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시간 전
고양시에서 만나보는 문화재, 고양 추원재와 박충원 묘역
추원재는 밀양박씨 규정공파의 선조들을 모시는 재실로, 고려 말엽 전법판서 겸 상장군 휘 사경을 비롯한 56위의 선조를 모시는 사당입니다.
1934년에 창건되어 현판을 추원재라 편액했습니다. 1950년 6.25전쟁 때 폭격으로 전소된 뒤 1956년에 복원했고 지금의 재실은 1988년 확장한 것입니다
덕양구 주교동에 위치한 밀양박씨 추원재는 '고양시 원당1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에 편입으로 철거되어 규정공파 묘역 앞에 건축 중입니다.
박충원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중초 호는 낙촌ㆍ정관재 본관은 밀양이며 응천군 조의 아들입니다.
일찍이 기준의 문하에서 수학한 뒤 중종23년 생원, 중종26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홍문관 정자를 거쳐 중종31년 교리로 원접사 종사관이 되었습니다.
중종34년 임백령의 탄핵으로 한때 파직되었다가 중종36년 영월군수로 등용되었습니다.
이 무렵 영월 객사에는 요괴들의 출몰로 부임하는 군수마다 비명으로 죽는 변고가 잦아 누구도 수령으로 오기를 꺼려 3년여에 이르러 거의 폐읍 직전이습니다. 그러나 공은 「내이름은 충원이요. 죽음은 명이니라.」 하면서 자원했다고 합니다. 부임 초야에 꿈속에서 단종왕이 현신하여 화답한 후, 곧 단종의 묘를 찾아내어 천장봉축하고 손수 제문을 지어 제사를 모시니 이후로는 요괴들도 사라지고 무사했다고 합니다.
명종이 즉위하던 1545년 군자감 부정등을 거쳐 좌통례로, 춘추관 편수관을 겸하여 「중종실록」, 「인종실록」 편찬에 참여했고, 이듬해 성천부사로서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 사가독서를 했다고 합니다.
1550년(명종5) 동부승지 대사성을 거쳐 우부승지를 역임하고 명종8년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밀원군에 봉해졌습니다.
1566년(명종21) 이황의 뒤를 이어 홍문관, 예문관의 대제학을 지내고 이듬해 지중추부사가 되었으며, 원접사로서 명나라 사신을 접대했습니다.
1569년(선조2) 이조관서에 보직되자 김안로의 일파였다는 양사의 탄핵을 받고 사직해, 이듬해 우찬성이 되었으나 다시 신진사류에 의해 훈구의 당으로 몰려 해직당했습니다. 그후 재등용되어 1576년(선조9) 이조판서, 지중추부사를 역임했습니다. 시호는 문경이며, 저서로는 「낙촌 박선생 유고」, 「영해창수록」을 남겼습니다.
공의 묘는 정경부인 성산이씨의 묘와 쌍분을 이루고 있으며 묘앞에는 옥개를 얹은 대리석 묘비와 상석, 향로석, 석등 그리고 좌우에는 망주석, 문인석이 각기 서있고 좌측에는 신도비가 배치되어있습니다.
1617년(광해군9)에 건립된 것으로 「이조판서 밀원군 박공신도비」란 비명이 앞면에 새겨져 있습니다. 비의 재료는 대리석이며, 그 규모는 높이6자, 폭4자, 두께1자입니다. 비문은 대제학 유근이 지었고, 글씨는 김현성이 썼으며 전은 박희현이 하였습니다.
박충원 선생 봉분 속에서 발견된 박충원 백자청화 묘지석은 2018년 4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31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제작시기가 정확하고 백자의 단정한 제작방법, 청화 안료를 사용한 점, 경기도 지정문화재로 지정된 묘지석 중에서 16세기 청화백자로는 유일하다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밀양박씨 묘역앞에 건축 중인 추원재가 원형 그대로 복원되길 기대해 봅니다.
추원재
- 위치 : 경기 고양시 덕양구 주교동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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