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 의거

1960년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3·15 부정선거에 반발하여 마산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로,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사건이다. 4월 11일 시위 중 실종된 김주열 학생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서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2차 시위로 이어졌고, 이후 부정선거 규탄 시위가 전국 단위로 확산하면서 4·19 혁명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마산 하면 떠오르는 것이 많지만 3월에는 3·15의거, 김주열 열사 등이 생각난다. 창원시 홈페이지 문화/체험 코너에 민주 성지 창원 탐방코스가 소개되어 있다. 오늘은 민주 성지 창원 탐방코스 중 “3.15의거 재현의 길”을 걸어보고 소개합니다.

3·15의거 재현의 길 코스는 1960년 3월 15일부터 4.19일까지의 이동 코스를 재현한 길로 “3.15의거 발원지 👉 당시 민주당 마산시 당사👉 불종거리👉 창동치안센터(당시 남성동파출소) 👉3·15의거 기념탑 👉 무학초등학교 총격 담장 👉 마산의료원(당시 도립 마산병원 )👉 마산합포구청(당시 마산시청) 👉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까지 걷는 코스이다. 도보로 이동하면 3시간 정도 소요된다.

3·15의거 재현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은데 승용차를 이용하려면 창동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불종거리의 불종이 있는 곳을 찾아가면 된다. 불종이 있는 곳에서 제과점과 은행이 있는 사잇길로 30여 미터 내려가면 3·15의거 재현의 길 출발점인 3·15의거 발원지 동판이 길 중앙에 설치되어 있다.

3·15의거 발원지는 3·15의거 당시 2층 목조건물이었던 민주당 마산시 당사 건물 앞이다.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 선거 당시 선거 번호표를 받지 못한 유권들은 “내 표를 찾아달라"라고 호소하며 당사 앞으로 몰려왔고 민주당 마산시당은 10시 30분경 전국 최초로 선거 포기를 결정, 벽보를 당사 밖에 부착하고 이를 방송으로 알리고, 당사 앞에 모인 군중들에게 관권 부정선거에 저항해 궐기할 것을 호소하자 군중들이 호응해 가두시위를 시작하면서 3·15 마산 항쟁이 시작된 곳이다. 현재 이곳에는 3·15의거의 발원지임을 알리는 동판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3·15의거 발원지 동판 앞 옛 민주당 마산시 당사 건물은 최근까지 상가가 있었는데 창원시에서 건물을 매입하여 2021년 10월 ‘3·15 의거 발원지 기념관’을 개관하였다. 기념관 지하 1층은 ‘영상실’, 지상 1층은 ‘깊은 울림’, 2층은 ‘강건한 울림’, 3층은 ‘힘 있는 울림’을 주제로 다양한 시청각 자료와 관련 유물이 전시되어 있어서 3·15의거 재현의 길을 걷기 전에 기념관을 관람하면 3·15의거와 마산의 민주화 운동에 대하여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960년 3월 15일 민주당 마산시 당사 앞에 모인 당원들이 선거 무효를 선언하고 가두방송을 하며 시위를 전개하자 군중 600여 명이 가세하면서 불종거리에서 경찰과 대치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민주당 간부 일부가 경찰에 폭행당하며 강제 연행되자 성난 군중들이 창동치안센터(당시 남성동 파출소)로 몰려가 시위를 계속 벌이게 된다.

불종 거리의 ‘불종’은 불이 나거나 위급한 일이 발생하였을 때 종을 쳐서 시민들에게 알리는 수단으로 사용해 왔으나 일제 말 도로 확장으로 인해 철거되었다고 한다. 구 마산시에서 마산 개항 100주년을 맞아 창동 코아양과 앞 네거리에 3개의 반원기둥 중간에 불종을 달고 5마리의 괭이갈매기를 형상화하여 3·15의거 민주 정신과 마산의 전통문화를 상징하는 아치를 1999년 5월에 설치하였다.

불종거리의 ‘불종’ 앞에서 3·15의거 재현의 길 다음 목적지인 ‘창동치안센터(남성119 안전센터)’를 찾아가는 방향 잡기가 쉽지 않다. 남성119 안전센터는 ‘불종’에서 왼쪽 어시장 방향으로 100여 미터 내려가다 창동 공영주차장과 신한은행 사잇길로 걸어가면 된다. 이 길을 100여 미터 가다 보면 남성119 안전센터가 나오는데 안전센터 맞은편 건물 앞에 3·15의거 관련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 구) 남성동 파출소는 오동동에서 시작된 시위대가 마산시청으로 가기 위해 통과해야 할 첫 번째 관문으로 경찰에 막혀 시위대는 우회하여 시청으로 향하였고 일부는 경찰과 대치하여 시위를 하였다. 마산 시청에서 최초의 총성이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에서 경찰 실탄 사격이 이루어졌고 오성원 군이 경찰의 총에 맞아 숨졌다.

다음 목적지인 3·15의거 기념탑은 걸어왔던 길 남성로를 계속 따라 올라가면 된다. 길을 걷다 보면 민주화 거리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이 길을 따라 300여 미터 가면 3·15 기념탑 사거리가 나오고 이곳에 3·15의거 기념탑이 있다.

‘3·15 의거 기념탑’은 이승만 정권에 의해 자행된 부정 선거에 항거하여 봉기한 날을 기념하며 이 의거에서 희생된 젊은 학도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세워졌는데 탑의 높이는 12m, 둘레는 10.8m이며 기념탑 앞에는 3·15의거의 주역인 학생과 시민을 상징하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3.15의거 기념탑 근처에 몽고정이 있고 3.15대로를 따라 100여 미터를 가면 길가에 몽고식품 창업지라는 돌비석이 있는데 비석 뒤에 보이는 건물이 무학초등학교이다.

3.15대로 길가에 있는 ‘무학초등학교 총격 담장’은 1960년 3월 15일 의거 당일, 경찰이 시위대에게 무차별 사격을 가했던 곳이다. 당시 수많은 총탄 자국이 뚜렷이 남은 학교 담장이 그대로 있었으나 원래 담장이 헐리고 2014년 원 위치에서 약간 옆으로 옮겨진 곳에 담장을 복원해 놓았다.

무학초등학교 총격 담장을 지나 200여 미터 3·15대로를 따라 걸으면 ‘마산의료원(당시 도립 마산병원)’이 나온다. 이곳은 1960년 4월 11일 제2차 마산의거가 시작된 곳이다. 1960년 4월 11일 오전 11시경 김주열의 시신이 마산 중앙 부두 앞에 떠올랐고 시신은 마산 도립병원으로 옮기게 된다. 시신 인양 직전 현장에 도착한 부산일보 허종 기자는 바다 위로 떠오른 시신의 모습을 단독으로 촬영하여 타전하게 된다. 소문을 듣고 몰려든 시민들은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저녁 5~6시경부터 시위를 일으킨다. 이날 시위 군중은 3월 15일에 비해 규모가 엄청나게 컸으며 시위는 3일간 계속되었다. 이후 김주열 열사의 죽음이 알려지면서 시위가 전국적으로 번져나가게 되고 4·19혁명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래서 이곳을 4·19혁명 진원지라고 부른다.

‘마산합포구청(당시 마산시청)’은 마산의료원 건너편에 있다. 1960년 3월 15일 저녁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대는 개표가 진행되는 당시 마산시청으로 집결한다. 시위대는 경찰의 저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청으로 나아갔다. 시위대가 경찰과 대치 중 정전되자 경찰은 시위대에 총격을 가했으며 이에 따라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격분한 시위대는 경찰과 투석전으로 맞섰으며 새벽까지 경찰에 저항하며 부정선거에 항의하였다.

마산합포구청에서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를 찾아가야 하는데 안내 표지판이 없어 휴대전화로 길 찾기 검색을 하여 따라가 보았지만 쉽지 않다. 길을 찾고 보니 어렵지 않았다. 마산합포구청 앞에 있는 3·15의거 기념비에서 바다 쪽으로 나 있는 길을 내려가면 창원지방검찰청 마산지청이 나오고 그 앞에 8차선 해안대로가 나온다. 해안대로를 건너면 가전제품 판매점이 나오고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100여 미터 올라가면 수입 자동차 판매점이 있다. 이 건물 끝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면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가 나온다.

‘김주열 열사 동상’은 2021년 10월 제막하였다. 청동으로 만들었으며 높이는 기단부를 포함하여 5m이다. 김주열 열사가 교복을 입고 오른쪽 가슴에 두 손을 얹은 상태로 바다에서 솟아오른 모습을 표현했다고 한다. 동상 뒤쪽에는 바다 형상을 표현한 길이 6m 부조 벽이 설치되어 있다. 부조 벽에는 “민주주의의 불꽃을 피우다” 등의 문구가 새겨져 있다.

1960년 3월 15일 자유당 이승만 독재 정권이 저지른 부정선거에 항거한 마산 3·15의거 시위 중 행방불명된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발견된 이곳은 경상남도 기념물 제277호로 지정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 민주화운동 관련 장소가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이곳이 처음이라고 한다.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 지점 안내판 내용이다. “1960년 3월 15일 이승만 독재 정권이 저지른 부정선거에 항거한 마산 3·15의거에서 김주열 열사가 행방불명된 지 27일 만에 이 표지판이 있는 해안벽 앞 약 3m 지점에서 떠올라 인양되었다. 이날 마산에서 일어나 4·11 민주 항쟁은 4·19 혁명으로 이어졌다. 열사는 이 바다에서 4월 혁명의 횃불로 솟아올랐던 것이다.”

3월이 되면 3·15의거를 떠올리게 되지만, 책에서 배운 역사로만 알고 있다가 창원시 홈페이지에서 알게 된 ‘3·15 의거 재현의 길’을 따라 걸으며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분기점의 하나인 3·15의거를 몸으로 느껴보았다.

창원을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의 성지라고도 하는데 창원에는 3·15의거를 시작으로 민주화 운동과 민주주의 산 역사를 담는‘창원민주주의전당’건립 공사가 2024년 9월 개관을 목표로 3·15해양누리공원 내에 공사가 진행 중인데, 이곳은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와 가까운 곳이다.

3월 가족, 친구들과 ‘3·15 의거 재현의 길’을 걸으며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로운 삶에 대하여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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