년 11월 3일까지 만날 수 있습니다.

경성대학 예과부설 중등교원양성소 국문과 졸업앨범 / 1946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검거되어 3년간 복역, 1945년 8월 17일 함흥교도소에서 나온 이희승은 그 해 12월 경성제국대학교 법문학부 교수로 취임합니다. 이 졸업앨범에서 교수들의 사진 아래에 글이 흥미롭습니다. 이희승은 ‘천재보다 노력‘이라는 글을 썼는데요.

찾으셨나요?

의왕 중앙도서관 2층에 위치한 의왕향토사료관 입구

의왕시의 향토유물을 소장하고, 연구, 전시하는 의왕향토사료관은 의왕 중앙도서관 2층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국어학에 대한 열정으로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한 분야의 선구자가 되신 이희승 선생의 치열한 삶을 통해 혼란했던 시기의 한글에 어떻게 정리되고 발전하였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전시실 입구 바닥의 친필 원고 이미지와 전경

국어학자이자 독립운동가로 알려진 일석 이희승은 1988년 시흥군지에 ‘그러나 그 명칭이 고금을 통하여 일관되는 포일리라는 동네가 필자의 출생지라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당시 의왕시는 시흥군 의왕면이었습니다. 태어날 당시 광주군 의곡면 포일리였던 주소지는 수원군, 화성군, 시흥군 포일리로 변경되었습니다. 그래서 광주군 사람도 수원군 사람도 화성군 사람도 동향사람이라면 반가워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바뀌지 않았던 것은 '포일리’가 출생지라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글을 남겼습니다.

1년 후인 1989년 시흥군 의왕면은 의왕시가 되었고, 포일리는 포일동이 되었습니다.

가족사진, 미국 유학 시절 사진과 학술대회 사진

작은 흑백으로 남아있던 사진을 대여하여 고해상도로 스캔해 이희승의 삶을 사진으로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두 번째 전시공간 전경

이 공간에서는 국어학자, 시인, 수필가 이희승의 삶을 만날 수 있습니다. 7,80년대 학생들이 있는 집이라면 책장 한 곳에 자리잡고 있었을 이희승의 국어대사전도 전시실에서 찾을 수 있는데, 펼쳐진 곳에서 조선어학회 단어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전시장에 가셨다면 놓치지 말아야할 유물 5점을 소개하겠습니다.

● 조선어표준어 사정 제3독회 사진

● 오랜만에 잠금장치를 열어 본 가죽가방

● 시집 박꽃

● 수필집 벙어리 냉가슴

● 1927년 한글 창간호

<일석 이희승과 한글> 포토존

마지막 포토존의 조선어표준어 사정 제3독회 원본사진에서 30대의 이희승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힌트를 드리면 맨 앞줄에 있습니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많은 분들이 붙잡혀서 고문을 당하게 되는데요.

이로 인해 돌아가신 분도 이 사진에 있는데요. 맨 앞줄 가운데 안경 쓰신 분이 국어학자 이윤재입니다.

조선어표준어 사정 제3독회 원본사진 / 1936년

1933년 맞춤법을 통일한 후, 표준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조선어학회에서는

이희승, 이극로, 최현배를 비롯한 40명의 표준어 사정 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세 번의 독회를 가졌는데, 첫 번째 독회는 위원 32명이 참석하였고, 두 번째 독회에서는 위원을 70명으로 늘렸습니다.

세 번째 독회에서 위원 32명이 출석했으며, 위원은 총 73명이 되었습니다. 73명의 위원은 경기도 출신 37명과 각 도대표가 인구비례로 36명 모인 것으로, 단어 표결 결정권은 경기도 출신 37명에게 주어졌습니다. 이 중 서울 출신은 26명입니다.

한글 맞춤법 통일안의 총칙에서 ‘표준말은 대체로 현재 중류사회에서 쓰는 서울말로 한다’라는 원칙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반대가 있을 경우, 다시 조사한 후에 결정했습니다. 각 독회마다 수정위원을 뽑아, 토의 내용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했습니다.

이 사진은 마지막 독회인 세 번째 독회의 기념사진입니다.

이렇게 표준말을 조사하고 정하는 세 번의 독회를 통해, 1936년 당시 한글날인 10월 28일에 드디어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발표했습니다.

가죽 가방

두 번째는 가죽 가방인데요. 의왕향토사료관의 서영진 학예사가 일석학술재단을 방문해 대여할 유물들의 목록을 정리하고 있던 중, 우연히 오래된 가죽 가방을 발견했습니다. 호기심을 가지고 가방을 열어봐도 되는지 문의를 하면서 일석의 유가족들도 처음 가방 안을 살펴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가방 안에는 도장과 붓, 파이프가 있었고, 재활용한 초콜릿 상자 안에는 동전이 있습니다.

이희승의 손때가 묻은 물건을 통해 그의 삶에 더욱 가까이 가 볼 수 있습니다.

박꽃

첫 번째 시집의 제목은 박꽃입니다. 표지의 그림은 박문원이 그렸습니다. 박문원은 박태원의 동생으로 형의 책인 천변풍경의 표지화를 그리기도 했습니다.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린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전시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화가들이 장정과 삽화가 실린 책들이 전시했는데, 수많은 문학과 미술애호가들을 덕수궁관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전시에서는 박꽃의 재출간 표지가 전시되었는데, 천경자 화백이 장정과 삽화를 그렸습니다.

또 다른 시집과 수필의 장정에서 김환기, 이응로의 장정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벙어리 냉가슴』, 『소경의 잠꼬대』, 『먹추의 말참견』

유명한 화가의 그림도 좋지만, 가족 사랑이 남달랐던 이희승은 책 제목을 첫째 손녀(옥경)의 글씨를 따서 만들기도 했습니다.

위 세 책 중에서 손녀의 글씨로 만든 책 제목은 어떤 것일까요? 찾으셨나요?

바로 벙어리 냉가슴입니다. 첫 번째 수필집이기도 한 벙어리 냉가슴은 교과서에 등장하는 ‘남산딸깍발이’가 있습니다.

『한글』 잡지

1927년 발간된 동인지 형식의 창간호 한글 잡지입니다. 한글박물관에 전시된 한글 잡지 창간호는 1932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1932년 창간호에는 조선어학회의 학회지의 출발을 알리면서 1927년 동인지 형식의 한글이 1여 년 동안 만들어졌지만, 그 뒤에 이어지지 않았다는 글이 실려 있습니다.

1927년 동인지 형식의 잡지가 중단된 후, 학술지 형식의 한글 잡지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희귀본으로 이번 전시 관람에서 놓치지 않아야 할 유물이니 꼭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이번 전시 소식을 전하면서 작은 전시관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직접 관람을 통해 포일리 출신 국어학자 이희승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일석 이희승과 한글> 전시연계 교육 프로그램으로 학교로 찾아가는 프로그램이 상반기에 진행되며, 하반기에는 전시실에서 진행하는 유치원 단체프로그램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하반기 주말에는 연령별 교육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으니 의왕시청 홈페이지 공지를 참고하여 신청해주시기 바랍니다.

<일석 이희승과 한글> 전시 관람은

의왕중앙도서관 휴관일과 동일하게 매주 월요일과 법정공휴일을 제외한 9시부터 18시까지 가능합니다.


2023 의왕시 SNS 서포터즈 시민기자단 김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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