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울산동구 인권뉴스⑥ 차별의 언어는 내 안에 있다
울산인권운동연대 편집위원회
주말이라 조금은 여유롭게 늦은 아침을 먹고 나서 사지를 쭉 펴고 누워 있었다. 가끔 멍 때리기 할 때 즐겨하는 자세다. 눈을 감고 머릿속을 비워내고 있다 보면 그냥 편안해진다.
아들이 달콤한 평안을 깨고 툭 질문을 던져온다.
“아빠! 미국 NBA농구 경기중에 흑인 선수가 백인선수에게 ‘백인 놈’이라고 하면 이것도 인종차별에 해당되는 거 맞아?”
“애매한데”. “왜?”
“차별은 권력관계가 수반되거든. 풍자와 조롱은 약자의 저항수단이기도 하고. 흑인이 백인에게 욕한 것이잖아!”
“NBA인데. 그곳에선 누가 약자야? NBA에선 흑인이 다수잖아. 그리고 백인선수들에 비해 절대 약자가 아니야. 오히려 백인선수들이 약자일걸.”
갑자기 생각이 복잡해진다. 이럴 땐 얼른 상황파악에 들어가야 한다.
“어떤 상황인데?” 아들에게 물었다.
농구를 꽤 좋아하는 아들은 상황과 논란의 배경까지 설명한다.
“댈러스와 클리퍼스의 2020 NBA 플레이오프 경기 중에 해럴이 댈러스의 돈치치에게 ‘Bitch Ass White Boy(빌어먹을 백인 놈)’이라고 한거야.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해럴이 평소에 흑인인권운동에 앞장섰고, 이번 시즌이 열리기 전에도 자신의 유니폼에 이름대신 ‘HOW MANY MORE’라는 문구를 쓰고 뛸 것이라고 밝혔었거든.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사람이 인종차별 발언을 했다고 난리가 났어.”
‘얼마나 더’라는 뜻의 ‘How Many More’는 2020년 5월 25일 미국에서 발생한 일명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사용했던 구호 중 하나이다. 시위대는 "Silence is Violence(침묵은 폭력이다)", "Silence is Complicity(침묵 또한 공모다)"라는 구호 외에 "How Many More"를 외쳤다. 얼마나 더 많은 흑인들이 죽어가야 하나? 라는 울부짖음의 구호였다.
이 구호는 시위과정을 거쳐 소수자, 사회적 약자들의 구호로 자리 잡았다. 얼마나 더 많은 어린이들이 학대받고 죽어가야 하나? 얼마나 더 많은 노동자들이 죽어가야 하나? 얼마나 더 많은 유색인종들이 차별받아야 하나?
“차별은 권력관계에서 작동해. 차이와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야. 최근 샘 오취리가 문제를 제기했던 의정부고의 ‘관짝소년단’ 사건이 있지. 한국사회에서 흑인은 사회적 약자야. 그렇기 때문에 의정부고 학생들이 흑인비하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가나의 장례문화를 따라하면서 흑인분장을 한 것은 논란이 될 수 있어. 왜냐하면 얼굴을 검게 칠하는 ‘블랙 페이스’는 19세기 영국과 미국 등에서 유행했던 흑인 비하 분장을 뜻하거든. 만약 우리가 가나에 가면 역으로 황인종에 대한 차별을 경험하게 될 거야. 그곳에서는 우리가 약자의 위치에 처해지는 상황이 더 많을 테니까.”
“그러면 해럴의 발언은 ‘인종차별’ 발언으로 볼 수 있는거네.”
“아빠는 차별발언이었다고 생각해.”
“나도 모르게 의도치 않게 차별적 발언을 할 수 있겠네?”
“응. 더구나 우리는 자라면서 차별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보지 않았거든.”
대왕암소식지 2020년 가을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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