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3.1절 특집 자랑스러운 인천 서구 독립운동가들!(+유완무, 심영택, 심혁성, 독립운동)
안녕하세요. 서동이에요! 내일은 3월 1일, 대한의 자주독립을 위해 다방면으로 활약했던 우리 선조들의 얼을 기리는 날인데요. 1919년, 태극기의 물결로 한반도가 뒤덮였던 그 때, 우리 서구에도 대한의 자주독립을 위해 활약한 멋진 분들이 계시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오늘은 3.1절의 의미를 되짚어보며, 절대 잊어선 안될 자랑스런 서구 출신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소개해드리려 해요!
우리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한 꿈!
되새겨 보는 3.1절의 의미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
이로써 세계 만국에 알리어
인류 평등의 큰 도의를 분명히 하는 바이며,
이로써 자손만대에 깨우쳐 일러
민족의 독자적 생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려
가지게 하는 바이다.
- 3.1독립선언서 원문 일부 발췌 -
10년 간 일제의 탄압 속에 고통받던 대한제국의 국민들. 하지만 일제가 아무리 우리 국민들을 짓밟아도, 국민들의 독립을 향한 열망을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열망은 1919년 3월 1일 꽃피우게 되는데요. 이것이 바로 3.1운동의 시작이었습니다!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대한 독립 만세" 물결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가게 됐어요. 그리고 이 날을 기억하며 그 날을 국경일로 정해, 지금까지 그 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3.1운동을 두고 도산 안창호는 대한민국 자유와 평등의 생일이라고 일렀는데요. 이는 대한민국의 건국 정신이 3.1절에서 왔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3.1절의 진정한 의미는 독립선언서 낭독을 통해 우리나라의 주체성을 선언하고 한 기쁜 날이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태극기는 깃봉의 최상단에 깃봉과 깃면을 떼지 않는 것이 옳은 국기게양법이죠. 올해 3.1절에는 모두 태극기를 예쁘게 게양해보도록 해요!
3.1절은 우리 대한민국의 정신이 세워진 날이지만, 그 이면에 대한의 자주독립을 위해 애쓴 많은 분들의 존재를 잊어선 안될텐데요. 우리 서구에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운 순국선열들이 있다고 해요! 지금부터 서동이가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독립운동가 유완무
북간도의 대부!
대한민국 독립의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 하면 누가 떠오르시나요? 아무래도 백범 김구 선생님이 가장 먼저 뇌리를 스치실텐데요. 이 '김구'라는 이름을 지은 이가 바로 유완무입니다. 과연 이게 어떻게 된 사연일까요?
독립운동가 유완무의 이름을 가장 많이 만나 볼 수 있는 곳, 바로 백범일지입니다. 백범일지에는 '김구선생님 일본국 쓰치다를 살해하고 인천 감리서에 있을 때 유완무가 용감한 청년 13명을 뽑아서 모험대를 조직해 인천항 주요 기점 마다 밤중에 석유통을 지고 들어가 7,8곳에 불을 지르고 감옥을 깨서 김창수(백범 김구)를 구출해내는 계획을 짰다'라는 부분이 있는데요. 그만큼 유완무는 김구의 든든한 지원군이었으며, 행동력이 남다른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완무는 1861년 지금의 서구 시천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시천동은 원래 시시내 유씨로 불리는 진주 유씨들의 집성촌이었는데요. 이 마을에서도 유난히 기골이 장대하고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사내대장부였다고 해요. 유완무는 을사조약 이후 인천을 떠난 이후 정확한 행적을 알기는 어렵지만, 충청도, 만주, 러시아 등 여러곳을 누비며 독립운동을 해왔다고 알려져 있어요.
정확한 행적은 없지만,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 활약하던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 유완무는 굉장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고 하죠. 독립운동가들 사이에 북간도의 대부라 불리며,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유완무를 존경했죠. 원래 김창수였던 이름을 '김구'라는 이름으로 바꾼 것도 바로 유완무였습니다. 이런 유완무를 백범 김구는 '평생친구'로 여겼다고 해요.
독립운동가 심영택
임시정부의 든든한 지원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다양한 독립운동 단체들도 있지만, 비밀리에 조직되어 활동을 하던 비밀결사단체도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주비단인데요. 이 주비단을 만든 인물이 바로 심영택 선생입니다. 심영택 선생님은 1869년 8월 검단면 당하리에서 태어난, 인천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중 한 명이죠.
주비단의 시작은 19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10년 국권이 상실되고, 심영택 선생을 비롯해 이민식, 안종운, 장응규 등의 인물들은 일제의 한국 침략에 분노한 이들은 독립운동을 시작하기로 뜻을 모으게 됩니다. 그 후 상해에서는 대한민구의 임시정부가 수립되게 되죠. 그리고 심영택 선생과 동지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원조와 연락을 담당하기로 하며 독립운동을 이어나가기로 합니다.
임시정부 수립 이듬해인 1920년 6월, 이들은 서울 경신학교 교정에서 단체의 이름을 주비단이라 명명하고 임시정부의 군자금을 마련하고자 하는 활동에 주력했습니다. 임시정부발행의 독립공채권을 이용해 6천여 원의 독립운동 자금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곧 주비단이 발각되죠.
하지만 심영택 선생의 독립 의지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독립신문의 연길지국장으로 활약하기도 하고 해방 후 광복회에도 그 이름을 올렸죠. 선생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의미로 사후 46년 뒤인 1995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애족장을 추서받기도 했습니다.
독립운동가 심혁성
황어장터의 영웅
황어장터를 아시나요? 황어장터는 인천에 위치했던 시장의 이름으로 잉어의 산지라 황어장터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황어장터는 이제 잉어보다 인천지역 태극기 물결의 시발점이 된 곳으로 더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 배경에는 황어장터의 영웅, 독립운동가 심혁성이 있죠.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을 기점으로 수많은 태극기가 물결을 이루며 대한의 자주 독립을 외쳤습니다. 이 흐름을 본 한 사내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심혁성! 심혁성 지사는 이 흐름에 고무되어, 1919년 3월 24일 황어장터에서 300~600여 명의 인천시민과 함께 대한독립의 열망을 부르짖었습니다. 만세운동 중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면서도, 모든 일을 주도한 건 본인이라고 외치며 동지들을 감싸는 의리를 보이기도 했죠.
심혁성 지사가 체포되자 함께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수백 명의 사람들은 그를 구하기 위해 일본 경찰들과 대치하게 되는데요. 이 과정 중 대열 선두에 있던 이은선 지사가 일본 경찰이 휘두른 칼에 맞아 순국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 사건이 알려지게 되며 인천시민들은 모두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오게 됐고, 인천지역 만세운동이 민중 운동으로 커지는 기폭제가 되게 됐죠.
이 사건으로 인해 심혁성 지사는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서 형을 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출감한 이후에는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본인은 산에서 약초를 캐먹는 마음 따뜻한 모습도 보여주었습니다. 그 뒤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고 해요. 카리스마있는 모습 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진정한 리더의 모습! 심혁성 지사에게서 배워야 하는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지금까지 3.1절을 맞아 3.1절의 의미와 함께 서구를 대표하는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전해드렸는데요. 3.1절의 의미와 애국지사들이 우리에게 남긴 숭고한 의식! 우리의 현재는 그들의 희생과 정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선 안되겠습니다. 3.1절이자 3월의 첫 날, 그리고 봄의 시작을 알리는 3월 1일! 오늘 하루 알차고 즐겁게 보내시길 바라며, 애국심 뿜뿜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서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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