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일 전
영천 북안천 언덕 위 거북처럼 숨은 고택, 완귀정 현장스케치
영천 도남동에는 북안천이라는 소박한 하천 하나를 끼고 여름의 울창한 숲속에 숨어 있는 고택이 한 채 있어요.
북안천의 옆길, 작은 골목길을 지나야 만날 수 있는 곳이죠.
처음엔 과연 이런 길이 맞을까 싶어 고민하다,
골목길을 조금만 걸어가다보면 언덕 아래로 조용히 흐르는 개울과 낮은 담장,
그리고 오래된 기와 지붕의 곡선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곳이 바로 거북처럼 숨은 고택, 완귀정입니다.
완귀정은 조선 중기 성리학자 안증(安嶒, 1494~1553)이 말년에 은거하며 후학을 양성했던 집이에요.
안증은 인종의 세자 시절 스승이었고, 세자시강원 사서로 민본(民本) 사상을 설파했으나,
을사사화로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곳 도남동 북안천 언덕에 자리를 잡았다고 해요.
안증이 이곳에 완귀정의 장소로 택한 이유는 ‘남쪽에 글을 상징하는 필봉, 동쪽엔 부를 상징하는 두지봉이 감싸는 형국’이었기 때문이에요.
벼슬로는 크게 출세하지 못해도, 글을 쓰고 가르치며 살아갈 수 있는 곳에
‘거북이처럼 몸을 숨기듯’ 완귀정(玩龜亭)을 지시고 자리를 잡았죠.
완귀정이라는 이름 그 자체의 안증 선생의 삶과 뜻을 품고 있어요.
완귀정은 그 자체로 정자이자, 사랑채이며, 동시에 사유의 공간이에요.
겹처마와 활주(건물 모서리 기둥), 계자각 난간과 사분합 들문 등 조선 후기 누각 건축의 정형을 모두 갖추고 있죠.
정면 3칸, 측면 2칸의 간결한 평면에, 뒤편에는 작은 방이, 앞쪽에는 마루가 깔려 있어요.
눈에 띄는 점은 사분합 들문이 설치된 대청의 뒷면 구조인데, 이는 전국적으로도 드문 예로 꼽힌다고 해요.
완귀정은 외부에서 보면 그 모습을 잘 알 수가 없어요. 담장은 높지 않지만
처마선과 절묘하게 맞닿아 내부가 쉽게 보이지 않아요.
바로 이 점에서 완귀, ‘거북이 등껍질’이란 이름이 실감나네요.
안증 선생은 이곳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책을 읽고, 사색하며 살았어요.
그의 글은 대부분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나,
후대에 남긴 몇 편의 현액(懸額)과 조식, 이산해, 안정복 등의 글이 여전히 정자에 걸려 있죠.
그중 남명 조식의 시 한 수는 이런 문장을 남겼어요.
“거북이가 지닌 깊은 뜻을 살펴서 올바른 성정을 기르고,
유유히 자연을 즐기면서 세상사에 만족할 줄 알게 되었네.”
정자의 좌측엔 영조 연간에 건립된 별채, 식호와(式好窩)가 있어요.
정면 5칸, 측면 1.5칸 규모의 이 건물은 양쪽에 작은 누(樓)를 둔 구조로, 중심에서 한껏 무게를 낮추며 조화를 이루고 있죠!
완귀정에서는 남부동 주민자치센터가 주최하는 고택음악회가 열리기도 한답니다.
2023년에는 350여 명의 주민과 방문객이 참석해 고요한 완귀정에 생기 넘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죠. 올해도 기대해도 되겠죠?^^
영천 남부동은 완귀정 외에도 국보 제517호 청제비, 그리고 육우당 고택 같은 소중한 문화재를 품고 있어요.
하지만 상대적으로 대외적 인지도는 낮은 편이에요.
지역 행정과 문중, 주민이 협력하여 이 숨겨진 역사공간들을 ‘역사문화마을’로 재정립하고, 관광자원화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에요.
완귀정. 안증 선생이 세상의 복잡함을 뒤로하고 학문과 사람에 집중하기 위해 은거했던 이곳은,
영천의 북안천과 우거진 숲, 차분함이 있는 곳입니다.
기와의 곡선, 낮게 드리운 처마, 손때 묻은 대청마루. 완귀정은 겉으로는 소박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숨겨진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수백 년의 세월을 살아온 나무기둥이 지탱하는 이 집은, 조선의 학문과 정신,
그리고 사람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품은 장소가 아닐까요?
지금도 이곳엔 그 시절의 숨결이 남아 있습니다.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이곳에 들러보는 건 어떨까요?
완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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