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4.19 도화선이 된 김주열 열사의 흔적을 찾아서
안녕하세요
남원시 블로그 기자단 안현영입니다 :-)
오늘 소개해드리는 '김주열묘역'과
'김주열 열사 추모공원'은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1960년 4.19혁명을
이끌어낸 김주열 열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한 곳입니다.
주소는
'남원시 금지면 금지순환길 917-13'으로
열사께서 나고 자란 금지면 길을 따라
모교인 '금지동초등학교' 및
'금지중학교' 그리고 생가까지 함께
둘러보시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김주열열사추모공원: 남원시 금지면 금지순환길 917-13
✔️금지동초등학교: 남원시 금지면 금지순환길 888-10 금지동초등학교
✔️금지중학교: 남원시 금지면 요천로 443-9 금지중학교
✔️김주열열사생가: 남원시 금지면 독우물안길 43-9
김주열 추모공원은
간단히 쉬어갈 수 있는 정자와 더불어
식수대 및 공중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있어, 남원여행 중
쉬어가기에도 좋은 곳입니다.
2006년부터 조성사업을 시작해
31,760㎡의 넓은 부지에
주차장을 비롯해 기념관과 산책로 등
시민들이 열사의 뜻과 정신을 기리며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답니다.
추모공원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먼저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자세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김주열 열사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학생 민주화운동가 중 한 명입니다.
그 시작은 암울했던 시대상을 간직한
1960년 3월 14일에 시작됩니다.
김주열은 당시 기울던 가세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은행원이라는 꿈을 꾸기 시작하고
이를 위해 고향에서 꽤나 떨어진
'마산상업고등학교' 입학원서를 제출하게 됩니다.
이후 합격자 발표 예정일이었던 3월 14일,
그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형인 '김광렬'과
함께 마산으로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정부에서 계획했던
부정선거의 여파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꺼려했던 교육청이 그 발표를
3월 16일로 미룬 탓에 합격을 확인했음에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마산에 머물게 되죠.
결국 마산에서의 부정선거가
들통나게 되고, 수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평화시위를
벌이게 됩니다. 김주열 열사 또한
그 민주화의 파도 속에 합류하지만
결국 돌아오지 못하고 4월 11일,
마산 중앙 부두에서 눈에 20cm의 최루탄이
박힌 채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되게 됩니다.
이 사건은 4.19혁명의 도화선이되어,
결국 부정선거를 이끌었던
당시 이승만 정권을 몰락시키게되고,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민주화를
앞당기게 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 뜻을 기리는 '민주수호대장군'을
비롯해 다양한 장승들이 산책로 주변을
행복한 표정으로 지키고 있는데요,
그의 고귀한 희생이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이어 후손들의 번영과 행복으로
이어졌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겠지요.
공원 옆으로는 '추모각'과
'기념관'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관리를 위해 잠겨있어,
유리창 너머로 나마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열사의 추모나 관람을 위해
방문하실 경우
'금지면 사무소(063-620-3916)'또는
기념관 앞에 쓰여있는 관리자 전화번호로
연락하시면 되는데 평일에만
관람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관리자 번호의 촬영은 금지되어 있어,
부득이 방문 후 연락 해보실 것을 권장드립니다.
추모각에는 열사의 영정과 더불어
그를 기리는 공간이 마련돼있습니다.
비록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먼발치에서나마 그 정신을 정중히기려봅니다.
여담으로, 김주열 열사는 비교적
어린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보시는 고등학생 당시 사진과
더불어, 이보다 이전인 어린시절
사진이 비교적 많이 남아있는 편입니다.
그 이유는 열사의 할아버지
'김태종'은 해방 직후 면장을,
아버지는 조합장을 지내 비교적 부유한
어린시절을 지냈기 때문인데요
앞서 소개해드렸듯, 김주열이
은행원을 꿈꾸며 상고로의 진학을
원했던 것은 당시 아버지의 병환으로
인해 기울던 집안을 일으켜
세우고자 함이었습니다.
이어 열사가 묻힌 묘역으로 향합니다.
이곳은 실제 김주열 집안의 선산으로,
가묘가 아닌 실제 고인이 묻힌 '실묘'이며
서울 4.19민주묘지와 함께
마산 3.15 민주묘지에
각각 가묘도 조성돼있습니다.
마산 앞바다에서 차갑게 떠오른
열사의 시신은 우여곡절 끝에
고향 금지면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따뜻한 양지에 묻히게 됐습니다.
당시 시신을 발견했던 경찰은
어머니에게 사실도 알리지 않고
도립마산병원(현 마산의료원)에서
빼내어 장례절차도 없이 매장해버렸다고 합니다.
유족을 포함해 나아가 국민의
목소리를 짓밟은 참으로 아픈 역사죠.
열사의 어머니는 훗날 마산시민들에게
자식을 바쳐 민주주의를 찾는 데
도움이 됐다면 아까울 것이 있겠냐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고 하니
그 심정이 어땠을 지 더욱 마음이 아려옵니다.
묘역 옆으로는 목백일홍과
무궁화로 꾸려진 작은 야외정원도
조성돼있으니 산책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행악이 사직을 흔들어도 말없이 견뎌온 백성
가슴가슴 터지는 분노 천둥하는 우뢰인데
돌아갈 하늘도 없는가 파도 푸른 목숨이여
<고 김주열군 영전에> 시인 이영도
17세의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해야했던 김주열, 그의 희생으로
민주주의가 꽃 필 수 있었음을 기억하며
그를 기리는 시 한 편으로
포스팅을 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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