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평택 출신의 독립운동가이며 통일 운동가로 일생을 바친 원심창 선생의 기념관에 다녀왔습니다. 원심창 기념관은 팽성 실내체육관 2층(평택시 팽성읍 안정로 74)에 있는데요. 원심창 기념관에 전시하고 있는 유물은 전체 265종에 달하는데요. 자세한 자료들로 민족혼과 자긍심을 일깨우는 원심창 선생의 발자취를 되돌아보았습니다.

원심창 선생은 1906년 12월 평택에서 태어나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아나키즘 사상을 수용했습니다. 아나키즘은 무정부주의로 일체의 정치권력이나 공공적 강제의 필요성을 부정하고 개인의 자유를 최상의 가치로 내세우는 사상을 말합니다.

원심창 선생은 일본에서 아나키즘 운동뿐만 아니라 노동운동에도 적극 참여했습니다. 실천적인 항일운동을 결심한 원심창 선생은 1930년 일본에서 돌아와 잠시 고향 평택에 머물다가 그해 겨울 중국 베이징으로, 다시 중국 상하이로 이동하여 적극적인 항일 독립투쟁에 나섰습니다.

1933년에는 상해 육삼정에서 중국 주재 일본 대사 아리요시를 암살하려 한 육삼정 의거로 인해 사형선고를 받고 투옥되어 복역 중, 1945년 해방과 함께 출옥합니다. 해방 후 원심창 의사의 민족운동 핵심은 평화통일 운동이었습니다. 1950년 6.25 한국전쟁 발발 이후, 1955년 최초의 민간 통일 운동 조직인 '남북통일촉진협의회'를 창설하고 본격적인 통일 운동에 몸담기 시작합니다.

1959년에는 재일 동포 민족지인 '통일 일보'를 창간하면서 평화통일을 위해 노력합니다. '통일 일보'는 1959년 1월1일 '조국의 평화통일 구현'을 내걸고 도쿄에서 창간한 민족지인데요. '조선 신문'과 주간 '통일조선 신문' 시대를 거쳐 1973년 9월부터 일간 '통일 일보'로 탈바꿈합니다📰

원심창 기념관에서는 많은 자료를 볼 수 있었는데요. 이는 '통일 일보'가 소장하고 있던 것으로,

원심창 의사의 병상 일기, 자필 편지 등 원심창 의사의 삶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일본과 중국 등 국외에서 민족운동과 통일 운동을 전개한 원심창 의사는 1971년 7월 4일 일본에서 65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합니다. 원심창 의사는 평생을 민족의 독립과 평화통일의 염원을 안고 생을 마감한 분이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이러한 점을 뒤늦게 확인한 정부는 원심창 의사에게 1977년 독립운동 유공 ‘독립장’을 추서했습니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기념관을 다녀오셔서,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불태운 원심창 의사의 뜻을 되새겨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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